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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삼바
델핀 쿨랭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프랑스라고 하면 왠지 유럽 선진국의 대표적 나라이며 급진적인 사회제도, 자유와 낭만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현지인의 말에 따르면 주요 몇몇 관광지역을 제외하면 외국인의 출입자체가 위험한 도시라고 한다. 더욱이 굴링굴링한 말과 함께 심각한 인종차별주의, 관공소의 우월주의와 뺑뺑이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나선 돈 싸들고 황제관광은 할지언정 굳이 차별받기 위해 제 발로 그 나라에 살고 싶진 않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급진적인 사회제도가 필요한데에는 그만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정도로 해결되지 않는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일까. 난민도 아닌 삼바가 밑도 끝도 없이 프랑스란 나라에 꽂혀 떠나는 모습이 죽는 줄도 모르고 불 속으로 날아드는 나방같다는 생각을 했다.
삼바는 오래 전 프랑스로 떠난 삼촌을 찾아간다. 작지만 우아한 몸짓의 삼촌은 그를 반겨주고 돌봐주었지만 마냥 기쁠 수 는 없었을 것이다. 그간의 성실함으로 이제 나름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겨우 장기체류증을 몸에 품고 살게 되었는데 느닷없이 폭탄이 날아들었으니 말이다. 불법체류자를 숨겨주는 치명적인 대가를 생각했을 때 차라리 조카를 모르는 척 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삼바 시세, 1980년 2월 16일생, 바마코, 말리.
프랑스 입국, 1999년 1월 10일.
체류증 신청, 2009년 2월 1일.
그러나 저 안일한 접수증을 보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삼바의 고단한 삶에 삐딱선을 타고 만다.
10년간 프랑스를 위하여 더럽고 위험한 일을 대신해주고 세금도 꼬박꼬박냈다. 하지만 그것이 체류증을 얻기 위한 정부의 지시나 무료봉사는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난 10년간 너무 안일했던 것은 아닌가 싶은 것이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체류를 인정하는 직종분류가 되어있고 어느 정부나 모든 일에 절차와 서류란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삼바와 삼바의 삼촌이 한 것이라곤 10년간 그저 일만 한 것 아닌가- 체류증을 얻기 위한 시도나 절차를 알아보는 등의 주변의 도움을 구해 본 적이나 있었던가 말이다.
결국 10년만에 어머니 성화에 못 이겨 잠시 말리에 다녀오고자 처음 체류증을 신청하게 된다. 이무슨 강심장이란 말인가… 숨어지내도 모자를 판국에 나 여깄어요~ 한 것도 모자라 답변이 늦어진다고 제 발로 경찰청에 찾아간다. 자발적으로 번호표를 뽑아들고 장시간 대기까지 한 삼바는 체포되고 강제추방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불법체류자 보호단체의 도움으로 강제추방을 면한 대신 자발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자발적이래ㅎㅎㅎ
p.108:3 <삼바 시세 씨가 연고가 없지 않은 말리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p.108:11 프랑스 당국은 그가 유치소를 떠나게 내버려 뒀다. 그가 순순히 여행사로 가서 말리행 비행기 표를 살 거라고 믿으며.
프랑스 당국은 정말이지 순진했다. 강제 추방을 면한 그가 기쁜 마음으로 말리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그는 다음에 또 걸릴 때까지 조금 더 남아 있으려고 시도할 것이다. 설사 남는 것이 이젠 정말 불법이라 하더라도.
삼바가 비웃은 정부의 코미디 같은 판결이었다. 크나큰 위험을 감수하며 알게 된 체류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삼바는 진정한 불법체류자가 되기로 한다.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는 그는 다른 사람의 이름아래 자신을 숨겨야 했다. 삼바는 점점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되는 삶에 익숙해지는 사이 삼바 시세는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
가족도 친구도 사랑도 종국에는 자기 자신까지 잃어가며 오로지 증오의 땅 프랑스에서 버티는 것만이 살아가는 목적이 된 한 남자의 이야기에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우리네 부모세대들의 사연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상상해본다.
하루가 멀다하고 커다란 항공가방을 메고 우리동네 시골버스에 오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부디 한국이라는 나라가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어렵사리 찾아 온 그들에게 부디 증오의 나라로 기억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p.210:12 행복한 사람들에게는 사연이 없는 법이다.
p.285:1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 당신들이 무시하고 내친 사람들에게 쌓인 슬픔이 당신들의 나라를 가득 메우고, 당신들의 행복을 오염시킬 거라고. 그들의 떠도는 영혼이 당신들 주변에서 배회하는 것을 느끼게 될 거라고.
당신들도 오래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세상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