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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대체로 누워 있고 우다다 달린다
전찬민 지음 / 달 / 2024년 10월
평점 :
처음에 제목을 보았을 때는 고양이 얘기라고 생각했었다.... 하하하
이 책은 고양이에 관한 책이 아니라, 도쿄에서 20년간 거주한 저자 전찬민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이다.
고양이가 평소에는 대체로 누워 있지만 가끔 우다다 달리듯, 저자 역시 대첵로 누워 있는 듯 느긋한 속도로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도쿄의 소소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일본에 유학하게 되면서 겪은 일들, 아르바이트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과 일본의 문화들, 어머니와 아버지에 얽힌 솔직한 이야기들, 남편과 어린 나이에 결혼하게 되었던 과정들,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 우울함과 불안을 겪어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들...
저자는 도쿄 생활의 사소한 순간들, 인간관계의 따뜻함과 고독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으며,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담대함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워워간다.
고양이처럼, 느긋하게 누워 있다가도 필요할 때는 힘차게 달리는 그 모습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위로가 될 것 같다.
나도 일본에 가서 일본어를 배우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본의 공원을 산책하고 싶은 소망을 가졌던 사람으로써 참 재미있고, 감동을 느끼면서 읽었다.
찬민씨의 삶을 응원합니다.
"담대하자, 이번에도 그러자."
12.
"걱정이 되면 그냥 걱정만 하면 되는데, 왜 소리를 지르지?"
그러고는 심상히 페이지를 넘겼다.
불시에 들은 아이의 말에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걱정이 되었으면 그냥 걱정만 하면 될 것을, 나는 감정의 파고에 못 이겨 결국 화를 낸다. 목소리도 한껏 격앙되어 인상까지 쓴다. 안도했는데도 무작정 화를 낸다. 상대가 내 반응에 당황스러워하면 "걱정했잖아!"라 말하며 또 화를 낸다. 사랑하면 사랑한다 말하면 되고 슬프면 슬프다 말하면 되는데, 그대로 내보이지 못한 채허접한 천 한 장을 감정 위에 덮어두고 엉뚱한 것을 꺼내든다. 내 마음을 제대로 보이지 않아놓고 그 마음 몰라준다고 서운해한 셈이다. 그러네, 그냥 내 마음이 그랬어 하면 될 것을.
35.
담대하자는 문장을 실제로 내뱉으면 붕 떠서 갈 길을 잃었던 마음들이 그 소리에 모여든다. 모여든 마음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잃지 않았음을 알려주었고, 그럼 조급함에 시야가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았던 소중한 것들이 선명히 드러난다. 그 순간 시련을 넘길 용기도, 기운도 난다. 우리 부부에게 '담대하자'는 요술공주의 주문인 셈이다. '뾰로롱 뿅' 같은 화려한 효과음은 없지만.
54.
우리는 지금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금방 지나가리라 믿었던 캄캄하고 길게 뻗은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멀미가 날 지경이지만, 동굴이 아니고 지나갈 터널이니 다행인 것 아니냐며 서로에게 최면을 걸어준다. 터널을 달리다보면 희미한 비이 섯히 강렬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럼 숨 한번 내뱉는 사이에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다.
통과한 후, 기대하던 풍경과 사뭇 다른 곳에 다다른 적도 있지만 새로운 이정표를 보며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으니 터널 끝이 어떤 곳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언젠가 나올 출구를 향해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63.
크고 작을 뿐이지 이곳은 매일 흔들린다. 지진이 잠잠하다 싶으면 산사태와 태풍이 밀려와 쓸고 간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지는 광경이 상처가 아물 틈도 없이 일어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어도 닥쳐오는 죽음, 인생의 허무함이 이곳에 사는 모두의 내면에 깔려 있다. 타인에게 피해 주는 것을 가장 무례하다 여깁면서도 정반대로 나밖에 없는 사고방식이 공존하는 이유가 그 때문일 거다. 삶은 공허하지만 주저앉을 순 없으니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게 최선이라고 나름의 답을 찾은 게 아닐까.
107.
마음이 멈춘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자연스러운 것. 그러니 좋았던 시절을 부정하지 말 것.
마지막 인사는 꼭 하고 돌아설 것.
113.
나이를 먹으니 절로 이해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나이든 사람도 제 속이 시끄러우면 다 귀찮아져서 아이같이 자신만 생각하게 된다는 거다. 지난날의 말과 행동, 당시에는 진심이었던 각종 약속과 그로 인한 책임을 다 저버리고 그저 편하게만 지내고 싶은 비겁함은 어쩌면 아이보다 어른에게 더 큰 유혹으로 다가온다. 그 의무와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미성숙할지라돟 어른이 더 절감하니까.
177.
어른이 되면서 책임은 많아졌고, 시간을 통으로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없어 더딜 뿐이지 항상 분주히 노력했다. 물건으로 채워보려고도 했고 사람으로 채워보려고도 해봤다. 물건은 딱 세시간짜리 위로였고, 보통의 사람은 타인을 위로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한 존재였다. 결국 내 불안의 원인은 내가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찾아야 하는 숙제였다.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 애가 있다면 내가 위로해주고, 숨기고 있던 욕망이 있다면 내가 응원해주면 된다.
192.
백발의 선생님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 말을 이었다.
"시호 짱 엄마도 이제는 알겠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환경은 없어요. 부족한 환경도 있고 욕심이 더 커지는 환경도 있죠. 늘 최선을 선택했다고 스스로 믿어야 해요. 엄마가 최선이었다고 여겨야 아이들도 부모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환경에서 살고 있다 믿거든요. 그 믿음이 아이들을 부족함 없이 크게 해줄거예요.
우선 가장 밝은 얼굴로 바이바이 하고 헤어집시다. 절대 돌아보지 말아요! 아이가 울어도 엄마는 웃어요! 그래야 아이도 슬프지 않아요.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데리러 와줘요. 실제로 아이 만날 생각에 기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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