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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자주] 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 (표지 2종 중 랜덤) - 27편의 명작으로 탐색하는 낯선 세계사
박신영 지음 / 바틀비 / 2022년 11월
평점 :
어릴 때 읽었던 동화들 속에는 어떤 역사가 숨겨져 있을까? 그 동화들은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활과 모습들을 얼마큼이나 반영하고 있을까? 우리 역사도 쉽지 않은 내게 접근하기 좋은 소재의 책이었다. 정식으로 세계사라고 하면 엄두가 나지 않을 텐데, 명작으로 만나는 세계사라고 하니 부담감을 조금은 내려놓게 되었다. 고양이가 꼭 장화를 신어야 했던 이유를 찾아 저자의 기나긴 준비 시간들 속으로 들어가 본다.
저자 박신영은 문학과 역사, 인간에 관심이 많은 이야기꾼이다. 잘 살고 있는지 회의가 들 때, 글을 쓰다가 외로워질 때 좋아하는 역사책을 꺼내 읽는다. 이번 책을 쓰는데 10년 넘게 걸렸지만 전혀 지치지 않았다. 그녀의 첫 책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청소년 권장 도서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중국과 대만에도 번역 출간되었다. 현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또 다른 저서로는 <삐딱해도 좋아>, <이 언니를 보라>, <제가 왜 참아야 하죠?>가 있다.
책은 유렵의 형성과 유럽인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부터 시작하고 있다. 27편의 명작을 통해 세계사를 시대순으로 엮고 있다. 중세를 거쳐 대항해 시대와 산업혁명과 근대화, 제국주의와 세계대전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문에는 다른 이야기를 알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그녀의 긴 노력들이 조금은 이해를 더해 준다.
첫 시작 제우스는 왜 바람둥이일까에서 혼자 빵 터졌다. 그러게 신이라면서 왜 그렇게 바람둥이였지? 의심하거나 궁금증을 갖지 않았던 그동안의 독서에 따끔한 회초리를 맞는 기분으로 세계 여행의 짐을 꾸린다.
유럽 상징이 역사에서 동물의 왕이 곰에서 사자로 교체된 과정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문화적 현상이었다. 이는 유럽 전체에 퍼진 크리스트교의 승리를 반영한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고대 숲의 지배자인 곰을 잊지 못하나 보다. 어두운 밤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은 사자가 아닌 곰 인형을 안고 잠자리에 드니 말이다. 흠. 어린이를 강한 전사로 만들어주는 신적 존재는 여전히 곰인 것인가. 그렇다면 최후의 승자는 ‘테디 베어’다. (p61)
유럽인들에게 동물의 왕은 곰이었다고 한다. 곰의 우상 숭배와 싸운 크리스트교는 서서히 곰을 우상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다. 그 우상과 싸웠던 크리스트교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사자를 그 자리에 놓게 된다. 곰의 우상 숭배를 위해 싸웠던 크리스트교가 사자를 그 자리에 놓다니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사자는 실제로 유럽에서 볼 수가 없으니 우상이 될 가능성이 낮았다고. 그때부터 동물의 왕이자 승리의 상징이 된 사자. 이제는 너무 당연해진 사자의 위치가 곰을 밀어낸 것이었다니 새로우면서도 놀랍다. 너무 당연해져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일들을 찾아내는 저자의 눈이 매섭다. 또한 이런 식의 마무리가 너무 마음에 든다. 최후의 승자는 ‘테디 베어’라니. 곰은 자신의 자리를 사자에게 빼앗긴 것이 많이 억울했던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 품에서 살아났으니.
