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라 불린 사람들 - 지능과 관념 · 법 · 문화 · 인종 담론이 미친 지적 장애의 역사
사이먼 재럿 지음, 최이현 옮김, 정은희 감수 / 생각이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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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지능과 관념, 법, 문화, 인종 담론이 미친 지적장애의 역사’입니다. 이부제에 매료되어 책을 선택했지요. 배송된 책의 분량을 보고 살짝 긴장하긴 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새해에 다짐하면서 스스로에게 말했죠. ‘괜찮아, 천천히 읽다 보면 끝이 나겠지?’ 왠지 음울한 느낌이 드는 지적장애인들을 수용했던 병원 같은 복도 그림을 따라 낯설고 생소한 18~19세기 백치라 불린 사람들을 만나러 들어가 봅니다.


지은이 사이먼 재럿은 런던 대학 버크 백 칼리지 연구원으로 학습 장애, 지능 및 의식의 역사, 소속감, 시민권, 수용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역사가이자 작가입니다. 학계에 들어가기 전 수년간 학습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에서 일했다고 해요. 책에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용어들 이면에 있는 그들의 생활과 문화, 발자취를 추적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저자의 의도에 따라 책에서는 용어의 정의와 시대 상황들, 소설이나 연극, 만담집에 등장하는 백치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어요. 시대의 흐름에 따른 분류를 통해 백치라 불린 사람들과 그들을 불렀던 혹은 진단했던 용어가 어떻게 변화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방대한 자료와 함께 실려 있습니다. 간혹 그 시대를 그린 그림들과 삽화가 실려 있어 이해를 높여주지요. 우리와 조금 다르지만 우리의 이웃이었고, 가족이었던 사람들을 백치라는 이름으로 가두고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깁니다.


여기서 핵심은 피고인이라도 백치는 근본적으로 위험하지 않고 앞으로도 중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믿음을 판사와 배심원, 증인들이 공유했다는 사실이다. (p54)

18세기 초에는 백치들을 이렇게 대했다고 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정신적으로 조금 모자라지만 위험하지 않은 인물들로요. 간혹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위험하지는 않다는 믿음이 있었죠. 이 믿음은 이들을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살게 합니다. 조금 부족하지만 해 될 것이 없는 그들을 가족들과 이웃들이 돌보는 형태였죠. 간혹 범죄를 저질러도 가벼운 처벌을 받기도 하고, 그들이 백치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웃들이 증인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범죄를 저지르거나 상습범 일 때는 관대한 처분을 받기 어려웠죠. 18세기 초에는 그들은 우리의 이웃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후 이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이들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의 변화입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람들의 변화이며, 문화와 정책의 변화지요. 자신을 지킬 수도 없었던 백치들은 이 상황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봅니다.


예술가와 관객은 외모로 인간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는 생각과 가정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공유했다.(p86)

백치들은 그들만이 갖는 외모의 특징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령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통해 침을 흘린다거나 반쯤 감긴 눈, 튀어나온 턱 등을 통해 어디서나 백치로 인식되고 분류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모든 백치들이 같은 외모의 특징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관념화 시킨 사람들에 의해 그들은 점점 더 백치로 굳어지고 소외되기 시작하죠. 예술가들은 예술을 통해 외모로 인간 유형을 구분하고, 관객들은 그런 예술을 접하면서 같은 생각을 공유하게 됩니다. 이 공유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두려움을 먹이 삼아 이들을 점점 더 소외 시키게 되죠. 사실 18세기 초의 백치나 시간이 지난 후의 백치나 그들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 문화가 바뀌었을 뿐이죠. 승자에 의해 역사가 전혀 다르게 기록되고 학습되는 것처럼 그들은 그냥 그들이었습니다. 다만 정신적으로 조금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이었죠. 그들이 착하거나 위험하다거나는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일 뿐 그들은 언제나 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생각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보고 대하고 있습니까? 18세기 백치라 불린 사람들이 내게 질문합니다.


19세기가 끝날 무렵, 백치들은 신설된 정신 의료시설의 담장에 가려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난과 배척이라는 높은 은유적 담벼락에 둘러싸여 있었다. (p287)

18세기 백치들은 지역사회에서 그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며 부족하지만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에는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달라짐으로 인해 이들은 위험하고 불편한 존재가 되죠. 그래서 이들은 정신 의료시설에 수용되어 사회에서 그 모습을 거의 감춥니다. 처음 백치들을 백치라 진단한 것은 판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죄를 묻기 위한 재판 과정에서 그들이 백치임을 증언하는 이웃들의 증언을 듣고 판사가 판단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의학이 이들을 분류하고 진단하기 시작합니다. 의학은 이들 위에 군림하며 식별하고 통제하고 치료할 권한을 확보하게 되죠. 이런 일들은 정치적으로도 맞물려 이들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듭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을 뽑아줄 도움이 될 시민을 원했죠. 이들의 욕구와 병원과 의료계의 이해타산에 따라 이들은 가족들과 이별을 하게 되고, 시설 안에서 가족을 만들지도 못 한 채 생을 마감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은 시설에서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 체요. 가장 약한 자에게 비난과 배척을 하는 인간의 악함을 봅니다. 21세기 이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어려운 감정을 느낍니다. 인간이란 종에 대한 깊은 회의와 다른 것을 대하는 인간의 교만함과 오만함을 읽습니다. 지극히 자신들의 입장에서 원주민들을 백치라 칭했던 유럽의 침략자들의 인종 분류를 읽어요. 항상 가장 최상위에는 백인 남성을 두면서 가장 낮은 자리에는 아프리카 흑인들을 두는 분류지요. 이런 생각들은 유렵의 제국주의를 뒷받침했고, 다른 나라의 식민지를 정당하게 만들었습니다. 끔찍한 우생학을 보고, 히틀러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배웁니다. 시대가 그렇게 그를 만들어 갔고,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들을 공유하고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려 했던 시대를 읽습니다. 가장 낮고 약한 자들을 누구도 지켜주지 못했고, 지켜주지 않았고, 심지어 종교마저도 자신들의 이익과 유익을 위해 이들을 이용만 하지요. 약한 것이 잘못이 되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책 속에만 존재는 것일까요? 18~19세기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더 마음이 무겁습니다. 백치라 불린 사람들이 있었듯이 지금 현재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우리의 이웃들은 없을까요? 지적 장애의 역사를 읽으며 유럽의 제국주의와 우월과 교만에 찌든 인종 구분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인간을 구별하며 우월을 매길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책은 과거를 말하고 있지만 책을 통해 현재를 보고, 미래를 바꾸어 나가는 힘을 줍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생각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인정하며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해 줄 겁니다. 백치라 불리며 담장 안에 갇혔다가 또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풀려나기도 하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교만과 우월을 적나라하게 보는 눈을 줄 겁니다.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을 분류하거나 소외시킬 만큼 뛰어나지 않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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