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은 운명처럼 내게 왔습니다. 서평 전문 카페에서 굉장한 경쟁률에 밀려 포기하고 있었죠. 근데, 다른 카페의 운영자님께서 제 블로그에 링크를 걸어주셨어요. 이 책의 서평단을 모집하고 있다고, 응모를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얼른 가입하고 댓글을 달았어요. 이제는 내 손을 떠났다고 생각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카페를 들락거렸습니다. 발표일에 제 닉네임이 떴을 때 너무나 기뻤죠.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기다리고 받았는데, 분량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 독서 잘 끝낼 수 있을까요? 30년의 오늘을 꾸준히 보낸 작가도 있는데 읽는 것으로 부담을 느끼다니, 안될 말입니다. 유쾌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베르베르 씨를 저도 웃음으로 답하며 책을 넘겨요.


프랑스어로 글을 써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와 인정을 받은 흔치 않은 작가죠. 무려 여덟 살 때부터 글을 썼다고 하니 타고난 작가입니다. 아버지는 이야기를 좋아하셨고, 어머니는 그림을 그리셨어요. 그래서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강직성 척수염을 앓았던 유약한 소년이었지만,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고 해요. 그 후로도 자신의 일부처럼 글을 쓰고, 여러 직업들을 경험합니다. 자신이 한 경험들과 만나는 사람들을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소설의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 상황들에 참고하죠. 모두 읽어 보진 않았지만 제목을 알고 있는 개미도 무려 12년 동안 17개의 버전을 썼다고 하니,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관심사를 글쓰기와 연결하고, 독특한 창의성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죠.


이 책은 그가 데뷔 30년 만에 처음 선보이는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었거나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들을 중심으로 자세하게 쓰여 있죠. 나이순으로 이어진 글에는 그 글을 대변하는 한 문장들이 시작을 알립니다. 또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 타로 카드를 통해 그 장의 분위기와 내용을 먼저 유추하게 해줘요. 가령 첫 시작은 <다 끝났어. 넌 죽은 목숨이야> 같은 문장이죠. 14세의 코르시카 섬에서 친구들과 야영을 하다가 자신을 강도 패거리로 오해한 식당 주인이 목에 총을 겨누면서 하는 말입니다. 다행히 식당 주인의 아들이 나와서 말리는 바람에 안전하게 풀려났지만, 그 경험은 삶에 큰 영향을 줘요. 죽음이 언제 어디서나 갑자기 닥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삶에 충실하게 살려고 마음먹습니다. 이후의 일들은 그 마음들이 쭈욱 이어진 결과로 보여요. 과학을 좋아하고 곤충을 관찰하기 좋아했지만, 암기에 재능이 없었던 관계로 과학계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좋아하고 관심 있던 개미를 관찰하는 일은 계속 이어지죠. 이 책을 번역한 작가는 말합니다. 작가를 규정하는 단어는 수렴이라고요. 모든 것이 글쓰기로 모아지는 삶이라는 거죠. 글쓰기로 수렴된 그의 촘촘한 일상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래된 기억이 더 상세하고 실제적이라는 겁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58세의 이야기보다 첫 시작인 코르시카 섬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나와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생각을 하다가 깨달아요. 그의 메모 습관 덕분인 거죠. 글쓰기를 작가들의 책을 통해 배웠고, 배운 것을 확실하게 실천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흥미를 가진 것을 흥미로 두지 않고 발전시키고, 탐구하는 자세를 가졌죠. 과학 기자로서 조직사회의 쓴맛도 경험하죠. 자신의 삶의 중간중간 결정적인 만남도 나오고(무려 이혼을 2번이나... 결혼은 3번) 영성과 사후 세계, 유도몽과 전생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옵니다. 그것이 사실이던지 아니던지 그의 말대로 판단하지 말고 이해하기만 하면 될 일이죠.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한 마디로 저는 이 말을 꼽아요. 고등학생 때 탐사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났던 르네 교수님의 말씀이죠. “이해하려고 노력하되 판단은 하지 않는다!” 이 말은 이후의 많은 상황에서 그를 이끄는 말이 됩니다. 너무 많이 판단하면서 이해하지는 않은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개미의 공전의 히트에 약간의 기여를 한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짧게 나옵니다. 저는 그 부분이 또 기분이 좋아서 긴 책을 기쁜 마음으로 읽었어요. 책을 읽게 되면 왜 제목이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인지 알게 됩니다. 그가 보낸 무수한 오늘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돼요. 하루에 4시간씩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 노력들과 타고난 호기심과 탐구열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죠. 옮긴 인의 말에 약간 동의를 못한 부분이 있어요. 글쓰기를 이 책을 통해 배운다고 했는데, 이해하기 어려웠죠. 약간 이런 느낌입니다. 어머니가 끓이는 된장찌개 레시피 같은 느낌? 된장은 적당히, 소금 약간이라고 말하지만 요리를 모르는 우리는 적당히 와 약간을 모르는 것처럼 그는 쉽게 스티븐 킹의 긴장감을 글쓰기에 적용한다고 하지만 스티븐 킹의 긴장감을 어떻게 적용하라는 건지... 그런 소소한 아쉬움은 자신의 책을 직접 설명하는 것을 읽는 즐거움을 가리지 못했죠. 개미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이제 개미에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12년간 17개의 버전을 쓰며 1500매짜리 글을 350매로 줄이며 쓴 글을 감히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저의 오늘이 베르베르 씨의 오늘과 조금이라도 닮아가기를 바라면서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