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 - 세상 끝에서 경이로운 생명들을 만나 열린 나의 세계
나이라 데 그라시아 지음, 제효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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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핵심 문장은 이것 같다 : "바람과 길고 긴 근무 시간, 등산의 괴로움,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일, 고립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실 남극 생활이 '재밌다'고 느꼈다. "

세상에서 가장 먼 곳,
사람들의 손길과 발길이 가장 닿지 않는 곳,
그곳에서 지내며 자연과 동물들을 관찰하는 자의 삶

p. 141.
내 손가락은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날이 없었고 발도 엉망이 되었다. 발가락은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이고, 코는 매일 햇볕과 바람 공격에 시달리느라 딱딱해지고 쓰라렸다. 밤마다 지저분한 시트에 누워 따뜻한 바위에 늘어진 코끼리물범처럼 곯아떨어졌다. 빨래를 한번 하려 해도 너무 번거로워서 엄두가 잘 나지 않았다. 프로판 난로에 거대한 들통을 올려 물을 데우고, 데워진 물을 습한 방으로 옮기고, 양동이에 비누를 녹인 다음 그 물에 빨랫감을 담근 후에 땟국이 흐르는 옷가지를 빨래판에 문질러서 빨아야 했다. 무척 고된 일이었다. 몸이 못 견딜 만큼 지저분하게 느껴지는 날에는 면봉으로 귀를 열심히 닦아냈다. 그러면 일주일 정도는 더 견딜 수 있었다.

잘 씻지도 못하고, 날은 말도 못하게 추우며
관찰하는 펭귄은 날개로 나를 두드려 패고, 쏟아붓는 비에 온 몸이 다 젖고 수백 마리의 진드기가 온 몸을 물어뜯어도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 그저 행복임이 느껴지는 나이아 데 그라시아의 '세상 끈에서 경이로운 생명들을 만나 열린 세계'에 대한 이야기.

남극에서 펭귄과 함께 하는 이야기를 무려 371페이지에 걸쳐서 썼는데, 전혀 지루학 느껴지지 않는다. 상당히 아름답고 고즈넉하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다.

펭귄의 삶, 부모됨, 홀로서기, 도둑갈매기와 물개를 관찰하면서 차분히 적어내려간 그라시아의 글은 너무나도 바쁜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를 위로해준다. 자연은 역시 치유하는 힘이 있다.

p.149.
해변에 그렇게 많은 펭귄이 모여 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밤이 되자 해변은 짝이 있는 둥지로 돌아가려고 막 바다에서 나온 펭귄들로 북적였다. 밝은 분홍색 발들은 젖은 회색 바위와 대조를 이루고, 윤기가 흐르는 하얗고 까만 털은 새로 털갈이를 한 듯 말쑥하고 깔끔했다. 그런 펭귄들이 바위 위에 잔뜩 무리 지어 신나게 떠들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근처에서 배를 내놓고 느긋하게 누워있던 웨들해물범 한 마리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펭귄들이 부산스럽게 그 옆을 지나면서 저녁 공기에 열심히 털을 말렸다. 물범의 널찍한 회색 배에 젖꼭지가 있는 걸 보니 암컷이었다. 점이 콕콕 박힌 푸르스름한 회색빛 지느러미발을 감탄하며 바라보자, 물범도 나를 더 자세히 보고 싶은지 고개를 쭉 내밀었다. 봐서는 안되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장면 속으로 내가 불쑥 끼어든 것 같았다.

하지만 광범위하고 엄청난 기후 변화로 인해 펭귄과 물개들의 생태계에도 엄청난 변화가 ㅖ상된다. 변화의 속도는 너무 빨라서 어디가 시작이었는지, 어디가 기준점인지도 모른 채 그저 빠른 변화의 흐름에 끌려다니는 것 만같다.

p.160. 자연의 무수한 힘이 이 생물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다. 다른 모든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남극해도 그 내부가 복잡하게 서로 깊이 얽혀 있다. 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우리가 완벽하게 알게 되는 날은 절대로 오지 않더라도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는 지역을 더 잘 관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통찰에는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가 극 지역에 마음이 끌리면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 크나큰 비통함을 견뎌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172쪽에서 180쪽까지 이어지는 1911년 더글러스 모슨의 남극 탐험대 이야기는 정말 엄청난 몰입감과 함께 남극 탐험의 고통을 여실히 느껴지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극을 살아간다.

p.176.
모슨은 금지된 땅에 홀로 남았음을 깨달았다. 오두막까지는 아직 160킬로미터가 남았고, 그때까지 목숨이 부지되리란 희망은 조금도 품을 수가 없었다. 비타민 A 중독 증상이 온 몸을 덮쳐 다리와 사타구니, 귀에서 피부가 계속 벗겨졌다. 그래도 계속 걸었다. 필요 없는 건 전부 버리고, 남겨야 하는 건 개 몸에 매었던 줄에 연결해서 자기 가슴에 묶고 끌고 갔다. 메르츠가 죽고 며칠이 지나을 때 모슨은 문득 발이 불편해진 걸 느꼈는데, 밤이 되어 신발을 벗어보니 발바닥 피부가 다 벗겨져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매일 행군을 싲가하기 전에 벗겨진 피부를 발바닥에다 동여매야 했다. ... 모슨은 발로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면 양손과 무릎으로 기어서 몇 킬로미터를 이동했다.

마지막 문장이 정말 아름다웠다.

"파도 속에서 그렇게 펭귄이 보고 느끼는 세상을 함께 보고 느낄 때, 익숙한 경이로움이 밀려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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