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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 - 현대 의학이 놓친 마음의 증상을 읽어낸 정신과 의사 이야기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2년 12월
평점 :


정확한 진단명을 받기까지 늘 병원에서 하는 말은 신경성이었습니다. 신경성으로 인한 소화불량이고, 신경성으로 인한 두통이며, 요통이라고 했지요. 가까운 병의원에서는 늘 진통제와 익숙한 웃음과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처방받았습니다. 그런 경험들로 인해 책을 선택했는지 모르겠어요. 몸이 아프다고 늘 생각했으니까요. 어쩌면 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봅니다. 그 가능성의 확률을 높여줄 것 같아 선택한 책이지요. 흔히 생각하는 증상들은 몸이 아픈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확인을 위해 두꺼운 책 앞에 앉습니다.
저자는 런던의 가이스 병원과 모즐리 병원의 정신과 의사입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한 후, 영국 왕립 런던 종합병원 대학원에서 의학 교육 과정을 수료했어요. 종합병원 내과에서 근무하던 중,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모즐리 병원 정신의학 과로 전공 분야를 옮겼습니다. 이후 20년 넘게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지요.
책에서는 ‘원인 불명의 증상’으로 종합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정신감정을 맡아온 저자가 그동안 만난 여러 환자들이 겪은 아픔, 증상, 그리고 그들이 털어놓은 마음속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총 18개의 제목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는 저자가 의사로서 겪은 경험들이 생생하게 실려 있어요. 요즘은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지만 저자가 처음 진료를 시작할 때는 많은 오해와 부정적 시선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환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들어주고 싶어 한 순수한 열정이 책의 곳곳에 나타납니다. 저자의 순수하고 열정이 가득 넘치던 그 시절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의사가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실패해서다. (p22)
처음 시작은 종합병원의 정신과 의사라는 제목입니다. 의사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 체계적 한계에 대해 솔직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질병에만 집중하는 접근법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의학적 실패로 분류하며,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의료를 제시하죠. 하지만 이 실패는 인체를 이해하는 전문적인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죠. 의사가 사람들을 이해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조차도 필요 없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저는 6개월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하고, 3개월에 한 번씩 주사와 약을 처방받고 있어요. 그 의사는 초기 진료부터 수술까지 전담한 나의 주치의지만 나와 나누는 대화는 고작 5분 내외입니다. 의자에 앉아서 인사하고 처방받고, 다음 일정까지 말하는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간단한 인사와 안부를 묻는데 드는 시간이 아니라요. 그마저도 환자가 넘쳐나서 진료실 2개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의자에 앉을 시간도 없이 진료를 봅니다. 의사의 모습을 진료 대기하면서 지켜본 나는 질문을 하기가 미안해요. 그래서 특별한 것이 아니면 질문을 하지 않죠. 상투적이며 형식적인 질문 “요즘은 어떠신가요?”에 “피곤합니다.”라거나 “늘 비슷합니다.”라 같은 대답들을 하면서요. 언제쯤 환자가 의사와 신뢰 관계를 맺으며 진료할 때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요? 지금의 시스템과 체계로는 너무 멀어 보이는 일입니다. 하지만 의사가 환자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희망을 품게 되네요.
의사의 치료가 겨냥하는 것은 십중팔구 증상이 아니라 진단명이다. 의사는 협심증은 치료할 수 있지만 ‘흉통’은 치료할 줄 모르며, 류머티즘 관절염은 치료할 수 있지만 ‘관절 통증’은 치료할 수 없다. (p114)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습니다. 그렇구나! 의사들은 병명을 가진 통증은 치료할 수 있지만 병명이 뚜렷하거나 밝혀지지 않은 통증들은 치료할 수가 없는 거구나 하고요. 증상이 아니라 진단명을 위주로 하는 치료에는 진단명이 나오지 않는 증상과 통증들은 무시되기 쉽습니다. 관대하게 말해서 신경성이라거나, 예민해서라는 말을 듣게 되지요. 증상이 진단명을 동반하지 않을 때의 그 낭패감은 환자를 스스로 작아지게 하고, 불안들로 인해 증상을 더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불안이라는 것은 몸의 모든 곳에 자신의 영역을 남기듯 침범합니다. 환자들도 진단명이 나오지 않는 증상들은 다르게 생각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지는 못하죠. 머리가 아픈데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럼 다른 방법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게 됩니다. 정확하지도 않지만 불안을 잠재우고 증상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들이죠. 몸과 마음의 관계와 이해가 환자들에게도 의사들에게도 모두 필요해 보입니다. 증상에 집착해서 염려로 병을 키우거나 몸을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나 정신에 충격이나 힘든 일이 없었는지를 찾아보는 방법들도 필요해요. 하지만 우린 이런 상식적인 것들도 알지 못하고 염려만으로 병원을 찾습니다. 내 염려와 걱정을 잠재우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검사들을 하고, 의사들은 진단명을 위해 검사를 합니다. 불필요한 검사가 의료비용을 높이고, 환자를 때론 위험하게 할지 라도 해요. 의사와 병원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이 필요해 보입니다. 자신의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해서라도요.
