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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생 꽃밭 - 소설가 최인호 10주기 추모 에디션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9월
평점 :

소설가 최인호 10주기 추모 에디션입니다.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고 싶은 욕심으로 선택한 책이죠. “인생은 아름답다고 죽도록 말해주고 싶어요”라는 말이 작가의 미소와 함께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제 인생 꽃밭에 꽃이 아니라 잡풀들이 무성할지라도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겠지요? 아직 생명을 품은 꽃씨가 자라지 못한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책을 펼칩니다.
작가 최인호는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어요. 서울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던 1963년 단편 <벽 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면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1967년 단편 <견습 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해요. 시대와 함께 아파하고 성장하며 많은 소설과 글들을 남겼죠. 소설집으로 <타인의 방>, <개미의 탑>, <잠자는 신화>, <위대한 유사>, <별들의 고향>, <겨울 나그네>, <불새>, <고래 사냥의 도시>, <상도>, <해신>등이 있습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문학상, 동리목월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3년 9월 25일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어요. 이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소설가로서 많은 소설을 썼던 저자는 편지도 잘 쓰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저자의 에세이 집이니 저절로 기대가 커집니다. 능력과 동시에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선택받았던 저자의 글을 새롭게 만나게 되어 기쁨이 커져요. 책을 쓸 때 당시의 소중함으로 시작되어 아내 이야기, 작품 이야기,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다양하게 실려 있습니다. 언뜻언뜻 우리나라에 대한 사랑도 이야기하죠. 소설가의 에세이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썼을까 싶어 마음이 콩닥콩닥 합니다. 함께 즐겨 보실까요?

인사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없어지고 인사를 나눌 때 반드시 숙여야 할 목은 나이가 들수록 뻣뻣해진다는 사실을. (p99)
저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 서로 친근한 마음을 표시하는 데 따뜻한 미소와 다정한 인사말 이상의 묘약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요. 그렇습니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돈 들이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과 마음을 전하는 일이 인사입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많은 않아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게 되면 뻣뻣한 목을 꼼짝도 하지 않고, 거수경례를 받는 군인처럼 인사를 받는 사람들을 봅니다. 마치 자신은 인사받아 마땅한 것처럼요. 그럼 그게 또 마음에 걸려서 자존심이 날을 세워요. ‘지나 나나 뭐가 다르다고 저 모양이야!’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면 인사는 헤어진 연인처럼 나와 멀어지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사를 하는 저자가 나옵니다. 좁은 공간에 시선 둘 곳도 마땅하지 않은 곳에서 인사 없이 멀뚱멀뚱 있는 모습이 그려져요. 나이가 들수록 빳빳한 목이 아니라 좀 더 유연한 목이 되고 싶습니다. 인사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니라 인사하는 것이 마땅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존심 그게 뭐라고, 고개 한번 숙이는 것이 그게 뭐라고. 오늘은 아파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해 봐야겠습니다. 내 속에서 빳빳하게 고개를 드는 자존심은 내려놓고요.
그 음식 속에 깃들어 있는 존엄한 각각의 맛들은 나를 위해서 하느님이 만들어주신 사랑의 성찬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식탁은 하느님께 드리는 제단의 일종이다. (p170)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지만 번지수를 못 찾고 늘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식사는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는 것이라고요. 어떤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말합니다. 싫어하는 음식이라도 준비한 사람의 정성과 함께 먹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켜서 잘 먹어야 한다고 말해요. 아무리 자신이 싫어하는 음식이라도 먹고 죽을 음식을 차려내는 사람은 없다고요. 그러다가 화가 나면 톤을 높여 얘기합니다. “먹어도 죽는 거 아니야!” 반찬 투정하는 남편에게만 향해 있던 시선이 내게로 돌아옵니다. 형식적으로 감사히 잘 먹겠다는 식기도를 하지만 이렇게 식탁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의 일종으로 생각해 보지는 못했어요. 음식 속에 깃들어 있는 존엄한 각각의 맛들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만들어주신 사랑의 성찬이라고. 그렇게 본다면 빈약한 밥상도 넘치는 밥상도 모두 은혜요 감사인 것입니다. 음식 앞에서 다른 사람의 인격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의 상태를 살피는 거룩한 제단으로 봐야 합니다. 오늘 저녁은 뭘 먹어도 행복하고 감사할 것 같습니다.

최근 에세이를 몇 편 쓴 경험이 있습니다. 에세이와 일기의 차이를 묘하게 넘나들면서 일기인 듯 에세이 듯한 글을 썼죠. 읽는 사람들은 일기 같다고도 하고, 에세이 같다고도 합니다. 에세이를 써보니 자신이 너무 많이 드러나서 힘이 들었어요. 고작 한 두 편에도 내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처음에 쓸 때는 이 정도는 오픈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썼지만, 나를 떠난 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 이해되었어요. 나를 적당히 오픈하면서 글을 쓰려면 저자처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지만, 자신이 담긴 글이죠. 아내의 이야기를 슬쩍슬쩍 하지만 아내는 참 사랑 많고 예의 바른, 누구나 친구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또 지나온 자신의 이야기를 시처럼 풀어 놓는 부분(한강은 흐른다)은 읽으면서 감동했어요. 시대를 온전히 관통하듯 살아온 삶이 보였으니까요. 소설가의 에세이를 기대하며 책을 펼쳤지만, 다 읽고 나도 크게 소설가 다운 흔적을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물론 어릴 적부터 작가라는 꿈을 향해 집중하고 훈련했던 부분이 나오기는 해요. 영화든 책이든 관객이자 독자의 입장이 아니라 감독이자 작가의 입장으로 보는 버릇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버릇이 자신을 작가로 살게 한 것이고 유리하게 했을 거라고 말해요. 하지만 저는 유명하고 천재적인 작가의 글은 뭔가 다를 거라고 저만의 기대를 잔뜩 하고 눈을 부릅뜨고 살폈어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자 깨닫습니다. 참 자연스러운 글이구나 하고요. 자연스럽게 읽히고 자연스럽게 작가의 말에 수긍이 갑니다. 어떤 미사여구나 어려운 지식을 전달하는 것 없이 일상을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톤으로, 색깔로 표현해요.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한 줄의 글이라도 써보고 싶게 만드는 책입니다. 작가의 말대로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인생을 아름답다고 죽도록 말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삶을 대하며 살아야겠다 깨닫죠. 내 꽃밭에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얼마 전 읽은 단어의 집이라는 책에는 모든 씨앗은 생명을 품고 있다고 했어요. 생명을 품고 있는 씨를 가지고 있다면 꽃은 반드시 필 거라고. 인생을 꽃밭으로 만들든 풀밭으로 만들든 그 책임은 오롯이 자신에게 있습니다. 평생을 소설을 쓰며 인생을 꽃밭으로 가꾼 저자의 화려한 꽃밭을 보며 다짐해요.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꽃을 피우자고. 당신의 꽃밭에는 어떤 꽃이 피고 있나요? 오늘은 찬찬히 자신의 인생 꽃밭을 살펴보세요. 그리고 작은 꽃씨 하나 심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