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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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지영이라는 이름은 책을 선택하기 충분합니다. 글 잘 쓰고, 생각 있는 작가이니까요. 고등학생 때 읽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이후 다른 작품을 제목으로만 만나다가 시간을 건너온 나와 그녀를 다시 만나요. 외로움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작가 공지영은 1963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어요. 1988년 <창작과 비평>에 구치소 수감 중 집필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1989년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3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다뤄 새로운 여성문학, 여성주의의 문을 열었죠. 이후 <고등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잇달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한민국 대표 작가가 되었습니다. 대표작으로 <봉순이 언니>, <착한 여자 1,2>,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즐거운 나의 집>, <도가니>, <높고 푸른 사다리>등이 있고, 소설집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별들의 들판>,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가 있어요. 산문집으로 <상처 없는 영혼>,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2>,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딸에게 주는 레시피>등이 있습니다.

이 책은 많은 시련으로 절필까지 생각했던 저자가 3년 만에 출간한 산문집입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고 스스로 고요하고 외로움 가운데 자신을 유배시키면서 회복되고, 다시 사랑하기까지의 이야기죠. 다시 외로워지더라도 기꺼이 사랑하기를 선택할 수 있게 해준 성모 마리아님과 예루살렘을 순례하듯 걸으면서 쓴 산문입니다. 거의 20년이 지난 수도원 기행의 후속편이라고 볼 수도 있고, 수도원 기행의 완결 편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환갑의 여성이 혼자서 위험지역인 예루살렘에서 외로움과 고난을 따라 걷는 순례길이죠. 지리산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결심하고 떠나는 것에서 예루살렘 기행과 다시 고요하고 적막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그녀를 3년 만에 다시 쓰게 한 것은 무엇일까요? 함께 따라가 봐요.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삼갈 일이 많다는 거구나. 아기를 재운 엄마가 아무리 나쁜 놈이 와도 큰 소리로 싸우기를 주저하듯이, 함부로 움직이지도 소리 내지도 못하는 거구나. 그래서 많은 사랑하는 사람은 삼가야 할 일이 많고 헤아려줄 일이 많고 그래서 많이 약해 보이는 것이었구나. (P41)

지리산 중턱에서 섬진강을 굽어보면서 자리 잡은 집에 살고 있는 작가.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온전히 자신만의 고요 속으로 들어가죠.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도 들고서요. 하지만 천 번의 별이 지는 시간 동안, 아름답고 역동적인 생명력의 자연으로 인해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시작할 수도 있게 되었지요. 고요를 깨고 새벽 기도 촛불을 밝히고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텃밭을 가꾸고, 조용히 살기 위해 애씁니다. 하지만 자신의 눈에 띈 동백이를(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강아지) 외면하지 못해서 또 갈등과 고소 속으로 들어가요. 강아지 동백이는 말 위에서 하루 종일 먹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배설도 하지 못하고 앉아 있던 강아지예요. 주인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동백이를 학대하고 있었던 거죠. 몇 번은 그냥 지나치다가 참지 못한 작가는 주인에게 묻습니다. 저 강아지를 왜 저기에 올려놓았냐고요. 강아지는 조금만 높이 올라가도 두려움으로 힘들어하는데, 왜 올려놓았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주인은 다짜고짜 욕설을 날리고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습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그들이 112에 신고하고, 경찰서에 가서 합의를 해 주고(마을에서 조용히 살려면 합의하는 게 좋다는 경찰의 의견에 따라) 받아 온 강아지 동백이. 자신의 집 주위에 30여 그루 있는 동백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름도 동백이가 되었습니다. 동백이는 배설의 문제로 인해 먹지 못하다가(하루 종일 말 위에 앉아 있어 배설이 힘들었고, 그래서 주인이 먹이를 주지 않음) 작가의 집에 와서 사료를 7그릇이나 먹어요. 물도 4그릇이나 먹고요. 뱃속에 있는 심장 사상충을 치료하기 위해 사경을 헤맬 정도로 앓는 동백이를 보면서 작가는 생각해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약한 이유를요. 그렇습니다. 당당하고 자신 있고 강하고 싶은데, 늘 약자가 됩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에게서. 그렇게 약한 제가 싫어서 바꿔보려고 애쓰기도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모진 말들도 연습하지만 하지 못해요. 예수님의 사랑을 입었고, 알았으면서도 왜라고 자주 물었습니다. 왜 악한 자들이 승리하는지, 왜 주님의 사람들은 약하기만 하고 당하기만 하는지를요. 그럴 때마다 주님은 침묵하셨고, 제게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하셨죠. 이 글을 읽다가 깨닫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그냥 두신 이유, 누구보다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삼가야 한다는 것을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말 약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그렇게 보고 정의했을 뿐, 주님께는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약하고 조심스러운 나를 관대하게 보기로 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약간 깨달은 것 가지고는 삶은 바뀌지 않는다. 대개는 약간 더 괴로워질 뿐이다. 삶은 존재를 쪼개는 듯한 고통 끝에서야 바뀐다. 결국 이렇게, 이러다 죽는구나 하는 고통 말이다. 변화는 그렇게나 어렵다. (P189)

