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국지
임창석 지음 / 아시아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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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100년 전쟁사’라는 타이틀을 보고 선택한 책입니다. 분량이 조금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연말을 보내며 쳐진 기분을 올리는 데는 ‘국뽕’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역사서를 소설로 쓴 것이라 재미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재미와 기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한껏 올려줄 우리의 삼국 영웅들을 만나러 함께 떠나 보실래요?


저자 임창석은 정형외과 전문의이면서 소설가입니다. 특이한 이력이죠. 문학 사상에서 소설 부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어요. 지은 책으로는 <소설 백의민족>, <지구의 영혼을 꿈꾸다> , <자신의 영혼을 꽃을 주게 만드는 100가지 이야기>등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국사 편찬 위원회의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내용을 인용하고 도움을 받았다고 책의 시작 부분에 밝히고 있어요. 책은 총 8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나라와 평원왕(고구려 왕)의 전쟁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을 시작으로 100년간의 삼국의 전쟁사와 영웅들의 활약상이 사실감 있고 몰입도 높은 이야기로 펼쳐지고 있어요.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웠던 을지문덕, 김유신, 의자왕, 김춘추 등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배우처럼 등장하고 있습니다. 긴 전쟁의 역사 속에서 숨은 그림을 찾듯이 아는 사람과 사건들을 찾아가는 재미를 느끼며 민첩하고 지략이 넘치는 평원왕의 전쟁으로 가 볼까요?


전쟁이란 숫자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명의 기세는 둘을 이기고, 두 명의 용기는 넷을 이기는 법입니다. (p71)

아버지 평원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영양왕이 수나라 와의 전쟁을 대비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평원왕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주 나라는 수나라나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물론 아들이 왕위를 이어 받았지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은 왕이라고 해서 신하들에게 하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고구려의 왕들은 전쟁을 대비해서 신하들과 회의를 진행하는데 그 문답을 보면 누가 왕인지 신하인지 분간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흐름을 놓치기도 하고, 다시 읽기도 했지요. 고구려의 전쟁은 유명합니다. 성이 견고한 요새라 함락이 어렵고, 군사들이 용맹하고 용기 있기로요. 하지만 역사책에서는 그런 면면들이 실제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설로 만나는 이야기는 더 의미 있고 사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평원왕은 처음에는 주나라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적대적이 관계를 유지하지만 말년에는 조공을 받치는 등 화친 책으로 돌아섭니다. 하지만 영양왕은 아버지의 화친을 버리고 선제공격을 마다하지 않는 전략을 수립해서 대신들을 놀라게 해요. 전쟁의 목표와 목적이 늘 백성들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계속적인 전쟁의 위협을 끊어내기 위해 모험을 감행합니다. 대신들도 이 부분을 지적하며 말리죠. 하지만 영양왕은 위와 같이 말하면서 전쟁을 통해 다시는 고구려를 침범하려는 생각 자체를 없애야만 장기적으로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전쟁이란 숫자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세와 용기를 가지고 하는 것이라고 하죠. 어쩌면 이 말은 우리 민족을 대변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상황과 여건이 불리할 때도 이런 정신으로 도전하고 부딪혀서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요. 우리의 기적적인 발전에는 고구려인들의 이런 기상과 용기가 뿌리가 된 것은 아닐까요? 마음이 알 수 없이 뿌듯해집니다.


불법으로 인간들의 자비로움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 모두를 감싸 안아야 된다. 고통을 주는 자에게는 깨우침을 주고, 고통을 받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 부처의 마음이며, 나라가 어지럽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정치와 나라의 안정에 도움을 주는 호국불교 역시 백성들의 편안함을 위한 희생이니라. (238)

