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백종유 옮김 / 문예출판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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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유희란...슈니츨러의 작품을 보면 한결같이 현실의 공간을 넘어선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 진다. 하룻밤의 판타스틱한 모험극(?) -꿈의 노벨레-나 도박으로 인한 순간의 욕망을 이기지 못한 소위의 이야기 -마지막 도박-처럼. 이와 상통하는 이야기들은 그의 작품집 -죽은 자는 말이 없다-에서도 반복된다. 다소 교훈적이기까지 한 단편들은 슈니츨러의 색깔을 압축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비현실의 영역을 꿈꾸는 인간들의 심리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와 많은 유사성을 지닌다. 그래서 더 공감을 가지게 한다. <어떤 천재 이야기>와 <초록색 넥타이>, <사랑의 묘약>은 특히 풍자가 돋보이고, <내가 만났던 중국인 이야기>나 <이 무슨 멜로디인가>등을 비롯한 전체적인 느낌은 생을 갈구하는 인간들을 향한 슈니츨러의 조소가 배여져 있는 듯하다. 그리고 슈니츨러 자신이 도박을 즐긴 까닭인지 -마지막 도박-과 비슷한 <벨다인의 돈 이야기>가 이 작품집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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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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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하루하루의 모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젊은 폴 오스터는 한 시간이라도 그 모험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기회를 만든다. 그의 에세이 -빵굽는 타자기-는 신선함 깨달음을 맛보게 해준다. 현재 영어권 작가중 중요한 인물로 손꼽히는 오스터는 처음부터 자신을 성공하지 못했다는 전제에서, 즉 작가가 되기 위해 경제적 고충은 고려하지 않아 과오를 낳았다고 시인한다.

젊은 혈기와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졌던 그는 세상의 무수한 일을 경험하고자 했다. 꼭 돈을 염두했다기 보단 억척같은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보고 들으며 다양한 삶의 모습에서 배움을 얻는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권력이란 절대적인 것이므로 오스터 역시 생존을 위해 잡다한 일들을 하게 된다. 번역부터 액션 베이스 볼이라는 게임의 아이디어까지.(안타깝게 이 게임은 아이디어로 끝난다.) 무엇보다 그가 궁핍한 시절을 다 겪은 작가, 그러니까 여러 사정에 의해 쉽게 전업 작가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 그를 더욱 인간적인 작가처럼 보이게 한다.

어느 나라에서건 작가가 되기란 힘들고 외로운 법이란걸 다시 한번 증명해 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렵고 자의식이 강했던 젊은 날은 훗날 작가 폴 오스터를 탄생시켰다. 의미심장한 결과이다. 그의 체험들은 멋지고 좋은 본보기다. '나는 원기 왕성했고, 머리는 착상으로 가득 차서 터질 것만 같았고, 발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서 근질 거렸다.' -폴 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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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하우스
유미리 지음, 곽해선 옮김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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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미리는 평범하면서 희한한 작가이다. 대부분의 작가처럼 유미리도 자신의 삶을 소설속에 여지없이 투영시킨다. 두편의 중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 역시 유미리의 자전 소설이다. 그 자전성을 바탕으로 현대의 사회 문제를 끌어 오고 있다. 후에 발표되는 -골드 러시-와 -여학생의 친구-등에서 작가는 자전성보단 사회 문제에 눈을 돌리지만, 작가가 계속해서 다뤄오는 요소들을(가족의 붕괴등) 읽을 수 있는 초기작이란 점에서 자못 흥미롭다.

초기작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출세작이기도 한 -풀 하우스-는 유미리의 색깔을 잘 나타내 주는 작품이다. 오랫동안 떨어져 살던 가족은 이름만 그들을 묶어줄뿐 애증조차 말라버린 독립적인 인간들이다. 그속에서 (한때) 이들을 이끌었던 아버지는 어떻게든 흩어진 가족들을 불러모으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의 갭을 함부로 무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유미리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반영하며 성장과정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익숙한 방식으로 이끌어낸다.

