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어 죽었으므로 호상이라면 호상의 의미란 결국 죽은 사람의 처지가 아니고 산 사람의 처지에서 정리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P63
나로 말하자면 줄기차게 호상을 소망했다.잘 죽고 싶었다.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에게 잘 죽고 싶다고 대답한 적도 있다. 장래희망이 죽는 것이냐고 되묻는 사람에게 죽고 싶은 것이 아니고 잘 죽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을 때만은 여한이 없었으면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름엔 복숭아를 듬뿍 먹고 가을엔 사과를 양껏 먹을 수 있는 정도로 만족하며 살다가 양지바른 곳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느닷없이 불에 타거나 물에 쓸려가거나 무너지는건축물에 깔리는 일 없이, 조금 더 바란다면 길고 고통스러운 병에시달리지 않고 죽음을 맞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하자대화를 나누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내게 요즘처럼 사람의 죽음이 험한 세상에서 평생을 좋은 일을 하고 정갈하게 살아도 찾아올까 말까 한 지복을 바라는구나 너는, 하며 웃었다. 그 정도가 지복이라면 요즘의 인생이란 서글픈 것이로구나, 지나가듯 생각했다. - P64
어차피 각자 살아가는 일 아닙니까 - P31
그거 봐. 쓸쓸하다느니, 죽어서도 그런 걸 느껴야 한다면 가혹한 게 맞잖아. 나는 이생에 살면서 겪는 것으로도 충분하니까, 내가 죽을 때는 그것으로 끝이었으면 좋겠어. 이왕 죽는 거, 유령으로 남거나 다시 태어나 사는 일 없이, 말끔히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얘기야.그건 너무 덧없다고 내가 말하자, 덧없는 편이 낫다,라는 것이 유도 씨의 대답이었다. 죽어서도 남을 쓸쓸함이라면 덧없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었다. - P57
홍단희가 일컫는 잠깐이라는 말도 개인차가 얼마나 심한지, 누구에게든 부담 없게 들리는 잠깐이라는 순간도 모이고 뭉치면 그것이 삶에 어떤 크기와 무게로 다가오는지 요진은 모르지 않았다. - P12
고작이 아니었다.세상 어느 살갗에 앉은 티눈도 어떤 버려진 선반에 쌓인 먼지도, 그것이 모이고 쌓였을 때 고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 P29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치심을 모르는 인간, 모르지 않는다면 그것을 엉성한 뚜껑으로 덮어 두거나 나일론사로 봉합하는 인간이 된다는 뜻이었다. - P82
물론 아는 것과 동의하는 것 사이에는 누구도 깊이를 재어본 적 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감정적 동의와 실질적 조력 사이에는 최소 광년 단위의 거리가 있게 마련이라, - P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