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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가든
이안 맥완 지음 / 열음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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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멘트 가든엔 무엇이 있었나.

이안 러셀 맥완의 소설-시멘트 가든-은 성장기 남매 4명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도 죽는다. 그래서 여기엔 남겨진 네남매가 있다. 이들은 신체적으로 결속된 존재다. 어머니를 지하에 매장하고 남매들은 악의없이 악과의 소통을 한다. 애초부터 이들에겐 악의 따윈 없었기에 죄의식이란 없다. 물론 '나'인 잭은 한번씩 자문해 본다.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 그러나 쥬리나 잭이나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 그들은 위치를 자각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이고, 십대답게 불안하다.

-시멘트 가든-은 앙티 오디푸스적 성향을 내포한다. 부모가 떠난뒤 남겨진 아이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 이렇게 여미어진 이들의 틈에 쥬리의 남자 친구 데릭이 끼어들고 싶어하지만 허사다. 그는 외부에서 온 자다. 외부에서 온 자는 이 시멘트 정원에 들어오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법칙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나누어 놓았다. 이미 자신들만의 세계는 조성된 것이다.

잭의 나른한 말투는 -시멘트 가든- 전체를 일상적인 이야기로 만들어 간다. 그 나른함은 문장마다 깊숙히 배여져 나와 남매들의 하루는 긴장스럽지만 단조롭다.

-시멘트 가든-은 또한 여성적인 요소가 눈에 띈다. 남겨진 아이들을 이끌어 가는 것은 다름아닌 '누나' 쥬리이며, '잭'과'톰', 그리고 '데릭'까지 누나의 애정을 요한다. 막내 톰은 소년이 되기를 거부하고 소녀가 되기 위해 치마를 입기 시작한다. 이 왕국의 여자들은 톰을 기꺼이 여자로 변신 시켜 준다. -시멘트 가든-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병약하고, '나'인 잭은 미성숙하며, '데릭'은 속 빈 강정의 캐릭터다. 남매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들이 은폐한 시신, 어머니에 대한 잔영이 그들을 드리울 뿐이다. 이렇게 보면 오디푸스적인 느낌이 배나온다. 아 어지럽다. 이안 러셀 맥완은 이렇듯 여성적 존재를 부각시킨다.

그들만의 행복한, 기이한 형태로 안락하기 그지 없는 이 -시멘트 가든-에 외부인들이 들이닥친다. 그들은 분명 이 정원을 깨부술 것이다. 그러나 이 죄의식 없는 천사들의 세계란 쉽게 무력으로 깨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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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동자
토니 모리슨 지음, 신현철 옮김 / 눈 / 199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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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기가 바로 그집입니다. 녹색과 흰 색으로 된 집, 문이 붉은 집. 대단히 아름다운 집입니다. 여기에 가족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딕, 제인이 녹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집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행복합니다. 제인을 보세요, 제인은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제인은 마음껏 뛰어놀고 싶어 합니다. 누가 제인과 놀까요? 고양이를 보세요. 야옹거리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이리와서 놀자. 이리와서 제인과 놀자. 하지만 공야이는 놀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를 보세요. 어머니는 아주 좋은 분입니다. 어머니, 제인과 노시겠어요? 어머니가 웃으십니다. 어머니, 웃으세요, 어머니. 아버지를 보세요, 아버지는 몸집이 크고 건장한 분입니다. 아버지, 제인과 노시겠어요?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십니다. 아버지, 미소를 지으세요. 개를 보세요. 멍멍거리면서 돌아다닙니다. 제인과 놀지 않을래? 개가 달리는 것을 보세요. 달려라, 개야, 달려, 자, 자, 친구가 다가옵니다. 친구는 제인과 뛰어놀려고 합니다. 그들은 아주 재밌게 뛰어다닐 것입니다. 놀아라, 제인, 놀아.'

행복의 집을 보여주는 이 풍경은 모리슨의 처녀작-푸른 눈동자-에 나오는 아이들이 꿈꾸는 낙원이다. 유독 푸른눈을 가지고 싶어하는 피콜라가 바로 이 소설의 중심이다. 사실 주인공을 따지기란 모호하다. 우선'나'인 클로디아 시점으로 나아가다가, 삼인칭으로 시점 교환이 자주 이루어지기 때문에, 로레인에 살고 있는 그들, 블리드러브가족, 그 속의 작은 피콜라가 모두의 속삭임속에 등장한다.