광야와 시내산을 거쳐서 외곽을 둘러보던 작가는 이제 예루살렘에 본격적으로 입성합니다. 3000 연간의 미친듯한 전쟁에서 과연 누가 옳다고, 나쁘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를 물어요. 세례자 요한의 광야 수도원에서 프란치스코에 대해 생각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방탕한 생활을 즐겼죠. 하지만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1년 동안 감옥 생활하고 바뀌기 시작합니다. 약간 깨달은 것이 아니라 존재를 쪼개는 듯한 고통 끝에서요. 약간 깨달은 것 가지고는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마음을 울려요. 약간 깨닫는 일은 쉬운 일입니다. 책을 읽어도, 성경을 읽어도, 설교 말씀을 듣고도 약간 깨닫기는 쉬워요. 하지만 변화하지 않으니 대부분 그녀의 말처럼 약간 더 괴롭습니다. 알고 있기 때문에 괴롭고, 바뀌지 않는 자신이 견디기 힘들어서 괴롭죠. 그러면 쉽게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도 느끼지만, 불가능합니다. 이미 약간이라도 깨달았으니까요. 조금이라도 변화하려면 고통의 이유를 물어야 합니다. 그 고통을 통해 삶이 내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 절대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요. 고통 가운데 그저 지나가게 해달라는 울부짖음이 아니라 조금은 객관적이고 냉철할 정도로 감정을 걷어내고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고통을 온전히 통과하고 조금이라고 변화하기 위해서요. 말로만 주님 닮기를 원합니다가 아니라 삶이 변화하기 위해서, 위험하지만 성장을 위해서 고통과 마주해야 합니다.


제가 보는 성경과 이름들이 다르고 지명들이 조금씩 다릅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차이로 인한 것이죠. 하지만 말씀을 붙들고 성지를 둘러보며 묵상하는 모습들은 좋아요. 글 잘 쓰고, 생각이(전적으로 주관적이지만) 반듯한 작가가 믿음과 신앙에 대해(본격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말하고 쓰는 것이니까요. 그러다가 깨닫습니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요. 누군가의 생각을 읽고, 약간 깨닫고 책을 덮습니다. 서평을 쓴다고 숙제처럼 약간의 생각을 짜내지만, 쓰고 나면 기억에서 사라져요.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졌던 구레네 시몬 이야기를 그냥 읽습니다.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자는 억지로 진 십자가의 노예성을 말해요. 자발성이 빠진 십자가 대신 짐은 노예의 수고라고 합니다. 노예의 마음으로 하느님 아들의 십자가를 대신 져도, 하나님의 아들과 나란히 걸어도 그것은 헛되다고 말해요. 저는 교회에서 그렇게 배우지 않았거든요. ‘억지로 진 십자가도 영광이다’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하기 싫고 부담 되어도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요. 결국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답을 찾아야 하는 일입니다. 저는 쉽게 교회에서 하는 말을 믿었고, 그 사람들에게 나의 결정권을 맡겼지요. 내 머리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주님께 묻고 기도하면서 나만의 답을 찾은 과정을 회피했습니다. 힘들고 귀찮다는 이유로요. 그러니 약간 깨달아도 변화하지 않은 삶이 더 나은 쪽으로 변화했을 리 없어요. 가볍고 쉽게 글자들을 읽다가 책이 무거워집니다. 내 삶의 주체적인 주인공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녀는 순례의 일정을 끝내고 다시 고요하고 적막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동백이가 기다리는 집으로요. 악의를 품은 누군가의 말에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다시 외로워지더라도 사랑하기를 선택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랑, 마리아를 닮은 사랑을 성지에서만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소란하고 악의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실천하기로요. 한 번 세수하면 다시 더러워집니다. 밥을 먹고 나면 또 배가 고픈 시간이 옵니다. 다시 더러워질 것을 알면서, 다시 배고파질 줄 알면서 우리는 씻고 먹어요. 다시 외로워질 것이라고 해도 기꺼이 외롭기를,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당신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보냅니다. 다시 외로워져도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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