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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역사 - 울고 웃고, 상상하고 공감하다
존 서덜랜드 지음, 강경이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8월
평점 :

문학이라는 말에 아직도 설레고 호기심이 생깁니다. 모르는 것을 고르는 것보다 아는 것을 고르는 것이 더 쉽지만, 문학은 저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친구 같아요. 시간을 오래 보내고, 좋아하지만 감히 알려고 하지 않은 친구에게 용기를 내어 다가가 봅니다. 이 책을 통해서요.

저자 존 서덜랜드는 영국의 문학자이자 칼럼니스트 작가입니다. 유니버스 시티 칼리지 런던의 근대 영문학 로드 노스클리프 명예교수로 다양한 레벨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가디언>에 문학 서평을 쓰는 한편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쓰고 엮었어요. 특히 저자는 문학의 모둔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가르치고 글을 썼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문학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죠. 자신만의 매력적인 방식으로 깊이 있는 학식에 유머를 곁들이며 <베어울프>, 셰익스피어, <돈키호테>, 낭만주의 시인들, 디킨스, <모비딕>, <황무지>, 버지니아 울프, <,1984>를 비롯한 수십 권의 위대한 고전을 생생하게 소개했죠. 저서로는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당신이 알아야 할 50가지 문학 아이디어>, <소설가들의 삶: 294명의 삶으로 본 픽션의 역사>가 있습니다. 책은 문학의 역사라는 제목에 걸맞게 연대표로 문학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페이지로 시작을 합니다. 기원전 20세기 경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서사시 <길가메시>가 시작이죠. 그리고 마지막은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 독일,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인도, 중국, 일본까지 작가들과 작품이 이어집니다. 서사시의 기원과 내용부터 시작해서 현대까지 여러 나라들의 작가와 작품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문학을 잘 알지 못하는 저 같은 사람이 보더라도 쉽게 읽히는 것을 보면 저자의 탁월한 능력을 실감하게 되죠.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니 아는 사람들과 내용들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찾으며 읽는 재미도 좋습니다. 물론 당신은 숨은 그림을 더 많이 더 잘 찾겠지만요.

문학을 ‘소비’한다고들 하지만 접시 위에 놓인 음식과 달리 우리가 소비한 뒤에도 문학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그리고 대게 처음 읽을 때만큼이나 군침이 돌게 한다. (p10)
첫 장은 문학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요. 본격적으로 문학의 역사를 다루기에 앞서 문학이 무엇인지를 개념 정리하듯이 저자만의 시각으로 풀고 있죠. 무인도에 남겨질 경우 갖고 갈 수 있는 책 한 권을 꼽으라고 하면 대게는 자신이 읽었던 책을 고른다고 합니다. 새로운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읽었던 것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감동을 주었던 책을 고른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저자의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문학을 소비한다고 하지만, 소비한 뒤에도 그대로 있고, 더 군침 돌게 하는 마력이 있는 문학. 문학을 아주 정확하고 쉽게 표현한 말에 감탄을 했죠. 하지만 모든 문학이 소비한 뒤에도 그대로 있고, 처음보다 더 군침 돌게 하지는 않아요. 요즘은 말 그대로 소비만 되는 문학들도 많으니까요. 이 말에 해당되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통해 선택받고 검증된 고전이라는 책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대를 막론하고 고전을 읽으려고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고전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잘 이해하거나 와닿지 않을 수 있거든요. 바쁜 현대인에게 맞지 않는 독서법 같지만 요즘이라 더 필요한 고전 읽기, 문학의 매력이지 않을까요?
오스틴의 소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제대로 살려면 우선 살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삶이 삶을 가르친다. (p161)
저자의 탁월함을 느끼게 되는 문장입니다. 문학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작품들을 그 특성에 맞는 단 한 문장으로 정의합니다. 오스틴의 소설도 이렇게 정의하죠. 그리고 그 소설들의 내용이 모두 여주인공이 누구와 결혼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합니다. 오스틴의 소설들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이 문장을 읽고 나자 한눈에 오스틴의 소설이 그려집니다. 그렇구나! 이런 질문을 품고 있는 오스틴의 작품이니 오랜 시간 동안 읽히고 사랑받는 것이겠죠. 비록 1960년대 페미니즘 운동에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삶이 삶을 가르치는 그녀의 메시지는 강력한 것이죠. 제대로 살기 위해 살아보는 삶, 연습 같은 삶이 아니라 매 순간 제대로 살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삶 말입니다.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소설을 쓰면서 짧은 삶을 마감한 것은 다행이라고 저자는 말해요. 그렇지요. 지금도 엄마가, 아내가 글을 쓰는 것은 많은 장애물을 과감하게 건너뛰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엄마와 아내로서의 삶을 경험했다면 오스틴의 작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방언과 언어의 차이점은 언어는 군대를 뒷배로 가진 방언이라는 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영어가 대영제국이라는 거대하고 막강한 국가를 가졌기 때문에 언어로 인정받고 영문학이 문학사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죠. 문학의 큰 흐름에서는 영어로 쓰인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20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인도나 중국, 일본, 콜롬비아, 아르헨티나가 나옵니다. 뛰어나고 독창적인 한글을 가진 우리가 세계 문학의 역사에 조그만 흔적도 남기지 못한 것이 문학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워요. 결국은 강력한 나라의 힘이 있어야 가능 한 것이죠. 중국이나 인도가 많은 인구수로 인해 살짝이라도 발을 걸친 것에 비교하면 아쉬움이 큽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문학에 대한 자부심과 아쉬움을 느꼈다면 또 하나 깨달은 것은 문학을 그냥 즐기자는 마음입니다. 어차피 저자의 말처럼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어요. 다 읽겠다고 마음먹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죠. 이렇게 읽어야 할 것이 많은 세상에서 어떻게 좋다는 작품만 골라 읽어도 다 읽을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의 역사를 읽으면서 저의 독서 습관을 돌아봤어요. 도장 깨기처럼 권수에 집착하는 독서가 아니라 문학이 소비되고 나서도 그대로 있고, 더 군침 돌게 하는 것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시대, 나른 나라 사람들이 느꼈고 살았던 감정을 책을 통해 느끼면서 즐기고 싶다고요. 그러다 보면 문학은 그 특유의 힘으로 생각하게 하고, 많은 문제들을 공론화 시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삶과 사람들을 이끌어 갈 겁니다. 무언가를 하겠다고 거창하게 다짐하고 책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즐기는 마음으로, 의무감이나 지적 허영심이 아니라 문학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독서를 해야겠습니다. 서사시가 지금은 쓰이지 않는 이유와 어느 왕을 세울 것인가를 다룬 셰익스피어의 글들, 비로소 소설의 원형을 갖추게 되는 돈키호테와 천로 여정 등을 읽어요. 그것도 아주 잘 정리된 쉬운 우리 말로요. 간혹 초기 영어의 원형을 보여주기 위해 원문이 그대로 쓰이고 아랫부분에 번역이 나오는 것도 있습니다. 초기 영어나 요즘 영어나 모르기는 매한가지라 색다르면서도 저자의 의도를 느끼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들었어요.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전처럼 기분 상하지는 않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요? 쉽고 정확한 문학의 역사를 한 권으로 만나보길 원하시는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두께로 압박해 오더라도 읽기는 쉽고 심지어 재미도 있으니 꼭 도전해 보시라고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