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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간 고등어
조성두 지음 / 일곱날의빛 / 2023년 10월
평점 :

고등어가 산으로 가면서 펼쳐지는 신앙 이야기라고 해서 신청한 책입니다. 책을 읽느라 성경을 많이 읽지 못한 부채감으로 선택된 거죠. 고등어는 산으로 가는데 내 믿음은 어디로 가고 있나 생각하며 푸른 고등어에게 눈길을 줍니다.
작가 조성두는 식물과 친해서 잘 죽이지 않고 오래 친구 한다고 합니다. 식물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시와 함께 글로 써오다가 문득 깨달았다고 해요. 자신 안에도 글이 나무가, 시편이 크고 있다는 것을.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고, 철학도 잠깐 했고, 교육과 방송 미디어 쪽에서 주요 이력과 사업을 했습니다. 생명과 섭리, 그리고 소망, 소명에 대해서 앞으로 꾸준히 쓰고 싶다고 말해요. 그럼 이 작품은 작가의 소설 첫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지리산 골짜기에서 박해를 피해 살고 있는 신앙촌의 초향과 고등어를 들고 찾아온 성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외부인에게 곁을 잘 주지 않던 초향의 부모님은 산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고등어로 인해 마음을 열게 되고, 초향과 원은 원의 집안의 반대에도 결혼을 하기로 합니다. 여기서부터 초향과 송이, 유화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과 구한말과 6.25를 거친 우리 민족의 아픈 현대사가 펼쳐집니다. 숨어서 초향을 지켜보던 비릿한 고등어 냄새를 풍기는 원이와의 설레는 첫 만남으로 들어가 봐요. 약간은 설레면서.
염장을 말한다. 내장을 꺼낸 고등어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다. 힘든 일이었다. 끝없이 구박이 계속되는 과정이었으니까. (p41)
그 당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가진 며느리를 인정하지 못했던 시어머니. 시어머니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집으로 들어온 며느리를 날마다 구박합니다. 간잡이로 살아가는 시어머니는 간잡이 일을 며느리에 시키면서 매일 구박을 해요. 며느리 초향은 부모님이 모두 관에 잡혀가서 옥에 갇히는 바람에 갈 곳이 없습니다. 잡혀가기 전 아버지와 어머니께 큰절을 하고 유언처럼 십자가를 받아서 혼자 약혼자인 원의 집으로 찾아온 것이죠. 초향은 원하지 않았지만, 심한 구박과 욕설을 견디며 간잡이를 배우고, 아이를 임신하게 됩니다. 남편인 원이는 보부상이라 시아버지랑 장으로 떠돌고, 집으로 돌아와서 초향과 함께 있는 날은 며칠 되지 않아요. 초향은 하루 종일 자신을 구박하는 시어머니와 함께 일을 배웠어요. 일 녀도 안되게 배운 이 간잡이가 초향과 이후 딸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줘요. 초향은 왜 일 녀도 안되게 이 일을 배웠을까요? 원과 초향 사이의 딸이 송이인 걸까요? 격변의 우리나라 정세와 그보다 더 휘몰아치는 초향의 삶이 구슬프게 이어집니다. 하지만 초향은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당당하고 단단합니다. 시어머니를 용서한다는 마지막 말은 너무 크고 힘이 있어 비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니까요.
“방아잎으로 감싸고 또 썰고 갈아 넣어도 감출 수 없는 악취가 있구나. 송이야! 말하자면 사람도 생물이고 각자의 선도가 있다. 물론 가엾은 고등어 한 마리에 담긴 비린내의 사연을 사랑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들어주는 것과 그 향기에 젖는 일은 전혀 다르다.” (P136)
이제 2대 주인공 송이의 등장입니다. 송이는 춘삼과 초향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죠. 춘삼은 청송 옹기골의 노총각이었고, 초향은 부모님의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되어 시집을 떠나와 청송으로 오게 됩니다. 바닷가 마을에서 청송까지 오는 동안 초향은 탈진했고, 쓰러진 초향을 춘삼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관계를 이어와요. 둘 사이에 송이가 태어나기까지 많은 시간과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쨌든 나이 많은 춘삼이 먼저 죽자 초향은 딸 송이를 잘 키우기 위해 서울로 거처를 옮겨요. 아무런 터전도 없는 곳에서 초향은 고등어를 손질하고 파는 가게를 장만하게 됩니다. 가게를 장만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초향은 억척스럽게 딸 송이를 선교사들에게 공부를 시키고, 영어도 배우게 해요.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있는 구한말, 송이는 엄마의 교육으로 인해 시대보다 훨씬 앞서는 신여성이 되죠. 신여성이라고 해도, 직장을 가지거나 취업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송이는 정구 선수가 되어 뭇 남성들의 시선을 받습니다. 그중 한 사람, 민영민을 두고 엄마가 하는 말이죠. 송이는 남성들의 시선을 즐깁니다. 딱히 거절하지 않으면서 주위 남자들을 저울질하기도 하고요. 민영민은 민씨 가문으로 권력과 재력을 모두 갖춘 집안의 자제였죠. 마음을 확실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송이는 민영민에게 많이 기울어 있었습니다. 엄마 초향은 민영민의 사람됨을 꿰뚫어 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라서인가요? 탁월한 통찰력으로 민영민이 풍기는 비린내는 감추기가 어렵다고 말하죠. 또 그 비린내의 사연을 사랑해 줄 수는 있지만 자신이 비린내에 젖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요. 민영민이 풍기는 비린내는 송이라는 향기로도 감추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엄마는 송이가 굳이 외형적인 것만 보고 비린내로 자신을 물들이지 않기를 바라요. 하지만 딸은 엄마만큼 보지 못합니다. 엄마 초향에게 보이고 느껴지는 비린내를 송이는 맡지 못합니다.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송이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우리 결혼합시다.”
