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 북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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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싶을 땐 소설을 보라는 말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투명하게 보여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의도와 목적 같은 것들, 혹은 안타까운 진심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약간은 소설을 멀리했습니다. 글을 쓰려면 결국엔 마음에 가닿은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 마음을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신청한 책입니다. 회색 바탕에 금박으로 처리된 수상작품과 작가들의 이름이 찬란하게 빛나는 표지를 부러운 듯 쳐다봐요.


대상 작가인 안보윤의 <애도의 방식>과 자선작 <너머의 세계>가 실려 있고, 심사평도 이어서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우수작을 수장한 작가들과 작품들이 함께 실려 있어요. 강보라 작가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겨>, 김병운 작가의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김인숙 작가의 <자작나무 숲>, 신주희 작가의 <작은 방주들>, 지혜 작가의 <북명 너머>, 기수상작가인 김멜라의 <이응 이응>까지 총 10편의 단편 소설들이 실려 있어요. 작가들은 대체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10년 내외의 젊은 작가들입니다. 앗 대상 작가인 안보윤은 2005년 문학동네 작가 상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니 20년이 다 되어 가네요. 단편 소설은 숨겨진 맥락과 뜻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작가의 의도대로 읽어내기 쉽지 않습니다. 바짝 긴장하고 소란하다는 첫 문장 속으로 들어가요.


알 리가 없다. 이미 으깨진 것을 기어코 한 번 더 으깨놓는 사람의 마음 같은 건. (p28)

대상 수상작품 속 심사원들의 찬사를 받았다는 문장입니다.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은 주인공 동주는 미도파에서 일을 하면서 소란한 소음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어요. 터미널이 함께 있는 공간 옆에서 찻집이지만 점심 특선으로 함박스테이크와 콩나물국을 파는 미도파는 늘 소란합니다. 늘 소란하지만 자신을 끈질기게 찾아오는 한 여자로 인해 동주의 소란 속 고요는 깨어지게 되죠. 그녀는 주문한 함박 스테이크를 먹지 않습니다. 함박스테이크 위에 올려진 계란 노른자를 포그로 헤집고 함박 스테이크를 으깨놓죠. 그 모습을 본 동주가 하는 말입니다. 이미 으깨진 것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보면 함박 스테이크를 말하는 것이지만, 깊이 들어가면 동주 자신의 마음이죠. 무엇으로 인해 으깨진 것일까요? 여자는 왜 이토록 끈질기게 동주를 찾아와서 간절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해 달라고 애원하는 걸까요? 동주와 여자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질문에 답하면 이 소설을 모두 읽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제목이 왜 애도의 방식인 걸까요? 동주에게 애도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걸. 그러니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걸. 오늘 장희 군한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삼촌은 절대로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았다고. 곁에 있는 사람을 하루라도 더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삼촌이었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고.(p154-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중에서)

성경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 제게 늘 동성애는 풀기 어려운 숙제 같은 것입니다.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를 증오하거나 미워하지 않으면서 사랑해야 한다는 큰 전제가 있지만, 늘 머리와 마음은 따로 놀았죠.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이야기와 삶이 있을 텐데도 알지 못하는 저의 짧은 경험과 지식으로, 혹은 좁은 마음으로 그들은 늘 멀리 있는 사람들이었지요. 특히나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아직도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고 가부장적인 읍 소재지 이니 그렇게 사는 것이 쉬웠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소설을 읽고 깨닫습니다. 저의 가식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요.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고, 자신의 성적 취향이나 정체성으로 인해 많은 비난과 조롱, 심지어는 가족과도 단절된 삶을 살아왔던 아픔을 봅니다. 같은 동성을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지만 그것 말고는 나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요. 직계 삼촌은 아니지만 삼촌뻘의 원진 무씨는 시대가 지금보다 더 보수적일 때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로 인해 가족들로부터 죽은 사람으로 취급받아요. 유독 삼촌을 잘 따랐던 장희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삼촌을 보살피고 있다는 사람의 방문을 받습니다. 그 사람들 통해 삼촌의 삶을 접하게 되죠. 그들의 삶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결코 사람으로서 품위를 잃지는 않았다는 말을 전해 듣습니다.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았고, 주위에 있는 사람을 살고 싶게 만든 사람이라면 존경받아 마땅해요. 그가 동성애자라고 할지라도요. 그러면서 깨닫습니다.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으면서 동성애자를 사랑하는 법을요. 그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동성애를 빼고 사람으로 보면 되는 것이죠. 내 좁은 생각과 편견 속에 사람들을 가두고 난도질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뉴스를 보면서도 전처럼 비난과 조롱으로만 그들을 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들도 사람이라는 따뜻한 눈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래서 소설(문학)이 무용하다는 시대에도 꾸준히 읽히고 창작되는 모양입니다.


이 외에도 소설은 기발하고 참신한 소재와 문장들이 가득합니다. 자작나무 숲은 호더 할머니의 집을 둘러싼 상속에 대한 이야기이고, 작은 방주들은 지금 시대 상황을 정학하고 슬프게 담았어요. 늘 최선을 다해 버티던 친구가 비트 코인 회사로 이직하고, 사기에 휘말리면서 실종되었습니다. 비트 코인 광풍이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피해자를 많이 남겼다는 사실을 인지했지요. 또 <북명 너머>에서는 북명이라는 백화점에서 함께 일한 조옥 언니와의 일들을 다루면서 그 시대 상황과 장소적 특징이 어우러져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죠.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에서는 고급 취향에 대한 신랄함을 보여줍니다. 기수상작으로 실린 <이응 이응>은 앞으로 일어날 것 같아서 쓸쓸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줬어요. 멀지 않은 미래에 이응이 곳곳에 설치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대상작인 애도의 방식이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학폭 피해자라거나 가해자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알고 살고 있는 제게 소설은 말하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맡겨두고 있으면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학폭 피해자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지 마음이 답답하고 슬펐어요. 동주가 단 한 번 질문의 답을 비틀었던 것처럼, 그 힘으로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기를 바라고 믿고 싶습니다. 소설 속 동주가 소설에만 있지 않을 것 같은 섬뜩함 때문이죠. 우리가 나와 네가 아니라 우리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꿈꿉니다. 누구도 강요에 의한 애도가 아니라 자신만의 애도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요.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에 나오는 원진무 삼촌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헛헛하고 쓸쓸하지만 그래도 비관적이지 않은 것은 동주에게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애도하는 힘이 느껴져서입니다. 우리 아직은 살아 볼 만한 세상인 거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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