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동자
토니 모리슨 지음, 신현철 옮김 / 눈 / 1993년 10월
평점 :
품절


'여기가 바로 그집입니다. 녹색과 흰 색으로 된 집, 문이 붉은 집. 대단히 아름다운 집입니다. 여기에 가족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딕, 제인이 녹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집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행복합니다. 제인을 보세요, 제인은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제인은 마음껏 뛰어놀고 싶어 합니다. 누가 제인과 놀까요? 고양이를 보세요. 야옹거리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이리와서 놀자. 이리와서 제인과 놀자. 하지만 공야이는 놀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를 보세요. 어머니는 아주 좋은 분입니다. 어머니, 제인과 노시겠어요? 어머니가 웃으십니다. 어머니, 웃으세요, 어머니. 아버지를 보세요, 아버지는 몸집이 크고 건장한 분입니다. 아버지, 제인과 노시겠어요?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십니다. 아버지, 미소를 지으세요. 개를 보세요. 멍멍거리면서 돌아다닙니다. 제인과 놀지 않을래? 개가 달리는 것을 보세요. 달려라, 개야, 달려, 자, 자, 친구가 다가옵니다. 친구는 제인과 뛰어놀려고 합니다. 그들은 아주 재밌게 뛰어다닐 것입니다. 놀아라, 제인, 놀아.'

행복의 집을 보여주는 이 풍경은 모리슨의 처녀작-푸른 눈동자-에 나오는 아이들이 꿈꾸는 낙원이다. 유독 푸른눈을 가지고 싶어하는 피콜라가 바로 이 소설의 중심이다. 사실 주인공을 따지기란 모호하다. 우선'나'인 클로디아 시점으로 나아가다가, 삼인칭으로 시점 교환이 자주 이루어지기 때문에, 로레인에 살고 있는 그들, 블리드러브가족, 그 속의 작은 피콜라가 모두의 속삭임속에 등장한다.

모리슨은 피콜라라는 캐릭터를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그리고 있다. 가난하고, 못생기고, 버림받고, 놀림받으며, 더럽고, 냄새나고, 친부에게 강간당하고, 작은 질은 파멸되고, 영혼 또한 조각나고, 그래도 피콜라는 살아있다. 즉, 미국이란 곳에서의 흑인, 그중에 여인, 그중에 아이, 가장 약한 이의 존재는 사람들 속에서 무심하고 잔인하게 짓이겨 진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피콜라의 동정기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모리슨의 글 속엔 항상 공기가 들어있다. 낯설기도하고, 너무나 친숙한 그런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으면 소설은 생명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작은 에피소드에 친근한 감동이 있다. 그리고 그녀의 시점. 이 소설만 보더라도 가을-겨울-봄-여름순이다. 계절의 변화는 인물들을 과거에서 현재로 또는 위 지문들이 조각나 끊어지는 대목에선 블리드러브 가족의 다양한 삶의 보습들을 보여준다.

자꾸 변화하는 시점은 처음엔 종잡을 수 없다가 읽다보면 어떤 울림을 듣고 있는 묘한 효과를 자아낸다. 그래서 책을 다 읽었을 때, 그 느낌은 말로 형상화내기가 힘들다. 결국 피콜라는 푸른 눈을 가졌고, 죽어버린 금잔화의 씨앗처럼 피콜라의 아기도 죽어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백인 아이의 푸른 눈은 사실 피콜라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리슨은 아직 이땅에 무수한 피콜라가 있다고 말한다. 자세히 피콜라들의 눈을 들여다 보면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푸른 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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