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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스
마커스 세이키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요즘 명절을 전후로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 클라이언트가 하나 있다.
마치 내가 자기 머리속이라도 들어갔다 나오길 바라는 것 같다.
내 머리속에 있는 이미지를 본인이 직접 형상화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남의 머리속에 있는 걸 어찌 안단 말인가.
세부변경사항 같은 업무지시사항에 관해서는 아무 얘기도 안하고
앵무새처럼 ‘예쁘게 편집해주세요’만 반복해대는데 미춰~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이게 말이야 방구야’라고 소리내어 말할 뻔했…ㅡ_-;;
이럴 때 내가 상대방의 생각을 꿰뚫어보는 능력자라면…
아니아니 그러면 이 몸이 너무 정신적으로 피폐해 질 것 같으니까
반대로 클라이언트가 그런 브릴리언트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그렇게 잘났으면 네가 직접해, 이 GE똘AI야’라는
소박한 이 내 마음이 전해지는면 좋겠는데…하고 상상해본다ㅡ~-
1980년대 브릴리언트라는 새로운 인류가 출현한다.
브릴리언트의 개념이 전혀 낮설지만은 않은데
그것이 전혀 새로운 인류가 아니니 때문에 배경도 현재로 상정한 듯 싶다.
자폐아 중 드물게 특정분야에 천재라는 기준을 뛰어넘는
천부적 재능이 나타나는 현상을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자폐증상을 제외하고 정상적인 범주의 생활능력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을
브릴리언트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따지면 굳이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현재에도 천재라 불리우는 수많은 이들이나 혹은 은둔자 중
몇몇은 자신의 능력을 다 보여주지 않고 적당히 드러내고 적당히 숨기며
살아가고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쿠퍼는 사람을 패턴으로 인식하는 능력이 있는 브릴리언트지만
일반인인 공정국 사람들 사이에 섞여 생활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곳은 정부소속 단체로
사회를 위협하는 브릴리언트를 색출한다는 명분아래
정부에 반하는 이들을 자체적으로 처단하는 특수권력조직이다.
능력자이면서 능력자를 처단하는 일은
일반인과 능력자 모두에게 인정받기 힘든 위치에 있지만
쿠퍼는 그 일을 좋아하진 않아도
자신이 국가를 위하여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공명심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이 1급 브릴리언트임을 확신하게 되면서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블릴리언트 아카데미에 강제로 들어갈 위기에 처한다.
그곳은 아이와 부모를 단절시키고
끊임없이 경쟁하며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인격체로 만든다.
능력자들의 단결을 막고 정부가 부리기 쉬운 노동력으로 세뇌시키는
인력양성소라는 것을 아는 쿠퍼는
어떻게든 딸의 아카데미 입학을 막고 싶은 것이다.
그러는 사이 아카데미 출신 지도자 테러조직이
엄청난 사상자를 내는 대규모 폭탄테러가 발생하고
쿠퍼는 딸을 아카데미에 보내지 않기 위해
상사와 무간도 구두계약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자신이 이번 테러의 주범이 되어 공정국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테러조직에 호의를 얻어 잠입하여 테로조직의 수장을 처리한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는 말처럼
절친한 동료와 자신의 팀원들도 모르게 상사와의 1대1 밀약이다.
쿠퍼의 상사가 그를 배신하면
그는 테러범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상사의 입장에선 쿠퍼가 적을 처단해 주면 좋은 일이고
실패해도 그만인 일…
그럼에도 쿠퍼는 자신을 내던져 가족을 지키고자 떠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볼 때마다
과연 스파이라던가 비밀요원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의 행복은 어찌되는 것인가.
국가와 가족의 안녕을 위하여 희생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당사자의 안녕과 행복은 어찌되는 것인지 생각해본다.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지도 못하고
매일이 혹독한 상황에 처하고도
일이 잘못되면 온갖 누명을 뒤집어 쓴 채 처참한 죽음.
일이 잘 되도 목표달성 그리고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인 것을…
상대방이 아무리 나쁜 놈이고 의도가 어찌되었든 남을 속이고 뒷끝이 좋을 리가 없다.
그래도 쿠퍼는 자신의 공명심에 위기를 맞이하면서도
도주를 하며 자신의 적성에 맞는 범죄적 재능에 눈 뜨고
일반인이라면 부담스러워할 능력도 포용해 줄
능력있는 여성도 만났으니 다행이랄까…
그가 벌인 일의 후폭풍은 잠시 접어두자ㅡㅅ-aaa
p.451:13 쿠퍼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그리고 다시 담배를 치우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줄곧 이 순간을 기다리고 계획해 왔음에도, 쿠퍼는 감정적인 충격에 휘청거렸다.
쿠퍼는 지금 여기에 그가 그 자신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가 여태까지 그 모든일을 하고도 밤에 편히 잠들 수 있는 이유였다.
스미스는 그가 평생에 걸쳐 싸워 온 모든 것이었다. 그는 단지 살인자나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인간의 형태를 한 재앙이었다. 쓰나미, 지진, 혹은 상수도에 터진 오물 폭탄이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신념 외에 다른 무엇도 믿지 않는,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자기 뜻대로 바꾸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남자. 그가 와이오밍의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 맨발로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