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빵가게 재습격-은 심플한 단편집이다. 다섯편의 단편들의 주제는 상당부분 생략되어 있고 문체는 가볍다. 속독의 장점이 있지만 이미지화 되어 있는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중심을 잡아 내기란 조금 힘든 감도 있다. 그리고 카버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꽤 눈에 띄었다. 늦은 시간 젊은 부부는 배가 고프다. 남자는 옛 이야기를 하고 저주를 풀기 위해 빵가게를 털기로 한다.(자세한 이야긴 책을 읽으시길) 안타깝게도 그 시간에 문을 연 빵 가게가 없어 계획에 차질을 빚지만 상관없다.<빵가게 재습격> 갑자기 코끼리가 실종된다. 주인공은 소멸된 것이라고 확신한다.<코끼리의 소멸> 뒤에 나오는 태엽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 역시 흥미로운데 이 단편들의 특징, 보이는 것 너머의 존재. 그러니까 존재하고 있지 않지만 무언가의 자리와 또는 존재하는 것이 부재한 순간의 오는 혼동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느낌이 흥미를 갖도록 했다. 특히 코끼리의 소멸이 흥미로웠다. 또 다른 단편 <패밀리 어페어>는 재밌다. 오빠와 여동생의 갈등을 표현한 소설이다. 또 하나있는 긴 제목의 단편은, 솔직히 너무 별루였다.

하루키의 열성팬은 그가 대단하다고 추켜세운다. 그는 대중적인 동시에 컬트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작가로서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신뢰하고 있지 않다. 물론 모두 입에 맞는 글이란 있을 수 없겠으나 나는 아직 하루키의 진정한 맛이 어떠한지 모르겠다. 쓰지도 달지도 않다. 이 단편집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름이 있다. 하루키 작품 여기저기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그 이름. 바로 와타나베 노보루. 비교적 초기라고 알려진 이 단편집에서도 사용되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이 이름은 카메오처럼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까트린 이야기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편안하고 기분 좋은 책이다. 까트린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가 아슬아슬하고 순진하게 담겨져 있다. 특히 까트린만의 안경을 끼고 벗고의 세상 보기가 기억에 남는다. 책을 보다가 나도 까트린처럼 몇 번을 꼈다 벗었다 했다. 어린 까트린의 표현에 따르면 “(p.8) 안경을 쓰지 않고 보면 세상은 더 이상 까슬까슬 하지 않았고…새털 베개만큼이나 포근하고 보들보들했다”맑은 소녀가 보는 세상에 대한 스케치인지 읽고 난 후,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정체불명의 아버지와의 이야기, 곳곳을 장식하는 장 자끄 상베의 포근한 그림이 재밌다. 추억어린 책, 까트린과의 만남은 따뜻한 만남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마루야마 겐지는 작가가 존경할만한 사람이다. 자신만의 필력을 위해 마루야마 겐지처럼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소설가이기 전에 사람으로서 절제하는 그의 노력은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가 좋은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책 -소설가의 각오-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는 소리를 거의 전설처럼 들어온 나로선 그가 털어놓는 그 시기의 떨림과 갈등이 인간적으로 다가와 좋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가 여러 군데 집필한 에세이를 묶은 것인지 겹쳐지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처음의 흥미가 반감되어 마지막엔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오는 동성혐오와 여성 비하 발언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것도 모자라 보는 내내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신념이 너무 곧은 나머지 상대를 생각지 않는 태도가 문학인으로써 위험한 정신으로 비춰졌다. 작가인 그는 훌륭하지만 사람으로서는 보수적이고 고집이 센 사람으로 보인다.

