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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나비
올렉산드르 샤토킨 지음, 최정희 옮김 / 노란코끼리 / 2023년 9월
평점 :

가을이 오고 있는 등산로를 따라 샛노란 나비가 보입니다. 작지만 선명한 색으로 인해 금방 눈에 띄었죠. 노란 나비를 보면 예쁘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책을 만났기 때문이죠. 여기 있는 노란 나비와 거기 있는 노란 나비는 같지 않을 텐데 마음이 무거워요. 전쟁이 속히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온통 까만 첫 페이지에서 오래 머뭅니다.
알렉사드르 샤토킨은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아동서 일러스트레이션에 집중을 하고 있죠. 그는 우크라이나 언론 Crous, Nebo와도 협업을 했어요. 2016년에는 영국 일러스트 에이전시 iLustra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림은 단순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요. 어느 페이지에서는 쉽게 넘기기 힘들 정도로 아프고 무겁게 다가와요. 띠지의 말이 경험됩니다.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굉장히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글 없는 그림책!’ 당신도 함께 경험해 보실래요?

철조망 사이 눈 없는 소녀의 그림. 눈이 철조망에 가려져 보이지 않아요. 눈이라는 것은 그 사람을 비추는 영혼입니다. 눈이 그냥 가려진 것도 아니고 철조망에 가려진 소녀. 표정은 무표정한 것 같아요. 입의 모양이 일자로 다물어져 있으니까요. 처음 전쟁을 보는 어린이들의 표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놀고 싶은데, 놀이터에 나갈 수 없어요. 철조망은 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듯하지만 전쟁이 없던 과거와 현재를 분명하게 가르고 있죠. 달라진 것이라고는 이 철조망 하나뿐인데 가족들 중에 누군가는 죽었습니다. 학교에도 갈 수 없고, 친구들과 놀 수도 없어요. 소녀의 일상을 빼앗아 간 전쟁은 언제 끝날까요? 한숨이 깊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말합니다. 소녀가 품고 있던 노란 나비는 전쟁의 폐허 위를 날며 세상을 노랗게 물들입니다. 은행잎처럼 노랗게, 노랗게. 다시 노랗게 물들 날이 반드시 온다는 희망을 읽습니다. 소녀가 노란 나비를 따라가면 소녀의 가슴을 통과한 뒤편으로 커다란 노란 나비 떼가 소녀의 날개가 됩니다. 천사의 날개보다 더 크고 더 희망찬 노란 날개가 펼쳐져요. 까만 바탕 위에 노란 나비 한 마리 한 마리를 채워가는 희망. 희망이 꽃처럼 피어나고 노란 나비는 꽃보다 더 아름답게 까만 세상을 물들여요.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이지만, 소녀의 눈을 통해 희망으로 나갈 힘을 얻습니다. 나랑은 상관없는 전쟁이 내 안으로 훅 들어오는 느낌입니다. “노란 나비야 많이 더 많이 날아올라라. 까만 세상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게.”
당신이 말을 할 것이라면 그 말은 침묵보다 나아야 합니다.- 어른의 국어력 중.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이 말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서평이라고 무엇을 끄적인다면 그건 침묵보다는 나아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능력 부족입니다. 그림보다 나은 말은 기대하지 않아요. 다만 그림을 갉아먹는 말은 얹지 말아야 하는데, 실패인 것 같습니다. 한 마디의 글도 없는 그림책은 남의 나라 먼 곳의 전쟁을 안방으로 가져와요. 소녀가 보는 까만 세상이 내가 보는 세상이 되고, 소녀가 폭탄들을 향해 치는 소리가 내 목소리가 됩니다. 이제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진지하게 물어요.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서있는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가까이 둡니다. 쉽게 잊지 않기 위해서요. 나에게만 집중하고 있다고 우리를 발견합니다. 우리는 우리도 살아가야 합니다. 너와 나가 아니라 우리 함께요. 전쟁도 너와 나가 아니라 우리가 되면 끝나지 않을까 하고 노란 나비처럼 희망을 품어 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