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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생활자
황보름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평점 :

책 욕심으로 시작한 서평단 활동이 무겁게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 읽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지사 읽는다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그래서 선택한 책입니다. 작가의 에세이는 일단은 검증이 끝난 작품처럼 느껴졌고, 문장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습니다. 10년을 준비하고 포기했다가 다시 시작한 그녀의 이야기가 힘 있게 다가왔어요. 단순하지 않을 것 같은데, 단순하다는 생활 속으로 낯섬을 무릅쓰고 들어가 봅니다.
작가는 서른 초반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안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첫 책을 내기도 전에 전업작가 생활로 뛰어들어 작가처럼 살았습니다. 작가처럼 살다 보니 정말 작가가 되었지요. 주로 읽고 썼으며, 자주 걸었다고 해요. 혼자서 누구보다 잘 노는 사람으로 단순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주는 평온함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매일 읽겠습니다>, <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있어요. 2021년 출간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종합 베스트셀러가 되어 영국, 프랑스 등 전 세계 20개 이상 국가에 판권이 수출되었습니다.
책은 전업 작가의 길을 접고 취직을 했던 작가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출간과 인기로 다시 전업 작가로 돌아오는 부분부터 시작해요. 자신은 월급쟁이로 살기로 맘먹었는데,마침표 이후에 오는 문장으로 전업 작가의 길과 글쓰기의 길을 시작합니다. 벼르고 벼르던 독립을 하고, 혼술, 혼자 놀기의 정수를 보여주죠. 잘 쓰기 위해서 혹은 오래 쓰기 위해서 잠시 글과 거리를 두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요. 작가의 일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그녀의 글 속으로 낙엽을 밟듯이 들어가 봐요.

글로 돈 버는 게 가장 쉬웠다고 말하는 작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쓴 글이 고봉밥이 되어 나를 살찌우는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p17)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서 10년을 방에서 글만 썼다는 작가. 독립을 원했지만, 경제적 독립이 어려워 미루고 미루었던 작가.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방안에 자신을 가두듯이 글을 썼던 작가입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썼던 글을 전자책으로 내고 더는 버틸 수 없어 취직을 하게 됩니다. 취직을 선택하기로 했을 때의 고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문장입니다. 자신이 쓴 글이 고봉밥이 되어 자신을 살찌우는 행운이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먹을 것을 줄여서라도 그 생활을 이어가고자 했어요. 하지만 생활을 이어가야 했지요. 자신이 쓴 글이 고봉밥은 아니더라도 한 끼 정도의 밥은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먹는 것을 줄여서라도 작가의 삶을 살고 싶었던 그녀는 마침내 그만두기로 합니다. 사실 몇 명의 작가가 자신의 글로 삶을 이어갈까요? 언론이나 방송에 나오는 작가들은 늘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이름도 없이 조용히 자신이 하고 싶었던 길에서 돌아서는 수많은 작가들은 나오지 않죠. 그러니 다른 누군가는 밥벌이가 되는 작가를 또 꿈꾸는 것인지도 몰라요. 꿈꾼다고 모두 되지는 않는 세상살이에서 그녀는 조금 더 견디고 조금 더 밥을 줄인 경험으로 보여줍니다. 한 번 포기했더라도 마침표 이후의 문장으로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죠. 행운이 찾아오지 않아 또다시 포기할지라도 밥을 줄여서라도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글을 쓰기 전엔 실패를 예견하고, 글을 쓰면서 예견이 현실화하는 걸 매일 보는 사람이기에 아무리 어깨를 펴려 해도 자꾸 위축된다. 작가에게 틈 없는 지지가 필요한 건 이 때문일 테다. 위축된 어깨를 펴고 용기 있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p111)
간혹 몇 자 적은 글을 딸에게 보여줍니다. 고2라는 스케줄에도 피곤함을 잔뜩 묻힌 얼굴로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죠. 잠깐 읽고 나서 피드백을 주는데, 그 말이 좋아서 자꾸만 뭔가를 적으려고 합니다. 잘 썼다는 말 한마디에 종일 고민하고 염려한 것들이 단숨에 풀리는 마법이 펼쳐져요. 작가는 자신의 최초 3명의 독자를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글을 전폭적인 지지로 읽어 주었던 3명의 지지자들. 어머니와 언니, 언니의 친구. 이렇게 세 사람은 쪼그라든 그녀의 가슴을 펴게 했고, 계속 쓸 수 있는 힘을 줬어요. 작가란 글을 쓰기 전에 실패를 예견하고 쓰면서 현실화하는 걸 매일 보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감이 넘쳐서 시작을 했더라도 결과물을 보면서 실패를 경험해요. 더 나은 문장은 없는지, 더 나은 전개나 구성은 없는지를 생각하며 현실화되는 실패를 경험하죠.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작가만의 고통이자 좌절이죠. 그 고통과 좌절도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만 있다면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틈 없는 지지를 통해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의 문장이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누군가에게 당신은 틈 없는 지지자가 될 수도 있고, 엉성한 비판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다시 힘내게 하고, 다시 시작하게 하는 것은 정확한 사실을 짚는 지적이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한 온전한 지지입니다. 만약 작가에게 세 사람의 지지자가 없었다면 아마 소설은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죠. 오늘은 누군가의 지지자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소설가가 쓴 에세이는 기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조용한 한 밤, 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혼자 끓여 먹는 라면의 맛이라던가, 계절이 바뀌는 것을 거실에서 지켜보는 모습이 영화처럼 펼쳐집니다. 걸으면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고, 몸을 움직여 체력을 키우죠. 자신의 일과를 단순하게 관리하면서 집안을 깔끔하게 유지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으면 지저분한 거실과 싱크대가 생각나서 정리를 하게 된다고. 그래서 글을 쓰기 전 루틴처럼 청소를 한다고 합니다.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도 좋다고 해요. 특별히 요리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노동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좋다고요. 은유 작가는 그의 책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서 말했어요. 하루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쓰는 거라고요. 글을 쓰기 위해 일상을 엉망으로 만들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오래 쓰는 사람으로 살려면 자신의 생활을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책에서는 단순 생활자로 자신을 칭했지만, 온전히 주어진 자유 안에서 자신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저도 몸의 질병으로 인해 2년을 집에서만 보냈어요. 처음에는 넘쳐 나는 시간이 좋아서 맘대로 썼습니다. 그러다 한 달 두 달이 지나자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을 보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었죠. 몸이 아프니 마음이 있다고 해서 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요. 그래서 하나둘씩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운동 시간을 정하고, 식사 시간을 규칙적으로 지키고, 수면 시간도 지키려고 애썼어요. 단순하지만 그 단순한 것들을 지키는 것이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저도 조금은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쓰는 사람으로 오래 살기 위해 자신의 삶을 단순하게 관리하는 모습이 힘 있게 다가왔어요. 글을 쓰는 일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지 자신의 삶을 단순하게 관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더 좋겠지요? 당신은 당신의 자리에서 단순하게 일상을 관리하고 있나요? 그럼 고봉밥의 행운도 멀지 않았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