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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을 탄 소크라테스 - 최정상급 철학자들이 참가한 투르 드 프랑스
기욤 마르탱 지음, 류재화 옮김 / 나무옆의자 / 2023년 8월
평점 :

소크라테스가 사이클을 탄다고요?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입니다. 책 표지의 철학자들이 사이클을 타는 모습이 역동적으로 그려져 있어요. 뒤에서 사이클에서 내려서 반대 방향으로 손가락질을 하는 저 철학자는 누구죠?
저자 기욤 마르탱은 1993년 파리에서 태어났어요. 2016년부터 프로 사이클 팀 코피디스의 선수로 활약하고 있고, 2017년 투르 드 프랑스에 처음 출전했어요. 이후 2018년에는 종합 21위, 2021년 종합 8위, 2023년에는 종합 10위를 기록했습니다. 합기도 사범인 아버지와 배우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스포츠와 예술을 가까이하며 자랐죠. 열세 살부터 사이클 클럽에서 들어가 사이클을 타며 경쟁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을 즐겼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는 알랭과 니체를 접하며 철학에 심취했죠. 학업과 사이클을 병행하다 낭테르 대학에서 <현대 스포츠: 니체 철학의 응용?>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로 선수로 활동하면서 희곡과 에세이를 쓰면서 철학과 스포츠를 주제로 책을 썼어요. 사이클 선수이자 철학자인 자신을 벨로 조프라는 재미있는 신조어로 명명하며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스포츠에 대해, 스포츠 애호가들에게는 철학에 대해 말해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저서로는 <플라톤 VS 플라토슈>, <펠로톤의 사회>, <사이클을 탄 소크라테스>가 있어요.
책은 최정상급 철학자들이 참가한 투르 드 프랑스라는 부제에 어울리게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름은 들어 봤을 철학자들이 투르 드 프랑스라는 사이클 경기에 참여하는 내용입니다. 책은 1부에서는 투르 드 프랑스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이어집니다. 선수 섭외와 훈련과정 등이 나오죠. 2부에서는 철학자로 꾸려진 팀들이 실제 경기에 참여하는 모습이 나와요. 경기를 하는데도 철학자들 특유의 특징과 사상들이 잘 나타나 있고, 박진감 넘치는 사이클 경기 장면이 TV 중계를 보는 것처럼 펼쳐집니다. 자! 여러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최종 우승은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철학은 시간을 내서 하는 활동이 아니야. 생각한다는 건 선언되는 게 아니야. 철학은 솟구치지. 그건 삶의 예술이야. 생각은 내용만이 아니라 양식이기도 하지. (P26)
그리스 팀의 주장인 소크라테스가 올림피아 기자 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속으로 답하는 대사입니다. 기자들의 질문은 저자의 경험에서 나온 사실적인 질문이 많아요. 사이클 선수이면서 철학자인 저자는 자신에게는 전혀 새롭거나 낯설지 않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특이하게 본다고 말하죠. 사이클 선수로서 철학이 어떤 도움을 주느냐는 질문은 단골 질문이라고 해요. 이 질문은 어김없이 소크라테스가 속한 팀에게도 주어지죠.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 특유의 아포토스(몸, 형체가 없는, 특정한 범주에 넣을 쑤 없고 그 누구와도 잘 비교되지 않는 특이한 인물) 적인 특징을 보여주며 말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있는 것 같으나 없으며, 없는 것 같으나 있는 상태라고 할까요? 저자는 철학자들의 특징을 해학적이면서도 기발하게 사이클 경기에 녹여내고 있어요. 소크라테스의 이 대답은 제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철학이 소용이 있느냐고 묻는 사회에서 철학과 4학년인 딸아이를 둔 엄마로 사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에요.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대답처럼 철학은 솟구치는 삶의 예술입니다. 즉 어디에서나 언제든지 철학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것으로 들렸거든요. 철학은 솟구치는 겁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P138)
니체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니체인 줄 모르고 언젠가 공책에 베껴 적으며 전의를 불태웠던 적이 떠오릅니다. 그러면서 니체에 대해 요즘 자주 생각해요. 물론 깊이 있는 생각은 아니지만 니체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니 그가 말한 “신은 죽었다!”라는 말이 정말 액면 그대로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우리는 사람들이 원하는 말(신은 죽었다)에 니체를 오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죠. 신은 죽을 수 없는 존재인데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내막을 살펴봐야 하는 건 아닐까요? 더욱이 신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기독교식 교육을 받고 그 자신도 신학자로서의 교육을 받았다면 말이죠. 어쩌면 사람들은 니체의 안타까움과 절규에 가까운 이 말을 면죄부 삼아 신이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요? 그 속에서 니체는 자신을 죽이지 못하는 것들로부터 더 강해지고 단단해지진 않았을까요? 지금은 사이클 안장 위에서 솟구치는 철학을 하는 철학자들을 따라 이런저런 생각을 펼쳐봅니다.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서 모두가 정답 일 수도 있는 생각을요.
철학자들을 잘 알지 못하지만, 번역한 이의 친절한 주석을 따라 읽으면서 사이클에 대한 흥미가 생겼어요. 철학자들이야 원래 어려우니까 하고 뒤로하고, 사이클의 펠로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강력해졌습니다. 실뭉치라는 어원의 펠로톤은 사이클 선수들이 수십 명씩 모여 달리는 형태를 말해요. 간혹 스포츠 중계에서 역동적이며 빠른 사이클 선수들의 움직임을 본 적 있었는데, 그게 펠로톤이었던 거죠. 투르 드 프랑스의 경기 방식과 득점 방식,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색깔이 다른 경기복 등도 흥미 있었습니다. 또 경기가 진행될수록 어떤 철학자가 어떤 방식으로 우승을 할지 긴장하면서 지켜보기도 했어요. 저자는 특유의 철학적 지식과 유쾌함으로 언어유희를 즐기기도 하고, 철학자의 대표 공식(아인슈타인의 공식)을 살짝 비틀기도 합니다. 친절한 주석이 없다면 재미를 거의 느끼지 못했겠지만, 조금은 따라 웃을 수 있었어요.
철학이 요즘 시대에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가장 적절하게 답하고 있는 책입니다. 철학은 우리 삶의 실제적인 모든 것에 관여하고 있고, 인간 개인에게도 아주 중요한 가치관이죠. 은유 작가는 자신의 책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말해요. 글 쓰는 사회복지사, 글 쓰는 선생님, 글 쓰는 의사, 글 쓰는 청소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물론 예를 든 직업보다 더 많이 예를 들면서 사회 모든 사람들이 글쓰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도 은유 작가처럼 말해 봅니다. 우리 사회 모든 사람들이 철학을 하길 바랍니다. 철학자 사이클 선수, 철학자가 만든 빵, 철학자가 내린 커피도 멋지지 않나요? 똑같은 맛이라 할지라도 철학을 통해 사람이 다르니 그가 만든 빵과 커피, 그가 보여주는 사이클 경기는 다르지 않을까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