-소설가의 각오-를 읽다보면 -백경- 으로 인해 바다를 꿈꾸던 그가 젊은 날 대형 유조선에 오르는 부분이 있다. 거친 바다와 싸우는 남자의 냄새가 아니라 모든 것이 기계화 된 유조선을 타고 이내 후회한다. 늘 기대감에 부풀었던 이미지가 완전 어긋나 버려 자신의 젊은 나이에 마지막 카드라고 여겼던 것이 정작 아무것도 아니어서 씁쓸한 기분이었단 것이다. 그가 느꼈다는 마지막 카드에 씁쓸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나 역시 마루야마 겐지라는 카드를 뒤집었을 때 실망한 건 사실이다. 아예 이 책을 읽지 않고 내가 들은 그의 고결한 이미지만 상기한 채 주옥같은 그의 작품들을 대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의 곧은 작가 정신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존경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멍청한 백인들
마이클 무어 지음, 김현후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나는 작가인 마이클 무어보다 감독인 마이클 무어에게 익숙하다. 그의 이름 하면 항상 떠오르는 영화들 <로저와 나>나 <캐나디언 베이컨>, 그리고 작년 다큐로서 크게 주목 받았던 <볼링 포 콜럼바인>에 이르기까지. 그는 감독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볼링 포 컬럼바인>이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경악시켰던 십대 소년 두명의 컬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마이클 무어는 사회성 짙은 작품을 만들어왔는데 이번엔 그 매체가 필름이 아니라 책이다. 사회운동가이기도 한 마이클 무어가 내놓은 이 책은 제목부터 요즘 정서에 딱 맞는 -멍청한 백인들-이다. 공화당 대통령 부시의, 혀를 내두를만한 행적들이 꼼꼼하게 폭로되어 있다. 이에 대한 진실여부에 대해선, 나는 우선 믿는 쪽이다. 작년 동계올림픽을 보라. 오노같은 놈 영웅 만들기 위해 멀쩡한 경기를 완전 코미디로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꼴찌하던 녀석이 금메달을 가지고 가지 않나. 정당하게 딴 금메달을 우겨서 빼앗지 않나.

더 가관은 매해 피플지에서 뽑는 (자기네 기준으로)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50인 명단 안에 오노도 보란듯 들어가 있다. 미국은 분야를 막론하고 정말 다 똑같다는 편협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나라 대통령인데 뭐 플로리다 선거 조작이 대수겠는가. 게다가 주지사가 잽 부시라는데... 현재 한국에서 미국의 위신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 더이상 가라앉을 곳도 없어 보인다. 아이큐 90대의 대통령과 이익만을 챙기려고 하는 부통령은 세계 평화 수호를 명목으로 세계 평화에 심각한 암운을 조성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 시원스런 책의 저자처럼 그 넓은 땅에 사는 양심적인 미국인들의 존재다. 그들의 대표자 마이클 무어는 우익을 거침없이 꼬집고 풍자한다. 재치가 넘치는 입담 속엔 날카롭고 튼튼한 가시가 들어 있다.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아는 나라, 또한 그러기도 한 나라, 가장 잔인하고, 무식하고, 폭력적이고, 내숭적인 나라인 동시에 제일의 휴머니티를 추구하고, 그 속에서 선진된 나라, 미국이란 그런 나라다. 물론 이런 이중성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든 다 있는 것이다. 무어가 비판한 항목 중에 다수가 우리나라 경우에도 포함되는 것처럼. 덩치가 큰 미국이 심통맞게 구니까 잘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위선은 웃어넘기기엔 위험한 것임을 이 책 역시 상기시키고 있다. 미국의 이기주의가 팽배해 질수록 적도 그만큼 늘고 있다는 걸 멍청한 백인들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통쾌한 한편, 씁쓸함이 감도는 건 지금 눈 앞에서 일어나는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숏컷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1996년 3월
평점 :
품절


단편집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은 후 카버의 또 다른 단편들이 궁금하던 터였다. -숏 컷-은 앞서 말한 작품집 보다 세 편이 더 추가 되어 있는, 열 네 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카버의 문장과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게다가 그것이 만나서 이루어 내는 분위기와 흐름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팽팽하거나 혹은 촘촘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이야기마다엔 조용한 변화가 일어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땐 변화하는 것은 어느 하나 없다.

지나치기 쉬운 삶의 측면을 해체시켜 정지해 놓은 후 찬찬히 바라보는 시선에선 슬픔까지 느껴진다. 아마 삶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단편들 모두가 너무 소중하다. 특히 -숏 컷-에 수록된 <블랙버드 파이>는 기존의 카버가 보여준 단편과는 사뭇 달라서 더욱 흥미로웠다. 그는 마침표 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인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세세한 노력으로 쓰여진 훌륭한 작품들을 읽게 되어 행운이라 생각한다. 하루키도 말했고 주위의 어느 분도 말했다. 그는 어느 경향도 아류도 아니다. 카버는 오로지 카버적인 글을 썼다. 그는 처음부터 진짜였던 것이다. 글을 읽고 있으면 그의 진실성이 느껴진다. 글을 반복해서 읽으면 어떤 울림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이런 작가는 정말 흔치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