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인생 수업 메이트북스 클래식 8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정영훈.김세나 옮김 / 메이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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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목의 인생수업(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저 류시화 옮김)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책이었다. 우연히 만났지만 발타자르 그라시안이라는 이름은 기대감을 높였다. 물론 내가 그를 잘 알지 못해도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는 책이니 더욱 궁금함이 높아졌다. 일주일을 기다려서 책을 받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스승님을 뵙는 심정으로 조심히 책장을 넘긴다.


저자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대철학자로 작가이자 신부이다. 1601년 스페인 아라곤 지방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15세에 발렌시아 사라고사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했고, 18세에 예수회 신부가 되었다. 예수회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며 글을 썼지만 현실 비판적인 내용 때문에 여러 번 예수회로부터 제명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저서 <오라클:신중함의 기예에 대한 핸드북>은 서구의 근대 철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비판자>발표 후 내려진 교단의 징계로 건강이 악화되어 1658년 사망했다.

엮은이 정영훈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이후 상담 심리대학원에서 상담과 심리도 공부했다. 졸업 후 출판기획자의 길을 걸어왔으며 다양한 분양의 책들을 기획하고 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이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책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옮긴이 김세나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일과 와 동 대학원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센터 연구원이다. 역서로는 <내 마음은 답을 알고 있다>, <나도 가끔 주목받는 사람이고 싶다>등이 있다.

책은 엮은이의 도움으로 주제들과 제목들이 읽기 쉽게 정리되어 있으며, 짧은 내용들이 마치 바로 앞에서 말을 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삶의 의미를 들려주는 인생수업이라는 주제의 1장을 시작으로 내면을 단단하게 하는 인생수업,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한 인생수업, 명망을 얻고 유지하기 위한 인생 수업, 말 내공을 키워주는 인생 수업, 인간관계의 비밀을 들려주는 인생 수업으로 끝이 난다. 굳이 순서에 따라 읽지 않아도 되고, 필요에 따라 선택해서 보는 재미도 있다. 16세기의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늘에 딱 맞는 조언들이 이어진다. 스승님을 앞에 모시고, 일대일 강의를 받는 심정이 되어 그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나만을 위해 마련된 의자에 앉는다. 아 참. 필기도구는 잠시 잊고 강의에 집중해 보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과 같다. 정의가 정의로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존경받을 수 없다. 훌륭한 외양은 내면의 완전함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다. (p38- 가치를 지니고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라 중에서)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보여주는 것. 이것이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일단은 그 가치라는 것이 세속적인 것이어서는 안된다. 내가 가치를 물질이나 돈에 둔다면 그 가치를 보여주려면 화려한 외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싼 장신구와 의복, 자동차 등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가감 없이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가치를 보여주는 사람들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저자도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바로 이어서 정의를 이야기한다. 스스로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을 만한 가치를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마치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라고 했던 야고보 사도처럼. 내가 하는 행동들이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낸다. 내가 하는 말들이, 태도들이 모여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고 타인에게 인식시킨다. 그 행동과 말과 태도에 가치를 담을 수 있기를. 그래서 보이는 것으로 나의 가치를 모두 알게 되기를 바라본다.


부당한 일을 단념하는 것은 외부의 엄격한 권위 때문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판단이 두렵기 때문이어야 한다. (p75, 자기 스스로를 두려워해야 한다 중에서)

부당한 일, 잘못된 일, 자기 욕심만을 채우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눈에 의해서 단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이 두렵기 때문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아무도 모르게 나쁜 일을 저지르고 집에 돌아와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하듯이. 그 괴로움으로 인해 부당한 일들을 단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과 이론으로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하지만 그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내 행동이 나를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아무도 보지 않으면 슬그머니 주머니의 휴지를 버린다. 차가 다니지 않는 횡단보도에서 빨간불에 뛰어서 건너면서 뛰기를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들킬 것을 염려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런 일들은 다른 사람 누구도 모른다고 해도 자신은 안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혼자 앉은 강의실에서 스승에게 나의 민낯을 보인 듯 얼굴이 화끈 거린다. 부끄럽다. 나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자!