마찬가지로 조력 자살을 금지하는 법률은 심사숙고해서 자기 삶을 끝내기로 결정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위해 삶을 끝내는 데 동의하라고 강요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p277)
책은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그중에서도 조력자살을 다룬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안락사에 대한 논쟁과 논의는 어느 정도 익숙합니다. 하지만 조력자살이라는 말은 용어만 들어 봤는데,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조력자살을 원하는 경우는 환자가 극심한 고통과 치료를 통한 회복이 가능하지 않을 때 생각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정확하게 판단할 인지 능력이 있는지도 정신과 의사가 감정한다고 합니다. 그 감정을 통해서도 인간의 정확한 의도나 마음은 알기 어렵다고 해요. 하긴 나도 잘 모르는 내 마음을 타인이 어떻게 정확하게 알겠어요. 처음에는 조력 자살이 원칙들을 지켜내며 시행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개입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경제적인 문제(시장에서 돈이 되는지)와 가족 관계 안에서의 문제점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해요. 그냥 편안히 책을 읽다가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런 문제점들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요. 누구나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럴 때 자신의 의지와는 상반되게 삶을 끝내는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아주 희망적인 생각도 해봤어요. 아무도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는. 기계에 의해 단순히 생명만을 연장한 치료는 환자 본인에게도 존엄성을 잃게 할 것 같아요. 내가 내 의지로 생각하고 말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삶을 정리하고 싶다는 것도 존중되어야 하지만 생명의 주인은 나 자신이 아님을 믿습니다. 그 주인께서 존엄함을 지키는 마지막을 주시길 기도하는 마음이 됩니다.
책에서는 정말 다양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어요. 만성피로증후군, 비만 환자의 수술에 따른 심리치료, 삶을 스스로 끝내길 바라는 환자와의 면담, 대머리로 인한 외모 혐오, 의사 말을 믿지 못해서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환자 등. 정말 다양하게 나옵니다. 물론 20여 년간의 기록들이니 어쩌면 추리고 추린 것일 수도 있겠지요. 책을 읽으면서 마음과 정신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깊이 있게 혹은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뇌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으며 아무리 뛰어난 기계라 할지라도 뇌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한 인간의 몸은 유기적으로 움직여서 어느 한 부분의 문제만으로 질병이 생기거나 통증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배웠지요. 그렇게 유기적이고 통합적으로 움직이는 몸과 마음, 혹은 정신을 오랫동안 분리해서 생각해 왔고, 마음(정신)을 너무 가볍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니 증상으로 밝혀낼 수 없는 질명들이이나 진단들이 많은 것이겠지요. 저자는 요즘 시대가 정신병을 강요하는 시대 같다고 합니다. TV나 인터넷에서는 자주 우울증에 대한 언급이 나오죠. 마치 누구나 앓는 것처럼요. 하지만 그것이 보편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울증도 우리 생각에 맞게 조각된 것처럼 느껴져요. 자신의 실수나 어려움을 마치 우울증의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요.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건강을 너무 염려하지 않는 것. 의사들의 말을 신뢰하고 증상에만 집중하여 병을 키우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실제로 나은 경우가 많다는 것처럼 저도 제 마음을 잘 다스리기로 마음먹어요. 또 책에서는 의사와 의료계의 문제점들과 앞으로의 개선 방향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나옵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영국은 참 좋겠다 생각했지요. 이런 의사가 리더의 자리에 있으니. 우리나라에도 좋은 의사 선생님들이 많으실 겁니다. 제가 알지 못해서 그렇지.
좋은 의사 선생님을 주치의로 모시는 기분이 됩니다. 몸과 마음, 정신에 대한 균형 잡히고 합리적인 생각을 갖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자신의 건강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마치 CT나 MRI처럼 진단받는 경험을 줄 거예요. 우리는 생각보다 건강합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