“네. 우린 결혼합니다.” 우린 한 손의 푸른 고등어가 되었다. 기적적으로 그가 깨어났다. (P322)
송이는 신학생이었던 고요한과 결혼해서 1남 3녀를 둡니다. 그중 첫째 딸은 어려서 죽습니다. 엄마 초향은 날로 격해지는 시대 상황에 따라 딸을 중국으로 보내요. 일제 말기로 접어들고 있어 전쟁의 광기가 조선을 삼키던 때였죠. 송이는 고요한과 함께 중국 내륙을 떠돌며 모진 시간을 보내요. 3.1 운동에 신학생으로 참여해서 민영민으로부터 보복에 가까운 고문과 투옥을 견딘 후 완전히 독립운동으로 돌아서게 되는 고요한은 중국에서도 임시정부와 연락을 하고, 외국인 선교사들을 통해 구호 활동을 이어갑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고요한이 적십자를 통해 받아온 식료품들이 가족들을 살려요. 큰 딸인 현아는 아버지를 따라 구호 현장에 자주 나가 통역과 환자를 돌보다 미국 청년을 만나요. 그 미국 청년이 일러주는 국제 정세를 기반으로 송이는 한국으로 해방되기 몇 달 전에 돌아옵니다. 큰 딸 현아는 미국 청년과 결혼해서 미국으로 보내고요. 그렇게 돌아온 송이는 녹주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자리를 잡아갈 무렵 6.25를 겪습니다. 아들 이현이 군대에서 전사가 되고, 전장에서 돌아온 임현을 의지하며 사업의 중요한 부분을 맡겨요. 임현은 송이네 집에 가정부로 들어온 일본인 엄마의 아들이었고, 딸 유화와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유화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임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임현의 속을 태워요. 그러다가 4.19 데모에 나섰던 유화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임현이 총상을 당해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유화는 진실한 사랑, 고등어처럼 속을 모두 긁어내어 텅 빈 임현의 사랑을 깨닫고 결혼을 결심하죠. 그러나 임현이 살아나야 가능한 것입니다. 유화가 결혼을 결심하자 임현은 기적적으로 눈을 뜨고 마침내 고등어 한 손 같은 부부가 됩니다. 비로소 3대에 걸친 비극적인 삶도 희망의 빛으로 바뀌기 시작하죠. 이후의 이야기는 초향이, 송이가 누렸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처럼 펼쳐져요. 다행히 6.25와 4.19를 겪은 우리나라도 안정을 찾아가고요. 푸른 한 손의 고등어처럼 푸르게 빛날 그들의 삶을 응원합니다.
책은 읽기가 쉽지 않았어요. 평소 접해 보지 못한 문체라 시간이 더 걸렸고, 익숙한 청송 사투리(영덕과 인접해 있어)도 글로 읽으려니까 쉽지 않았죠. 말인데, 글로 써 놓으니 영 어색해서 두 번씩 읽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꾸역 꾸역 열심히 읽었어요. 중간중간 빛나는 문장들을 만나기도 하고, 고등어를 통해 삶을 엿보는 통찰을 읽기도 했습니다. 여인들의 삶, 시대가 혼란스럽고 어려울 때 더 힘겨울 수밖에 없는 여인들의 삶이 깊이 다가왔어요. 힘들고 어려운 고난 가운데서도 신앙을 가진 여인들이었기에, 더 단단하게 고등어처럼 속을 비워내며 인내하고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이 없어도 삶은 살아가겠지요. 하지만 고난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와 헤쳐나가는 힘은 분명히 다를 거예요. 처음 이야기의 시작인 초향과 원이의 만남은 비극적으로 끝납니다. 초향은 사랑했던 원이의 자녀를 얻지 못했어요. 자신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춘삼이와 사이에서 딸 송이를 얻어요. 송이는 민영민과 고요한 두 사람 사이에서 민영민을 선택했다가 큰 시련을 만납니다. 마지막 딸인 유화는 임현의 사랑을 외면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해요. 인생은 많은 선택들의 연속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선택하느냐는 중대한 선택부터 사소하게 식사 메뉴를 결정하는 것까지. 그 선택의 기준을 신앙으로 두고 살아가면 삶이 단단하고 당당해질 것 같아요. 가치를 신앙에 두는 삶은 쉽게 세속적인 것들로 휘둘리지 않을 테니까요. 초향의 아버지가 그 당시 어마어마했던 당백전을 돌려주었던 것처럼요. 고등어를 아무 생각 없이 먹었는데, 이제는 고등어가 가볍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속을 모두 비워내고 한 몸처럼 한 손으로 우리에게 오는 고등어처럼 내 삶도 잡다한 모든 것들을 비워내고 주님과 한 몸 되는 삶을 살야겠습니다. 조금 더 당당하고 단단하게! 비릿하지만 고소한 고등어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