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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열림원 세계문학 1
헤르만 헤세 지음, 김연신 옮김 / 열림원 / 2023년 7월
평점 :

성장 소설의 대명사로 우리나라에서 널리 읽히고,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인 소설. 작가도 유명하고 주인공도 유명한 소설이지만 이제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장기 소설이라는 짧은 지식을 갖고 만난 데미안이 어떤 말을 해 올지 기대가 됩니다.
1877년 7월 2일 독일 뷔르템베르크 주 칼프에서 선교사인 아버지 요하네스 인도 학자이자 선교사의 딸인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 사이에서 헤세는 태어났어요. 집안 환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신학교에 진학을 했으나 7개월 만에 그만두고 시인이 되겠다고 맹세합니다. 이후로 서점 견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1898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를 출판했죠. 1904년에는 첫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하며 이름을 알렸고, 연이어 대표작 <수레바퀴 아래서>를 발표했어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듬해 <데미안>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고,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등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을 썼습니다. 그의 생애에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했으며 2차대전 중에는 자신의 저사가 금서가 되는 일을 겪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난 다음 해 노물문학상을 수상했어요. 그는 스위스 루가노주 몬타뇰라에서 85세로 생을 마감합니다.
책은 주인공인 싱클레어의 11세부터 시작됩니다. 다소 자전적 느낌이 나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싱클레어를 양육하죠.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싱클레어는 밝은 세상인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들이 있는 집과 자신의 내면의 어두움과 악함의 괴리감으로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러던 중 당시 불량배에 속했던 프란츠 무리와 어울리게 되고, 우연하게 허풍과 과장을 포함한 이야기가 자신을 어둠 속으로 인도합니다. 프란츠와 싱클레어, 데미안은 어떤 만남과 일들을 이어 나갈까요? 원문에 가장 가깝도록 번역하기 위해 애썼다는 번역을 따라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인간에게 자기 자신에게로 이끄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싫은 것은 세상의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p76)
프란츠의 위협과 협박으로부터 한순간에 구해낸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또 다른 질문들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줍니다.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며 살아왔던 집안의 밝은 세계에 대한 의문들이죠. 성서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의문을 데미안을 통해 품어요. 카인과 아벨에 대한 데미안의 말은 오래도록 싱클레어를 괴롭힙니다. 어쩌면 데미안과 싱클레어 만남은 필연적인 성장과정에서 오는 당연한 것일지 몰라요. 누군가를 만나서 자신의 작은 세계를 의식하던지, 책을 통해 인식하던지. 인식하는 순간 이전의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죠. 그 혼란과 의문들을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에게로 이끄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길을 가기 싫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요. 자신이 믿고 있고 전부라고 생각했던 세계에 대한 의심과 혼란은 싱클레어를 휘청이게 합니다.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의 속한 세계에 대한 의문을 가졌을 거예요. 싱클레어는 데미안이라는 친구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인식하고, 의문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죠.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로 이끄는 길을 가는 것은 비단 사춘기 때만은 아닐 겁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거부할 수없이 맞닥뜨리게 될 숙명 같은 일이죠. 지금 쉰을 바라보는 제게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러나 우리 내면에서는 날마다 세계를 갱신하고 있어야 합니다. (p178)
데미안과의 만남은 싱클레어에게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을 기꺼이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도망치는 것을 선택해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고 술을 마시고 방탕한 생활을 경험합니다. 아버지도 설득하기를 포기할 때쯤 그는 어떤 소녀를 만나게 되고 그 길에서 완전히 돌아서요. 그리고 또 다른 사람 피스토리우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더욱 확장시키고, 데미안과 떨어져 있었지만 연결됨을 느끼죠. 데미안을 처음 만났을 때 일차적인 성장이 있었다면 이번 피스토리우스를 만나면서는 2차 성장이 있게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성장이라 부른다면요. 날마다 내면의 세계를 갱신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어제의 낡은 것으로 오늘을 살수 없다 정도로 이해하기엔 깊이가 있어 보이지만 완전히 깨닫지는 못합니다. 어제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오늘의 삶을 새롭게 갱신하며 사는 것. 그것이 헤르만 헤세가 그 당시 유럽 청년들에게 바랐던 바는 아닐까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려는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서도 누구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고, 그냥 그런대로 청춘을 허비하듯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말입니다. 전시가 아닌 지금도 우리는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기꺼이 가고자 하고 날마다 내면에서 세계를 갱신해야 합니다. 도태가 아니라 성숙을 원한다면!
책은 청소년 성장 소설로 읽기에는 어렵습니다. 처음 부분은 사춘기 시절의 내적 혼란으로 읽을 수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청소년 성장 소설의 힘은 잃어버리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가려면 알을 깨고 나와야 하듯이 각자의 알을 각자가 깨고 나와야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도 자신의 세계를 깨고 나와 열린 눈으로 싱클레어와 데미안을 만나야 하죠. 어머니 에바 부인을 향한 싱클레어의 사랑과 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을 굳이 소설에 넣은 저자는 무슨 뜻이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지만 쉽지 않아요.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을 싱클레어의 이상으로 읽을 수도 있고, 젊은이들의 이상으로 읽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작품 해설에서는 획일화와 대중화 속에서 개인의 가치를 되 살려내려는 의지를 표방한 작품이라고 나와요. 그렇게 읽으면 쉬울 수도 있겠습니다. 개인은 모두 다르고, 가치관이나 우선순위가 모두 다르니까요. 데미안이나 싱클레어라는 개인은 이럴 수도 있습니다. 나와는 다른 싱클레어를, 혹은 데미안을 나처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모순이죠. 이 작품은 숲을 보려고 애쓰기 보다 나무를 보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이게 무슨 내용이야라고 질문하는 것보다는 하나하나의 문장과 대사들을 음미하면서 읽으면 데미안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올지도 몰라요. 세계를 깨고 나오라고. 자신의 길을 가라고. 날마다 내면의 세계를 갱신하라고 말입니다. 획일화되고 대중화되는 현재에 더 존재감을 갖는 데미안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