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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식사합시다
이광재 지음 / 시공사 / 2023년 11월
평점 :

뉴스로 가끔 만난 사람입니다. 강원 도지사를 지냈고, 재판을 하고, 오래 불명예스럽게 오르내린 사람으로 기억되어 있었죠. 물론 그 불명예가 나중에 다 풀렸어도, 각인은 그렇게 남았어요. 정치 이야기보다는 자서전적 술회라는 띠지의 설명과 식사라는 제목이 음식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부담 없이 선택했습니다. 요즘 정치는 머리 아프거든요. 예상이 맞았을지 확인하면서 책을 펼칩니다.
저자는 1965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습니다. 스물세 살에 노무현을 만나 함께 꿈을 꾸었고, 문명사와 세계 질서, 미래 산업과 기술에 관심이 많아요. 현재는 국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죠. 저서로는 <이광재의 독서록>,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 <노무현이 옳았다>, <세계의 미래를 가장 먼저 만나는 대한민국>, <중국에 길을 묻다>-공저 가 있습니다. 책은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음식과 함께 풀어내고 있어요. 총 10가지 맛으로 구분해서 첫 번째 맛은 새우 라면입니다. 대학생 때 학생 운동에 가담하고 수배 중일 때 끓여 먹은 라면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성장과 사상적 배경을 솔직하게 쓰고 있어요. 음식과 그 음식을 먹었던 사람과의 추억, 자신이 걸었던 길과 신념이 나옵니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 나오지는 않지만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저자의 생애가 연결되죠. 새우 라면으로 시작해서 용광로 김치찌개, 도리뱅뱅이, 정체불명 짜장면, 엄마표 두부, 자취방 미역국, 대박 오므라이스, 포장마차 대합 타이, 샤부샤부, 열무김치까지 총 열 가지의 음식이 나옵니다. 혹시 어떤 음식을 좋아하나요? 저는 엄마표 두부와 대박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네요. 맛있는 새우 라면의 냄새를 따라 책을 넘깁니다.
그 시대에 벌어진 사건 중에는 학생 운동권이 반성할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당시 학생 운동 자체를 폄훼하는 시도 또한 분명한 극단이다. 시대의 한복판에서 몸부림쳐본 적 없는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을 싸잡아 손가락질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때 우리는 침묵해야 했을까. 조용히 순응했더라면 오늘의 민주주의는 존재했을까. 극단과 극단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광화문 광장에서 새삼 그것을 묻는다. (P77)
86세대로 학생 운동을 했던 이력으로 정치권에 들어왔고, 나름 성공적인 정치인이기도 한 저자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과장하거나 잘한 점만 쓰지 않고, 이렇게 인정하는 부분이 좋았어요. 학생 운동을 할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아보니 반성할 대목이 있다고 하는 것 말이죠. 우리 사회에는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들은 낮춰 보거나 틀린 일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목숨 걸고 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운동권 학생들을 할 짓 없어서 운동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그런 사람들이 기득권이고, 그런 부끄러운 생각과 말들을 거리낌 없이 한다는 것이 슬픕니다. 내가 힘들면 남도 힘들어요. 왜 나만 힘들고, 남들의 고통은 가볍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특히 정치인들이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상대 진영이라고 할지라도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책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두부처럼 활용도 높은 정치가 되어야 한다. 조미료는 특정한 맛을 내는 데는 강력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미료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두부처럼 무색무취하게 보이지만 어디에나 쓰임이 있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살고 국민이 살고 일자리가 늘어난다.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치우친 정치여서는 안 된다. 먹고사는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 (P157)
저자의 어머니는 두부 공장을 하셨습니다. 집에서 만들어 팔다가 나중에는 공장이 된 것이죠. 어머니의 두부를 말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정치 이야기로 끝내고 있습니다. 무색무취한 정책들과 정치들은 선택을 잘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죠. 선거철이 되면 얼마나 달콤하고 입에 맞는 조미료 범벅인 음식들이 판을 칩니다. 말을 하는 정치인도 듣는 유권자도 알아요. 그것이 실현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택하고 알면서 공약을 내 겁니다. 일단 제가 사는 영덕은 인구가 매달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인구가 줄고 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소멸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죠. 그런데도 육아나 출산에 대한 대책보다는 노인들에 관한 정책과 혜택이 많습니다. 마을 회관과 노인 관련 분야의 복지 예산은 아동에 비해 상당히 많습니다. 아동 관련 복지 쪽에 일하는 사람들은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해요. 아동은 표가 없다고요. 아동은 선거권이 없으니 지원을 해도 표로 이어지지 않는다고요. 그러니 자꾸만 밀리고, 예산도 적은 것이죠. 저자의 말처럼 극단으로 치우친 정치는 안 됩니다. 제가 어린 자녀들이 있다고 청소년 정책만 해달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요. 출산율이 급격하게 줄고 있다고 지금 정부해서 하는 정책들은 극단으로 달리는 것 같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자신의 임기 동안만, 다음 선거까지만이라는 짧은 생각과 이기심은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죠. 먹고사는 문제도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정치가 필요합니다. 누구는 값비싼 음식을 남기면서 먹는데, 누구는 라면 하나도 먹기 힘들다면, 이건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 양극화의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죠. 극단으로 극단으로 치닫기만 하는 우리 사회를 통합하는 정치를 바라는 것은 진정 욕심일까요?

‘노무현 팔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저자는 책에서 마음먹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말합니다. 자신이 보좌했던 20년을 음식과 함께 풀어 놓죠. 청와대에서 먹었던 음식과 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하고 나서 집에서 먹었던 설렁탕, 출장 중에 먹었던 도리뱅뱅이까지 생생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느끼게 해줍니다. 음식과 함께 노무현의 생각과 가치들도 보여주죠. 노무현을 빼고 이광재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부분도 나오고요. 강원 도지사 시설도 나오고, 현재 자신이 생각하는 공교육의 해결책도 나옵니다. 아주 이상적이다 싶은 정치에 대한 생각들도 나오죠. 과연 이런 정치가 실현될 수 있을까 싶은 내용들입니다. 끊임없이 설득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통합을 이루어내는 것이 정치라고 말해요. 정치인은 어둠 속에서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과녁을 향해서라도 방향이 맞는다면 계속 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지금 당장 성과나 결과물이 없어도 계속하는 것이 경제와 정치의 차이점이라고 해요. 경제는 효율성과 이익을 따지기 때문에 성과가 나지 않으면 포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정치는 그게 아니라고 해요. 설사 손해가 나더라도 계속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이라면요. 정치인은 공공의 이익, 공공의 선에 대한 생각이 분명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공공을 가장한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고 정치는 정치인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고요. 저자의 말처럼 정치를 향유하는 N 분의 1의 소비자이자 N 분의 1의 생산자가 국민 모두입니다. 정치가 외면을 넘어 경멸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과 그들이 하는 정치 때문이지만 그렇게 정치를 경멸하면 결국엔 국민 모두에게 손해가 됩니다. 타협하고 극단의 생각을 배제하고 열린 마음과 귀로 듣고 공익을 위해 꾸준하고 성실하게 보이지 않는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쏠 사람을 찾는 것은 내 몫입니다. N 분의 1인 내 몫이죠. 음식 이야기를 넘어서 정치에 대한 생각을 바꿔준 책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뉴스를 더 꼼꼼히 보기 시작했어요. 내 몫의 N 분의 1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내가 저자를 뽑아 줄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응원의 마음을 담아 정성껏 서평을 씁니다. 한 분이라도 더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