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고, 배우고, 사랑하고 -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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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고민하다가 신청한 책입니다. 에세이 읽기를 좀 줄이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책은 저자를 보고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 ‘강인숙’ 교수님이니 시니까요. 노란 바탕에 스페인(?) 문이 그려진 책을 받고 기쁨으로 웃었습니다.


저자 강인숙은 문학평론가, 국문학자입니다. 1933년 10월 15일 사업가의 1남 5녀 중 3녀로 함경북도 갑산에서 태어나 이원군에서 살다가 1945년 11월에 월남했어요. 경기 여자 중.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숙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데뷔했으며, 1958년 대학 동기 동창인 이어령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지요. 건국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퇴임 후 영인문학관을 설립했습니다. 책은 20여 년 전에 나온 책을 새롭게 묶으면서 문명 기행을 주제로 스페인과 프랑스, LA 여행기가 실려 있어요. 그래서 1부는 스페인 여행기입니다. 사람이 된 갈라테이아와의 만남이 여행이라는 서문을 시작으로 정년 퇴임 후 벼르고 별렀던 제철의 여행을 언니와 동생이 함께 시작해요. 즐거움을 담은 단어 “우와따따뿌빼이”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스페인을 두루 돌아 2부 파리의 이야기로 이어져요. 3부는 로스앤젤레스의 여행기입니다. 로스앤젤레스는 여동생의 수술을 맞춰서 가게 되었고, 수술 일정이 맞지 않아 여행으로 이어져요. 4부는 비철의 파리(1977년) 여행기입니다. 문명의 발전을 따라 시간을 거스르듯 여행하는 저자는 여행기도 시간을 넘나들었습니다. 그 시간의 넘나듬이 어색하지 않고 한 권의 책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요. “우와따따뿌빼이”(손녀가 기분이 좋을 때 외치는 말)를 외치며 저도 스페인으로 떠나 봅니다.


‘사원에 있는 기둥들처럼’(지르란) 제가끔 자기 발로 초석을 밟고 홀로 서 있는 독립된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그늘이 상대방의 성장을 저해하지 않을 만한 거리를 지켜가면서 함께 걸어간 것이다. (p82)

설렘과 기쁨으로 시작한 스페인 여행은 백치기로 일정이 꼬이고 힘겨움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시작에서 백을 잃어버림으로 배운 것도 많다고 생각하고, 남은 일정을 즐겁게 보내려고 하죠. 언니들과 동생의 사랑으로 함께 하는 즐거움으로 바로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하죠. 세고비아 성에서 두 개가 나란히 있는 왕좌를 보면서 저자가 쓴 글입니다. 카스티야의 공주 이세벨과 아라곤의 왕자 페르난도의 결혼으로 왕이 두 명이 된 거죠. 흔히 볼 수 있는 일방적인 흡수 결혼 동맹이 아니라 두 사람은 각자의 나라를 각자 간섭 없이 다스리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래서 세고비아 성에는 두 개에 나란히 놓인 왕좌가 있죠.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는 것의 전범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힘에 의한 종속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인 거죠. 아내인 이세벨이 인지도와 힘이 더 컸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힘을 가진 아내가 남편을 강제적으로 종속시키기 않은 모습도 좋아 보입니다. 두 사람은 10여 년이 흐른 후 나를 합치게 된다고 해요.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완충 장치를 하는 시간을 보낸 것이죠. 남편과 아내 사이도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봐요. 그리고 눈앞에 두 개의 왕좌가 보이는 것 같은 느낌, 그 왕좌를 보면서 남녀 관계와 역사까지 풀어내는 저자가 설명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나무들이 단풍이 들기 시작한 공원의 벤치에는 일상의 끈에서 풀려난 자유로운 시간이 가로놓여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즐기며 마음껏 휴식을 취했다.(P154)

투우를 보고 마요르 광장을 지나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도 보고 아토차 역의 아치형 실내 정원도 감상합니다. 톨레도와 템블레케의 로만 마켓도 들리고, 과달키비르 강도 구경하죠. 여권을 만드느라 마드리드의 캄포 델 모로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리아 루이사 공원을 보기로 합니다. 비슷하게 동글동글 한 얼굴의 네 할머니와 마부, 가이드(?)까지 찍은 사진이 웃음이 나요. 여행은 어디나 비슷하구나 싶어서요. 공원에서 시간을 느끼며 쉬었다는 저자의 문장을 읽으면서 생각해요. 정말 일상의 끈에서 풀려난 자유로운 시간들 속에서 한가롭게 즐기는 모습이 보여서요. 시간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싶고, 그녀들의 피곤이 한순간에 풀리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런 시간들 때문에 여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요.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일들과 시간들, 사물들, 사람들 속에서 자신만의 느낌과 생각을 풀어내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은 일상 가운데서 풀려난 시간을 즐겨보려 해요. 마침 겨울답지 않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월요일 오전이니까요. 커피 한 잔과 스페인의 강렬한 음악으로 그녀와 함께 스페인을 맛봅니다.


책은 탁월하고 솜씨 좋은 요리사와 함께 이색 요리 맛보기 같습니다. 스페인을 모르는 저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맛의 향연이 펼쳐지지만 그녀의 탁월하고 뛰어난 해설과 관점 덕분에 조금은 경험하게 돼요. 아는 맛을 볼 때의 공감과 이해도 좋지만, 전혀 모르는 맛을 이렇게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가? 그렇구나!’를 연발하면서 가끔 실린 사진을 보면서 스페인을 맛봐요. 문명과 건축 양식은 잘 모르지만, 실린 사진을 보면 금세 이해가 되었죠. 건물과 문명 이야기만 나온다면 조금은 지루할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모르는 맛이니까요. 하지만 언니들과 동생과 함께 보내는 여행지에서의 사소한 일상이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동생의 노래를 들으면서 가족들을 모두 소환하기도 하고, 추위에 똑같은 솔을 사서 걸치기도 하죠. 언덕 위 커피숍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마차를 타고(말 냄새 지독한) 시내를 느린 시선으로 관람하면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요. 남자 가이드와 여자 가이드의 차이와 장단점도 재미있습니다. 사람 향기가 나는 여행기라고 할까요? 저자와 자매들이 조금 가까이 다가와요. 가끔 두고 온 식구들을 걱정하기도 하고, 언니들을 위해 비싼 공연의 값을 치르는 동생도 좋아 보입니다. 모르는 맛 스페인도 저자와 함께라면 좋을 것 같아요. 노란 책을 옆구리에 끼고 스페인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었거든요. 하지만! 치안이 불안하다고 하니 혼자는 힘들겠죠? 물론 여행 경비도 문제겠지만! 그래서 모르는 맛을 즐기는 이 책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큰 비용들이지 않고 스페인을 두루 살려 볼 수 있으니까요. 준비되셨나요? 모르는 맛 스페인을 가까이 만나실 가장 쉬운 방법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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