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게 살아가는 법
피연희 지음 / 보름달데이 / 2023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왜 선택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빨랫줄에 걸린 빨래가 바람에 날리는 그림을 보고 윤동주의 시가 생각났기 때문인지,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제목도 호기심을 자극했지요. 요즘은 빨랫줄을 거의 볼 수 없어요. 제가 사는 곳에서도요.(군 단위) 그래서 그 빨랫줄은 저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가슴 아픈 사연들을 쨍한 햇살에 널어 말리는 빨래처럼 걸고 싶었던 마음이 책을 오래 보게 했는지도. 그녀의 이야기들을 빨랫줄에 널 듯이 책을 펼칩니다.


저자는 올해 43세가 되는 여성입니다. 일찍 결혼하여 출산을 하고 서른여덟 살에 아들의 교육을 위해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지난날들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었다고 해요. 자신의 행복과 후회가 남지 않을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묻고 답하는 과정을 책에 남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고단했던 과거 일들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썼습니다.

책은 자신의 성장 과정을 시작으로 인생 2막이 펼쳐지는 이민 생활, 결혼, 육아, 이혼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마흔을 넘기고부터 중년의 행복 찾기를 위한 고민과 성공과 실패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들이 실려 있죠. 간간이 사진들이 첨부되어 있고, 글씨체는 작지만 읽기에는 수월합니다.

이제 나보다 어린 작가들의 책을 더 많이 만나게 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도. 그녀의 40대 초반에 중년을 돌아보며 쓴 글들이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가난해서 상처 많았던 작은 소녀의 지하 단칸방으로 조심스럽게 놀러 가봅니다.


마음먹은 지금 시작하면 된다. 그게 어떤 도전이든 상관없다.(p30)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그녀는 성인이 됩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생활을 시작하죠. 그 직장에서 10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 24살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 1년 후에 출산을 하게 되고 아들을 낳자 아들에게는 가난을 물려주기 싫었다고 해요.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그래서 그녀는 경매 공부를 시작하고, 그 공부가 밑바탕이 되어 공인 중개사 시험을 치게 됩니다. 어렵다는 공인 중개사 시험을 6개월 만에 합격하죠. 어린 아들을 돌보며 공부를 해야 했기에 새벽에 일어나 인터넷 강의를 듣고,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요. 아들이 돌아올 때 친정어머니가 봐 주시고, 저녁 7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집에 와서 집안일을 했다고 합니다. 친정어머니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겠지만, 그녀의 도전과 성실함이 이루어낸 결과겠지요? 마음을 많이 먹지만 막상 시작하지 못하는 저에게는 큰 도전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미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뒤로 숨고 싶었던 마음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얼얼합니다. 상황을 탓하고 여건을 따지지 말고 시작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두려움은 개나 줘 버리고서. 설사 시작하고 도전해서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 실패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과 성숙이라는 열매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마음먹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적어 봐야겠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요.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적당히 이기적으로 나를 생각하며 살아야 행복하고, 내가 행복해야 자식, 가족, 친구 등 주변을 챙길 힘도 생기는 거다. (p182)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서른여덟 살에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고, 이민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 쭈욱 이어집니다. 이후 그녀는 결혼, 육아, 이혼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합니다. 위에 문장은 이혼에 대해 말하면서 그녀가 하는 말입니다. 살다 보면, 죽을 만큼 사랑해서 한 결혼이라고 해도 살다 보면 관계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옵니다.

그때 하고 싶은 일도 도전하지 못하는 제가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고 해도 이혼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을 생각해 내고, 한 번 더 봐 주려고 스스로를 괴롭히죠.

그러면서도 이혼을 바라보는 제 생각들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제 스스로도 이혼을 절실하게 생각하면서도 누군가의 이혼을 색안경을 끼고 보니까요.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정말 살기 위해서 선택한 것을 나는 무슨 문제가 있을 거라거나 잘못을 한 것처럼 보니까요. 고정관념과 습관, 성격 등은 정말 무섭도록 잘 바뀌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이기적으로 내 행복을 챙기고 싶어도 그런 경험들이 부족한 저는 또 먼저 움직이며 마음을 씁니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죠. 해 주고는 잊어버려야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건 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쉬운 습관대로, 생각대로 움직이는 모습이 한심하기도 합니다. 변화가 어려운 것은 원래의 것을 거스르기 때문이라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녀의 담백한 응원에 힘입어 내 행복을 최선으로 하는 노력들을 해봐야겠습니다.


책은 기사처럼 담백하고,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감정이 빠진 문장들이 그녀의 경험들 사이로 빼곡하게 이어집니다. 영어 바보가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고 해요. 심지어 강사의 농담까지 외울 정도로 들으며 공부했다고. 이 문장은 길어야 2~3문장에 끝납니다. 하지만 그녀가 노력했던 시간들과 집중들이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옵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는 감정을 보입니다.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하시고, 말도 못 하고 누워만 계시지만 어머니가 살아 계 서서 감사하다고 하면서요.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가 실려 있습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저도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언제까지 제 곁에 계실 수 없는 것이 명백한 사실인데도, 저는 제 자식이 먼저입니다. 어머니도 자식도 함께 잘 섬길 수 있는 지혜를 배워봅니다. 청명한 가을볕에 빨래를 말리듯 그녀의 아픔들이 글을 통해 말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됩니다. 솔직하고 담담해서 더 와닿고, 더 치열하게 느껴지는 책입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모두가 책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의 용기와 도전을 함께 응원합니다. 더불어 그녀가 들려줄 50대와 60대, 또 멋진 70대를 기대합니다. 살아있게 살아 주어서 감사합니다. 나도 나의 자리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멋지게 써야겠습니다. 우리 함께 잘 살아 봐요. 어머니로, 아내로, 딸로, 그것보다 먼저 자기 자신으로.


빨래 윤동주

빨래줄에 두 다리를 드리우고

흰 빨래들이 귓속 이야기하는 오후,


쨍쨍한 칠월 햇발은 고요히도

아담한 빨래에만 달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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