모리슨은 피콜라라는 캐릭터를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그리고 있다. 가난하고, 못생기고, 버림받고, 놀림받으며, 더럽고, 냄새나고, 친부에게 강간당하고, 작은 질은 파멸되고, 영혼 또한 조각나고, 그래도 피콜라는 살아있다. 즉, 미국이란 곳에서의 흑인, 그중에 여인, 그중에 아이, 가장 약한 이의 존재는 사람들 속에서 무심하고 잔인하게 짓이겨 진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피콜라의 동정기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모리슨의 글 속엔 항상 공기가 들어있다. 낯설기도하고, 너무나 친숙한 그런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으면 소설은 생명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작은 에피소드에 친근한 감동이 있다. 그리고 그녀의 시점. 이 소설만 보더라도 가을-겨울-봄-여름순이다. 계절의 변화는 인물들을 과거에서 현재로 또는 위 지문들이 조각나 끊어지는 대목에선 블리드러브 가족의 다양한 삶의 보습들을 보여준다.

자꾸 변화하는 시점은 처음엔 종잡을 수 없다가 읽다보면 어떤 울림을 듣고 있는 묘한 효과를 자아낸다. 그래서 책을 다 읽었을 때, 그 느낌은 말로 형상화내기가 힘들다. 결국 피콜라는 푸른 눈을 가졌고, 죽어버린 금잔화의 씨앗처럼 피콜라의 아기도 죽어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백인 아이의 푸른 눈은 사실 피콜라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리슨은 아직 이땅에 무수한 피콜라가 있다고 말한다. 자세히 피콜라들의 눈을 들여다 보면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푸른 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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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뜬 나의 맨발
에리카 종 지음 / 넥서스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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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 종의 두번째 소설-허공에 뜬 나의 맨발-은 자니 모턴이라는 시인이 준 노트의 제목이다. 이사도라 윙은 29살때까지만해도 날기를 두려워 했다. 그녀의 심연 속엔 늘 알지 못할 두려움이 존재했고 실로 소심투성이였다. 정신과를 드나들다가 만난 정인과 의사 베네트는 그녀의 두번째 남편이 된다. 에리카 종을 유명하게 만든 처녀작 -날기가 두렵다-에서 이사도라는 프로이트의 고향에서 끊임없이 방황한다. 일차적 외피론 한 유뷰녀의 철없는 방황이지만 내피의 이사도라는 소설가로서, 삶과 사랑에 있어 한층 성숙된 자아를 만나게 되며 더이상 날기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을 깨달은 자는 다시 태어나는 법이다. 그런 이사도라를 데리고 에리카 종은 돌아왔다.

-허공에 뜬 나의 맨발-은 감성적이고, 똑똑하고, 이제는 꽤 유명한 시인이 된 이사도라의 3년후 이야기다. 이제 이사도라는 정말로 남편을 떠나려고 한다. 이사도라의 정신적인 방황은 여전하다. 예전에 남편이 외도를 했고, 그 상대를 사랑했다는 것에 분개한다. 이사도라는 한번도 자신의 남편에게서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다. 간혹 느낀 것도 모두 거짓이었다. 남편은 물론 나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를 지지한다. 그러나 무심한 것이 탈이다. 이사도라는 자신의 소설 캔디다의 고백이 더 없이 잘 팔리고, 영화화 제의도 받지만 행복하지 못하다. 자신의 애인들과 친구들을 만나보지만 소용없음을 느낀다. 그러다가 할리우드에서 만난 6살 연하의 조시에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서로에게 그림자처럼 애착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행복과 사랑이란 무언가.

에리카 종은 이사도라 윙이라는 사고가 많은 페미니스트를 만들었다. 그녀는 지성적이고, 유머러스하며 자신을 업악하지 않는다.그리고 불행을 선호하는 문인을 경멸한다. 그녀의 속삭임은 너무나 경쾌하고, 그녀의 시각은 더 없이 신랄하다. 그래서 그녀의 생각을 읽은 것은 한층 더 재밌다. 어릴적 입안에만 들어가면 혀에서 토도독 소리를 내며 녹던 전기 사탕이 있었다. 에리카 종의 소설을 그 사탕의 맛이다. 혀를 쪼는 듯한 사탕은 요란하게 소리내지만 금새 부드러운 액으로 변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러면 달콤한 향이 입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톡톡 튀는 재치있는 비유는 이사도라에게 생기를 더한다. 무엇보다 이책엔 무수한 문학을 풍자해논 이사도라의 생각을 읽는 것이 큰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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