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개인적인 한국사 - 사적인 기록, 시대를 담아 역사가 되다
모지현 지음 / 더좋은책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적이고, 개인적인 기록들이 역사가 되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라는 문구에 끌려 선택하게 된 책이다. 역사라는 것이 꼭 위대한 사람, 오래된 이야기만의 기록이 아님을 배운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기록들이 어떻게 역사로 남게 되었는지 조선 중기부터 어쩌다 보니 중국에 가게 된 최부의 표류기로부터 시작해 본다.



저자 모지현은 역사를 사랑해 이화여대 사학과에 진학, 연세대학교 대학원 과정을 거치며 임용고시를 통과했다. 고양시의 고등학교에서 한국사와 세계사를 가르치며 역사 마니아 제자들을 배출 했다. 역사를 배워 지혜를 나눔으로 건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세상이 되기를 꿈꾼다. 저서로는 <청년을 위한 세계사 강의 1,2>, <꿈꾸는 사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등이 있다. 책은 조선 중기인 15세기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제주도에서 뱃길에 올랐던 최부의 표류기부터 시작되고 있다. 조선의 기록이 1,2부로 나뉘어 조금은 생소한 인물들의 사적인 기록들이 실려 있고, 3부는 일제 강점기, 4부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싣고 있다. 한국사에 익숙한 이이와 유성룡, 이순신 등도 있지만 최부, 이문건, 송 조개, 안는 과 긔일, 어비신등 다소 생소한 사람들도 자신의 기록 속에서 말을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윤치호와 나혜석의 등장이 신선하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는 6.25전쟁부터 이한열 열사까지 실려 있다. 개인들의 사적인 기록들이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낯선 기록들 속에서 이제야 말을 걸어오는 그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럼 조선 중기 풍랑으로 바닷가를 헤매는 최부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



친족과 처족, 외족 등이 구별 없이 일상에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에서 아들과 딸의 서열은 따질 것이 못되었고 친손과 외손의 구별도 불필요한 문제였다. (p58)

흔히 조선 시대라고 하면 남존 여비의 사상과 여성의 차별들이 가장 강력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의 시작인 15세기에는 남녀의 구분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유희춘과 송종개의 사적인 기록인 미담 일기에는 아내를 평생의 지우로 여기며 존중하는 남편 유희춘의 모습이 들어있다. 유희춘은 오랜 귀양살이로 아내와 함께 보낸 시간은 많지 않다. 그 시간들을 편지로 나누며 아내에게 중대한 일들 의논하고, 아내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이 시기의 남녀 구별이 없음은 친족과 처족의 구별이 없었다는 것, 남편이 처가 쪽의 대소사를 챙기고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구별이 없었기에 지금 우리가 읽기에는 어색한 송종개의 당당함이 편지글에서 느껴진다. 첩에 대한 부분을 요구하는 부분이나 장인의 묘비석을 세울 것을 호통을 치듯이 당당하게 요구하여 관철시킨다. 조선은 모두 남자들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와장창 무너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녀의 구별이 없었으나 이후로 이이의 성리학이 서서히 자리 잡고 임진 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 남존여비 사상은 강력해진다. 힘과 권력, 정치력을 가졌던 남자들에 의해 여성들은 더 작아지게 된다. 이후의 역사를 알고 있는 나는 15세기 송종개의 당당함이 너무 부럽고 그립다.


당시 조선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는 데 필요했던, 사고의 전환을 가져올 힘, 그것은 미지에 대한 시선이 우리의 묵은 지식에서 비롯됨을 인정함으로써 다른 시각도 허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 이것이 <하멜 표류기>안에 담긴 그 시대가 우리에게 남겨주면서 기억하고 변화하기를 바라는 또 하나의 전언일 것이다.(p148)