세상의 절반은 다른 절반을 비웃는다. 우리는 한 사람의 찬사나 일시적인 찬사, 100년밖에 못 갈 찬사로 사는 것이 아니다. (p86, 일시적인 찬사에 우쭐해지지 마라 중에서)

첫 줄을 읽고는 나도 모르게 통쾌하게 웃는다. 말을 듣고 보니 그렇지만 이 말을 듣기 전까진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세상의 절반은 다른 절반을 비웃는다니.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핵심을 단번에 찔러 들어가는 말. 그 말에는 힘이 있다고 <하얼빈>에서 안중근의 말을 통해 김훈은 말했다. 그 말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낀다. 어떤 수식어나 미사여구 없이 단번에 탁하고 치고 들어가는 말. 세상의 절반은 다른 절반을 비웃는다는 세상에서 나는 누구의 찬사를 바라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것인가? 그것도 고작 100년밖에 못 갈 찬사를... 하지만 10년이라도 찬사 한 번 들어봤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좋아요의 수명은 하루를 넘기기 힘들 정도로 짧아졌다. 위대한 철학자인 저자는 100년의 찬사에도 우쭐하지 말라고 하지만 1년만 가도 우쭐할 판이다. 하긴 그의 말대로 그 찬사가 나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찬사는 듣는 이의 눈을 가리고 귀를 멀게 한다. 지금 당장은 달콤하고 황홀하지만 시간을 두고 봤을 때는 내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칭찬과 격려와는 다른 찬사. 찬사를 바라지 말고 자신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는 삶으로 나아가야겠다. 하긴 나에게 찬사를 보내는 사람도 없으니 더 잘된 일이 아닌가?


현명한 자는 모든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모든 사람은 개개인마다 어느 정도의 좋은 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어리석은 자는 모든 사람을 멸시한다. 좋은 점을 인식해낼 줄 모르고 훨씬 더 나쁜 점만 가려내기 때문이다. (p165, 모든 사람을 높이 평가하고 무언가를 배우려 하자 중에서)

세 사람만 걸어가도 그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말,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성경의 말씀. 이론으론 빠삭하다. 하지만 그 빠삭한 이론은 자기 우월감을 이기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을 일단은 높여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낮춰서 보는 습성이 인간에게는 있다. 아니가? 나에게만 있는 건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 모든 사람들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은 늘 힘든 숙제다. 어제도 오늘도 끝날 기미기 보이지 않는 어려운 숙제. 그러면서도 어리석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서 날마다 새롭게 도전한다. 가까이 있는 가족들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섬기기 위해 애를 쓴다. ‘남편은 나보다 낫다.’ 이렇게 세뇌하듯이 말을 하지만 순간적인 반응은 이성을 앞지른다. ‘개뿔 났기는 뭐가 나아.’ 오늘도 실패다. 현명한 사람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난 하구나. 그렇지만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고 믿는다. 알고 있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려고 애쓰면 언젠가는 현명한 사람 흉내라도 내지 않을까? 퇴근하는 남편을 웃음으로 맞으며 속으로 다짐한다. ‘남편은 나보다 낫다!’


16세기 대 철학자 앞에서 혼자 웃고, 얼굴 붉히고, 화를 냈다가 했다. 아주 오래전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 신랄한 풍자와 직설적인 문장들이 다른 철학자들이 왜 그렇게 경외의 시선을 보냈는지 깨닫게 했다. 예나 지금이라 인간 세상은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다. 관계의 어려움, 말의 중요성, 명망을 유지하고 지키는 법 등을 읽으면서 저자는 사람들을 사랑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조금 더 자신의 인생에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타인들과 잘 지내고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썼다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사랑을 부드러운 것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문장은 부드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 나의 평판이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도 한다. 그 이용이라는 것이 지금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 불편하기는 했다. 그래서 엮은이도 조금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엮은이의 말을 통해 밝혔으리라. 그런 불편함쯤은 마음이 넓고 큰 사람이 되어 수용하는 미덕을 보이는 것이 좋다. 저자의 말처럼. 마음이 넓은 사람은 크게 요동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한다고 했으니. 책을 읽다 보면 어디선가 들은 듯한 말이 많다. 어느 책에서인지는 몰라도 읽은 내용 같은 느낌도 자주 받는다. 책을 모두 읽고 깨닫는다. 이 사람이 원조라고. 그의 책이 거의 모든 자기 계발서의 뿌리구나 하고. 마르지 않는 샘 같은 그의 조언들이 지금도 여전히 흐르는 것을 본다. 조금씩 시대에 따라 모습을 바꾸기는 했지만 그가 원조고 뿌리다. 이제야 만난 것이 못내 아쉬워서 이 책을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엉망진창인 인간관계도 조금은 풀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만남을 통해 조금은 달라질 것을 믿는다. 346페이지의 깊은 만남을 했으니 달라져야만 한다.

쇼펜하우어, 니체, 처칠 등의 시선을 함께 공감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오늘도 길을 잃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권한다. 16세기 탁월한 철학가의 쓴소리와 웃음을 곁들인 담백하고 깔끔한 문장을 만날 수 있으리라. 그 만남을 통해 조금은 달라진 자신을 보는 유익은 덤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질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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