그렇다면 마녀사냥은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사화 불안기에 공공의 적을 만들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여성을 희생시킨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p115)
헨젤과 그레텔의 빵 굽는 마녀 이야기를 하면서 하는 말이다. 그 시대에도 여성은 언제나 약자였다. 특히 남편이 없거나, 아들이 없는 여성들은 집단으로부터 분리되어 거주했다고 한다. 어느 시대에서던지 사회의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약한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이 잦다.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누군가는 간첩이 되어야만 했던 것처럼. 그 희생양에 언제나 약한 사람들이, 그것도 가장 약한 사람들인 여성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후의 이야기에서도 여성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나온다. 폭풍의 언덕의 버사를 통해 그 시대적인 상황을 이야기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가지고 결혼을 할 경우 남편들은 그 재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리고 했다고. 그 안타까운 일이 중세에만 일어난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가? 지금 우리 주위에는 마녀사냥을 당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네덜란드의 실용 정신은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제방을 허무는 데에서도 나타난다. 레이던 공방전에서도, 100년 후 프랑스와 전쟁할 때에도 네덜란드는 제방을 터뜨려 적을 물리친다. 필요할 때는 거침없이 벽을 없애서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작은 나라 네덜란드의 성공 비결이었다. 국토는 둑으로 둘러싸였지만 사고는 막히지 않았던 것이다. (p179)
네덜란드에서 살다 온 작가의 특강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남편의 유학길에 아이들과 동행했다 던 저자는 네덜란드에 살면서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고, 그 도서관들을 둘러보며 책을 썼다고 했다. 그때 잠깐 네덜란드에 대해서 들었는데, 역사로 만나는 네덜란드는 멋진 나라였다.
물론 어느 나라나 어두운 부분도 있겠지만, 포용적인 생각과 과감한 결단력이 멋지게 다가왔다. 네덜란드의 실용 정신이 부러운 것은 우리의 역사에서 그런 결단들을 해 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종이나 흥선 대원군이 다른 선택들을 과감하게 했더라면. 리더들이 자신의 권력과 이익 때문에 국민을 힘들게 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역사의 선택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작은 나라 네덜란드의 막히지 않은 사고가 부러웠다. 가정이 없는 역사에서 똑같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저자의 마음을 느낀다. 내가 알지 못해도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책은 잘 알려진 명작들을 통해 세계사를 보여준다. 지도와 그 시대에 그린 것 같은 삽화들도 자주 등장하고, 무엇보다 자세하고 명쾌한 저자의 시대 상황 서술이 일목요연하게 다가온다. 10년이 넘게 걸렸다는 걸작을 이렇게 편안하게 읽어도 되나 싶게 탄탄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내용들이 기가 막히게 들어 맞고,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다니던 단편적인 지식들이 퍼즐을 맞추듯이 맞아지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라푼젤의 마녀와 신데렐라의 요정이 실은 주인공을 아끼는 사람들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철도 추리소설이 영국에서 유독 발달한 이유도 알게 되었다. 한 이야기가 끝나면 짧은 이야기가 하나씩 이어지는데 그 내용도 참신하고 유익했다. 어느 것 하나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또 하나의 명작으로 남을 것 같다. 필기도구를 챙겨서 공부하듯이 읽어도 좋고, 가벼운 마음으로 명작의 이야기들을 따라 읽어도 좋다. 시대 순에 따라 선택된 명작들을 고르느라 고심한 흔적도 보이고, 읽는 사람들을 위해 정성을 들인 마음도 깊이 느껴졌다. 고양이가 왜 꼭 장화를 신어야만 했는지도 알게 되고, 소시지를 먹고 싶다던 할아버지의 소원도 왜 하필 소지자였는지 알게 되었다. 첫 장을 넘기면서 유쾌하게 웃었다면 이야기 3개를 읽기 전에 저자의 첫 번째 책을 예스24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 정도로 흥미롭고 유익하며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세계사라고 하면 고개를 젓고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권한다. 저자의 마음과 지식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는 짧은 글이 미안한 마음이다. 그 미안함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꼭 알기를 바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명작을 가지고도 이런 책이 나왔으면 하는 욕심이 들었다는 점이다. 유명한 명작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읽는 나의 몫이지만. 저자가 그 탁월함으로 우리 역사도 풀어서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이 책은 교과서처럼 혹은 참고서처럼 공부하고 읽어야 할 책이다.
**YES24 리뷰어크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