시간을 건너 뛰어 17세기 전쟁과 기근이 휩쓴 한반도에 서양인인 하멜이 표류해 온다. 그는 동인도회사 소속의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출발하여 일본으로 가던 중 태풍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한다. 이후 13년간 조선에 머물면서 조선의 곳곳을 경험한다.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은 하멜 표류기라는 책에 상세하게 기록된다. 하멜의 눈에 비친 조선은 어떤 나라였을까? 일본이 네덜란드 등 서방의 문물을 받아들이며 빠르게 근대화의 길을 걸을 때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자연재해로 인한 극심한 식량난을 겪는다. 하멜을 통해 조선이 근대화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조선의 리더들은 청에만 목을 매고 있었고, 시대를 이끌 통찰력과 리더십을 가지지 못했다. 심지어 하멜의 처리도 일관성이 없고, 그때그때 즉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풀을 뽑거나 돌담을 쌓는 일을 하거나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훈련도감에 배치되기도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하멜은 조선 사람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들을 자주 남기는데, 그럼에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기록들도 보인다.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라는 기록이 나오기도 한다. 조선의 풍습과 사람들의 모습들을 상세하게 기록한 <하멜 표류기>는 유럽에 조선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비록 침략을 위한 것이었지만. 정보가 넘쳐 나는 현재에서도 나만의 것을 고민하고 사고를 닫아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찬찬히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P322)

일제 강점기를 지나 자유 대한민국은 6.25라는 동족 전쟁을 치렀다. 그 전쟁에서도 이승만은 리더로서의 격과 품위를 지키지 못했다. 이후 선거에서 부정을 저질렀고,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의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권력욕에 모든 것을 건 것처럼 보였다. 어린 학생들을 향해서도 폭력 진압을 하고, 발포했다. 이 편지는 한성여중 2년생 진영숙의 것이다. 부모님을 뵙지 못하고 급하게 마지막 인사를 써 재봉틀 서랍에 넣어 두고 데모에 참가한다.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으므로 유서가 되었다. 어린 학생들,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데모에 참여했는데 그들을 일깨 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승만의 교육이었다고 한다. 문맹률을 낮추고 학재를 정립한 이승만으로 인해 학생들은 의식이 깨어났고, 배운 대로 행했던 것이다. 어린이들도 배운 대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의에 대항하는데, 갑자기 윤치호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안중근처럼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라의 독립과 동포인들의 안녕,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일어서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윤치호처럼 많이 배우고 리더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늘 선택의 순간에는 가족들과 자식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더라도 자기와 자기 가족들은 나가지 않는 전쟁터에 남의 자식들은 보내고자 연설문을 쓰고 연설했던 것은 용서하기 쉽지 않다. 그 후로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얼마나 잘 살았는지도 씁쓸하게 지켜봐 왔으니. 지금에 대한민국은 진영숙님 같은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과 애국심으로 지켜온 것임을 부인 할 수 없다. 너무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다며 부디 몸 건강히 계시라는 편지를 받는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일제 강점기를 윤치호로 시작하는 데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시대를 앞선 여성 해방 운동가(물론 본인은 그렇게 불리길 원하지 않겠지만) 나혜석의 삶도 자세하게 그려진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기르면서 어머니가 되어가는 심정을 솔직하게 고백해서 여성들의 공감을 얻고자 했으나 비난만 받았던 나혜석. 한 남자의 아내로만 살기에는 너무 재능도 생각도 뛰어났던 여인. 100년이 지나서야 이해받게 되는 그녀의 고충과 마음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역사에서 약자로 인색 된 여성들의 이야기가 실린 것은 반갑고 기쁜 일이다. 6.25전쟁 중에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인 프랜시스카의 기록이 실린 부분은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결국 기록한 자가 승리자 인가하는 자괴감도 몰려왔다. 사적인 기록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자신에게 유리하게 자신의 입장만이 실린 것이라 씁쓸했다. 이런 이유로 현대사가 교과서에서도 빠지고 책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 것이리라. 논란이 너무 많으니까. 그래도 저자는 객관적인 입장과 관점으로 사적인 기록들을 역사 안으로 끌어오기 위해 애쓴 모습이 보인다. 저자의 관점과 시선에 전부 동의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알지 못하고 놓쳤던 부분을 역사라는 거울로 보는 재미는 컸다. 재미와 함께 생각을 던지는 역사 책이다.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배우면 되지 않을까? 제 몸을 불살라 노동법을 말했던 전태일처럼은 아니더라도 각자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깨어서 배우고 알아야 한다. 그 배움이 4.19의 학생들처럼 우리들을 각성하게 할 것을 믿는다. 그 길 위에 이 책이 놓여 있음이 감사하다.

역사에서 약자가 아닌 여성을 만나보길 원하는 사람들, 승자의 기록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 권한다. 역사는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주인공임을 발견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