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 희망이 사치일 때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 닻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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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희망이 사치일 때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책의 부제를 오래 바라보았다.


살다 보면 희망이라는 말조차 버거운 순간이 있다.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는 기대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힘든 날.


그런 사람에게 “곧 봄이 올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위로일까.


봄이 온다는 사실을 몰라서 힘든 것이 아니라 지금 너무 춥기 때문에 힘든 것일 수도 있는데.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대목이다.


🔖 “위로의 기만이란 바로 이것이다. 위로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진실을 외면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위로가 있다는 것이다.” -p.18


우리는 힘든 사람에게 쉽게 희망을 건넨다.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참으면 좋아질 거야.”


나 역시 그런 말이 위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한겨울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는 먼 훗날 찾아올 봄보다 오늘의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따뜻한 담요 한 장이 먼저일 수도 있다.


위로란 상대를 빨리 괜찮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아직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괜찮아지라고 재촉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먼 미래를 약속하기 전에 지금 얼마나 추운지를 알아주는 것.


희망은 미래에 있을 수 있지만, 위로는 지금 곁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위로에서 멈추지 않는다.


오늘을 견뎠다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질문 앞에 도스토옙스키의 삶이 놓인다.


스물여덟의 도스토옙스키는 사형대에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단 5분뿐이라고 믿었다.




🔖 “내게 남은 시간은 단 5분뿐이었다. 나는 죽음의 공포보다 그 5분을 어떻게 영원처럼 쓸 것인가에만 집중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그에게 먼 미래는 없었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지금뿐이었다.

극적인 감형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살아남았다는 것이 곧 행복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시베리아 유형, 가난과 빚, 질병과 도박,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까지.

그의 삶은 무너지고 다시 세우는 일의 반복에 가까웠다.

책은 다시 일어서는 일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선다는 말은 쉽지만 실제 그 자리에는 음악도 박수도 없다.

남아 있는 것은 무너진 어제의 흔적과 치워야 할 잔해뿐이다.

그 자리에서 다시 벽돌 한 장을 올려놓는 일. 그리고 다음 날 또 한 장을 올려놓는 일.

나는 이 대목에서 ‘버틴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버틴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훌훌 털고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자리에서도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희망은 막연한 낙관과는 달랐다.

🔖 “전자는 결과의 노예가 되고, 후자는 결과의 주인이 된다.” -p.21


‘잘될 거야’라는 믿음과 ‘잘되지 않더라도 나는 계속 갈 것이다’라는 선택은 다르다.


잘될 거라는 말은 결과를 기다리지만, 그래도 가겠다는 말에는 나의 선택이 남는다.


그리고 그 선택은 타인의 시선 앞에서도 이어진다.


🔖 “자기 안에 저울이 없어서 늘 남의 저울 위에 자기 무게를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p.78


도스토옙스키 역시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톨스토이의 명성과 안정된 삶 앞에서 자신의 처지는 초라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타인의 위대함이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도록 두지 않았다.


시베리아의 추위와 쇠고랑, 실패와 고통을 지나오며 그에게는 ‘자기 안의 저울’이 생겼다.


톨스토이가 위대하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자기 길을 갔다.


이 대목에서 이 책이 말하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고,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흔들리고 실패하더라도 내 삶의 가치와 방향을 타인의 평가에 맡기지 않는 것.




결과가 기대와 다르더라도 내가 선택한 길의 주도권까지 내어주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거장들의 실패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마음가짐인지도 모르겠다.

도스토옙스키가 바라본 인간 역시 완벽하지 않다.

질투하고, 비교하고, 욕망하고, 때로는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까지 만들어낸다.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를 통해 책은 인간의 이러한 모순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 “인간은 죄를 짓기 전에 먼저 논리를 짓는다.” -p.120

이 문장은 불편하면서도 오래 남았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좋은 모습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질투와 열등감, 욕망과 모순까지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인정한 자리에서 다시 내가 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 것.

책을 덮으며 다시 부제로 돌아왔다.

“희망이 사치일 때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처음에는 그 답이 ‘위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끝까지 읽고 나니 그것만은 아니었다.

너무 추운 날에는 따뜻한 담요 한 장으로 오늘을 견디고,

무너졌다면 폐허 위에 벽돌 한 장을 다시 올리고,

타인의 시선에 흔들릴 때는 남의 저울이 아니라 내 안의 저울로 나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잘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 삶의 주도권만큼은 놓지 않는 것.

도스토옙스키는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었다.

수없이 실패했고, 흔들렸고, 자신의 모순과 추악함까지 들여다보았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타인의 평가나 운명에 온전히 맡겨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거장들의 실패에서 배우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이라는 말이 이제야 조금 이해된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삶이 나를 흔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흔들려도 내 삶의 주도권까지 내어주지 않는 것.

오늘을 견딜 담요 한 장, 다시 시작할 벽돌 한 장, 그리고 나를 판단할 나만의 저울 하나.

희망이 사치일 때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작고 단단한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happiness_jury 을 통해 @motivebooks.official 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흔들릴 때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희망이 사치일 때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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