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외국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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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군더더기가 없는 사람이다. 그의 수필집 -슬픈 외국어-는 그것을 증명한다. 솔직하고 어떨땐 날카롭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원하던 곳인 프린스턴이건 다른 곳이건 이방인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일이 아닐것이다. 하지만 하루키는 그 어려움과 한번씩 마주 치는 당혹스러움을 몸소 체험하고자 하였다. 그의 말대로 그는 인간적인 작품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고, 여러 가지의 상황들을 유영하길 바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극단적인 삶의 추구, 그런 것은 아니다. 하루키는 평범한 삶 자체를 즐기며 지적 탐구를 일상에 결합시켜 관찰해 나간다. 그래서 그는 안일한 자신의 나라 밖으로 뛰쳐나와 유목하는 것이다. 그것은 힘든 만큼 하루키를 알찬 작가로 만드는 거름의 역할을 한다. 시골에서 어떠한 잡음도 끊고 경건한 소설쓰기에만 매진하는 마루야마 겐지완 정반대의 방식이다. 사고가 자유로운 그를 만나는 내내 즐거웠다. 그의 솔직함에 얼마나 크게 웃었는 지 모른다. 누가 하루키를 시대의 유행이라고 했는가. 하루키는 유행이 되기엔 너무 본받을 것이 많은 작가이고, 그가 택한 삶의 치열한 열정이 무수한 젊은이들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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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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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란 귀여운 이름의 작가. -키친-은 정말 꼭 그 이름처럼 재미있는 소설집이다. 짧은 문장과 쉬이 읽히는 이야기, 남겨진 아이들과 사라진 어른들, 그리고 남겨진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사랑(물론 이 사랑은 이성과 연민 모두를 포함한다) 순정만화처럼 읽히는, 흡사 이와이 순지의 영화처럼 투명한 설레임이 가득하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비관이라기 보다 호기심의 다른 이름일것이다. 죽음이라는 어려운 문제로 소통을 시도한 것은 -키친-이 단순한 순정소설이 아니라는 증거이며, 소설로 업그레이드된 힘이다. -키친-은 정말 재미있다. 참 바나나란 작가는 남자의 어니 사람의 옆얼굴을 꽤나 좋아하는 모양이다. 옆얼굴이 매혹적인 사람이 계속해서 나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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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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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스물셋의 처녀, 오산이. 그녀가 서울의 도심을 배회한다. 사물을 보지 않는 넋나간 눈동자는 외피만 지고 스물셋의 나이를, 병든 도시를, 자신의 운명을,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을 배회한다. 그래서 이십대 초반의 싱그러운 명랑함은 현실이라는 존재에 침식당한채 허무와 고독의 상태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너무 청승맞아 보이는 그녀를 보면 한편으론 '대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란 물음을 불러들인다. 약해 빠진 오산이. 수수하고 고요한 그녀. 발악하고 싶어도 고요한 비명만을 내지르는 처연함. 오산이를,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다 읽은 후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흐르는 피에도 아랑곳없이 포크레인을 향해 내치는 그녀의 '몸'은 바위에 부서진 계란처럼 부질없지만, 그 몸짓은 더러운 세상을 향한 작은 반항이자, 약한 처녀의 커다란 분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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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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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발견된 밑줄로 부터 사랑의 암시를 전해 받은 여자. 그녀가 바로 콩스탄스이다. 로맹 가리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눈이 아주 높군), 밝고 나름대로의 복잡한 심경을 안고 사는 콩스탄스. 이 소설은 그녀와 밑줄 그은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톡톡 튀고 익살스럽게 풀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소품과 같은 밑줄 긋는 남자와의 사랑을 환상스럽게 이어가려는 면이 신선함을 안겨준다. 시공일관 밝고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밑줄을 추적해 가는 과정에선 미스터리적 긴장감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장점에도 이 소설은 뒤로 갈수록 갖고 있던 신선함을 잃어간다. 갑자기 밑줄 긋는 남자의 존재가 나타나면서 콩스탄스의 환상이 비틀리는 것까진 좋은데, 그 뒤로는 뻔하게 흘러가더니 결국 환상은 환상으로 묻히는 촌극이 벌어진다. 그러니까, 다 읽은 느낌은 한마디로 '가볍게 잘 읽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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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에 새겨지다
웅진지식하우스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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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쇄적인 이미지, 함축적인 언어. 그리고 사랑이야기. 그러나 처음부터 예고되었던 통속적인 뼈대. -육체에 새겨지다-는 주인공 '나'의 눈에 비친 불타는 머리칼을 지닌 루이즈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작품이다. 작품을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이 진부할 지 모르겠지만 달리 이 표현 밖에 이 작품을 표현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과거 여성 편력과 남성 편력,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을 일깨워준 루이즈를 만나고 헤어지기까지.

그러나 '나'의 설명조로 변해가는 문장은 다소 읽기에 곤혹스러웠다. 처음의 신선하고 유미스러운 느낌이 이 설명조 문장에 가리어 대체 무얼 이야기하는지 가늠해 보길 반복하면서 어렵게 읽어 나갔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아름답다. 주인공의 알수 없는 성정체성만큼이나 모호함이 커다란 흠이기도 하지만 그 모호함이야말로 소설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독특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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