가족이지만 완전히 격리된 듯이 보이는 그들은 커다란 새 집에게 제 구실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말로는 다 소통할 수 없는 기억들과 이미 놓쳐버린 세월속에서 아버지는 이 새 집이 모든 것을 감춰주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거름이라고 믿지만 화려한 이 집의 비대함도 가족들의 마음을 채워주진 못한다.

아이러닉 하게도 이 집엔 부랑자 가족이 들어온다. 이때부터 유미리는 화자의 어린 시절을 상기시키는 소녀 가오루를 등장시킨다. 더이상 소통되지 않는 세상을 향해 입을 다물어버린 소녀는 가장 거짓 없는 캐릭터로 읽혀진다, 그리고 곳곳에 등장하는 화자와 가오루간의 미묘한 감정은 애틋한 이미지들을 불러들인다.

또 하나의 단편인 -콩나물-의 주인공 역시 -풀 하우스-의 주인공과 성격, 위치, 고민까지 흡사하다. 이는 즉 가족의 의미를 상실한 가족들은 소설속에 등장하는 소재라고 하기엔 바로 동시대가 앓고 있는 문제 중에 하나란걸 유미리는 다시금 말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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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 필그림 1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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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의 첫 소설로 알려져 있는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는 한편의 시와 같다. 나치 치하의 폴란드 숲엔 나치에게 대항하려는 빨치산이 있고 그 무리에 야네크라는 소년이 합류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로맹 가리는 야네크를 둘러싼 시대의 아픔을 차곡히 서술해간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아이와 어른의 경계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좀체 사그라들지 않는 전쟁은 매국노를 낳고, 고아를 낳고, 그저 본성만을 들끓게 한다.

이미 인간성을 상실한 살육전의 공포는 아이에게 또다른 성장을 요구한다. 어린 야네크가 지닌 순결한 정신은 현실속에 충돌하다 리트머스처럼 빠르게 적응해간다. 그것은 한 없이 슬픈 일이다. 해서 아이는 지적인 동료 도브란스키가 늘 말해온 유럽의 교육을 절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절망적이긴 하지만 그것은 야네크가 길잃은 대륙을 향해 내뱉은 최선의 시선이었다.

로맹 가리는 후의 작품인 -자기 앞의 생-에서도 어린 모모를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본다.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에 등장하는 두 개의 시선(도브란스키와 야네크)은 -자기 앞의 생-에 이르러선 하나의 시선(모모)으로 합쳐진다. 전쟁 여부와 상관 없이 유럽 대륙을 두고 고심하는 작가의 시선이 진지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특히 조시아가 기억에 남는다. 로맹 가리의 소설엔 이처럼 어른을 초월하는 아이가 자주 등장한다. 세상은 아이에게 한껏 모질게, 이곳은 정말 더러운 곳이라고 상기시키지만 아이는 그런 세상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용서 해준다. 이 아이들은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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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의 결혼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하여, 소설로 읽는 정신분석 1
미셸 코스타 마냐 지음, 정장진 옮김 / 이끌리오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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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프로이트 이론을 대중에게 좀 더 쉽게 전달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저자 나름대로 소설형식을 빌어 쓴 -오이디푸스의 결혼-은 모호한 위치에 있다. 프로이트의 중추적인 이론격인 오디푸스론을 간단하면서 깊이있게 압축하려한 저자의 야심때문인지, 어지럽게 나열하고 있다는 인상만 받았을 뿐이다. 토론식 수업에 등장한 오디푸스를 끊임없이 설명하지 못해 안달난 대화는 짧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금새 질린다. 가장 모호한 부분은 이 책을 대상으로 삼는 사람이다. 이 책은 학생들이 보기엔 기본적인 베이스를 요구한다. 그러다 일정부분이 되면 이것저것 할것없이 죄다 풀어놓는다. 할말만 정신없이 해버리는 셈이다. 그렇다고 프로이트론에 관한 전문적인 책도 아니다. 프로이트 이론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 보기엔 이야기 자체가 너무 엉성하다. 저자의 의도가 잘 녹아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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