끈질기게 이어지는 고구려와 중국의 전쟁. 중국은 이름을 바꾸어 다시 태어나면서도 중원의 제왕이라는 왕관을 쓰기 위해 고구려를 침범합니다. 고구려는 수 나라와 당나라를 연이어 상대하면서 아래쪽으로 백제와 신라와의 전쟁도 간간이 이어갑니다. 신라는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선덕여왕이 불교를 통해 안정을 잡아가고 있죠. 하지만 언제까지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을 막아내는 것으로 이어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라벌에는 전쟁의 기운이 백성들 사이에서 은밀히 번져나갑니다. 이 대답은 자장법사가 삼국 전쟁이 일어날 경우 승려들의 할 일을 묻는 제자에게 하는 말입니다. 자장법사는 전쟁 이후를 생각하고 말하는 것 같아요. 아직 전쟁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전쟁으로 갈라진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을 말합니다. 이렇게 멀리 보고 대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말을 듣는 지도자가 있었기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은 아닐까요? 물론 당대의 영웅이라는 김유신과 외교의 달인이라는 김춘추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요. 이 문장을 고른 이유는 종교가 해야 할 일을 요즘 더 많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불교나 기독교나 사람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데, 왜 민심과 사람을 떠난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자신들만 잘 사는 것에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일어서서 나를 지켜온 우리 민족입니다. 무엇이 우선인지 조금 더 신중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개인이 나라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조상들에게서 배우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한 사람의 인물됨보다 나라 전체의 운명이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중요한 것입니다. 큰 그릇은 작은 물에 욕심이 차지 않는 법입니다. 큰 그릇은 큰물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하지요. 정치인이란 더 큰 그릇을 만들고 더 많은 물을 담을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기회와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p312)

당나라와 고구려의 전쟁 중 안시성 성주 양만춘과 고정의의 대화 중 고정의 장군의 말입니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등장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연개소문 개인의 탁월함으로 고구려는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연개소문이 대막리지 자리에 오를 때를 문제 삼아 연개 소문에 대해 협조하지 않고 있었죠. 하지만 전쟁 상황이 되자 자신의 감정보다 나라의 위기를 우선시합니다. 양만춘 장군에게 자신이 연개소문을 따르는 이유를 설명하는 듯한 말이죠. 이 말이 요즘 우리 정치에서 더 절실하게 필요한 말인 것 같아 밑줄을 긋고 몇 번을 읽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물됨보다 나라 전체의 운명이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중요하다.’ 지금 우리 정치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모두 자신의 권력과 안위를 위해서 정치를 갖다 붙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런 정치인들에게 더 큰 그릇을 만들고 더 많은 물을 담을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기화와 용기를 주는 것은 말 그대로 희망고문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 희망 고문을 놓을 수 없는 것도 우리 국민의 몫입니다. 한 사람의 탁월함과 인물됨보다는 다수의 깨어 있는 국민들이 우리의 역사를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까요. 우리에게 상황과 여건이 좋았던 때가 얼마나 있었던가요? 그래서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래왔으니까요.


김유신은 나이가 들어 조용히 눈을 감기 전 자신을 찾아온 문무대왕에게 말합니다. 당나라는 이제 신라의 적이며, 삼국의 백성들이 힘을 합쳐서 물리쳐야 한다고. 그 말을 새겨들은 문무대왕은 백제의 백성도 고구려의 백성도 하나의 백성으로 대해주고 국민이라는 소속감을 갖게 해줍니다. 이런 노력들이 어우러져 길고 길었던 100년 전쟁은 당나라를 몰아냄을 끝이 납니다. 우리는 흔히 역사에서 김춘추가 당나라를 개입시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를 자주 얘기합니다. 또 자주적인 삼국 통일이 아니라 외세를 이용한 것이었다고 삼국 통일의 의미를 낮추어 말하기도 하죠.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 시대 상황과 여건에서 신라만이 외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외교를 통해 삼국을 통일할 동력을 얻었다는 것이죠. 또한 당나라 군대에게 두려움을 주었던 고구려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나라가 사라지게 됩니다. 외부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 애쓰고 단결했던 고구려는 정작 왕권을 둘러싼 형제들의 전쟁으로 인해 망하게 됩니다. 가장 두려운 적은 내부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도 쉽지만은 않아요. 북한과 거의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 가고 있고, 경제적인 것도 전쟁이 되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는 전쟁이 아니라 경제와 문화와 사이버 상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왜 굳이 이 책을 읽어야 할까요?

얼마 전 본 유튜브 영상이 생각납니다. 굳이 인문학을 읽어야 하느냐 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죠. 그 영상을 보며 공감을 했습니다. 지금 당장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인문학은 중요하며 읽어야 한다고요. 지금 당장 이 책을 읽는다고 크게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역사들을 통해 시대 상황이 달라진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큰 그림을 그려 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정치와 리더들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도요. 그 기본이 바로 선 사람은, 혹은 나라는 어떤 어려움에도 넘어지지는 않는다고 믿습니다. 기본기가 약한 선수가 결정적인 상황에서 실수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기본이 바로 선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며 두껍지만 재미있고, 품위 있는 왕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당신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이 뿌듯함으로 다가올 거예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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