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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슈퍼히어로
김보영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3월
평점 :
연작구성이 아니라면 혹은 연작이어도 상관없긴하지만,
단편집의 매력중 하나는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목차를 펼치고 마음에 드는 제목의 단편부터 읽거나
시간이 없을 땐 제일 짧아 보이는 것을 먼저 찾아 읽는 즐거움이 있다.
바로 요전에 읽었던 단편집도
결말이 제일 궁금했던 줄거리의 작품순으로 읽었는데
재미있었다는 해피엔딩ㅡ~-
그런데 나는 이 글을 어디서 봤던걸까…
어느 블로그인지 카페인지
이 책은 꼭 순서대로 보라는 글을 본 것 같다.
그뤠? 그렇다면 순서대로 읽어주지, 이 몸은 팔랑팔랑이니까ㅡㅅ-
그래서 어땠느냐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순서대로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국내산 슈퍼히어로라는 소재와
표지에서 느껴지는 삐끕마이나의 겉모습에
절대 방심해선 안된다.
사실 나는 [월간영웅홍양전]과 [폅복협 대 옥나찰] 설정에 혹해서 살짝 방심을…ㅡ_-aaa
그러나 단편집 중반을 넘어서니
작품들은 뒤로 갈수록 묵직한 느낌이 더해진다.
재미의 문제가 아니라 무게의 차이가 느껴지며
이것은 무슨 철학책인가 싶어지는 것이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p.455:15 원고를 하나하나 받아보면서 ‘영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누구 하나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또한 놀랍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다못해 “당연히 그게 영웅이잖아. 누가 생각해도…”라고 생각하는 부분까지 다 다르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기획의 말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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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독서라는 것은
참으로 몸따로 마음따로 노는 형상이라 하겠다.
읽기 전엔 하염없이 코믹작렬 줄거리가 끌리는데
읽고 나면 그렇게 심각할 수 없는 주제의 이야기에 감상이 후하다.
스스로 웃긴 인간이라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내면은 우울한 인간이었더라는 슬픈 예감이…ㅜ_-;;;
왠지 입꼬리가 씰룩거리게 만드는
<이웃집 슈퍼히어로> 표지를 보는 순간
‘어마, 이건 읽어야해ㅇㅂㅇ’ 부류에 속했다.
한달에 한번 달걸이를 영웅적으로 하는 여친을 둔
모태솔로 남친의 이야기 [월간영웅홍양전]이나
그 유명한 슈퍼히어로 배트맨 무협버전 [편복협 대 옥나찰]의
줄거리와 설정에 끌려 집어들었으나,
읽고나니 왠지 영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작품들이 기억에 남는다.
서울히어로 [초인은 지금],
영웅놀이 [선과 선],
악당예감 예지아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위 작품들은 다른 이야기지만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어 보인다.
[초인은 지금]에서의 초인은 철저하게 서울 안에서만 활동한다.
그 거리가 지척이어도 행정구역 경계선상 밖에 있으면 출현하지 않는다.
초인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p.198:22 초인이 전 세계를 다 지킬 수는 없을 것이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까. 초인이 빛의 속도로 돌아다닌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다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한정된 지역만 지키자고 결정했을 수 있다.
그러나 왜 하필 서울일까?
음…뒤의 작품을 읽어보면 그건 단순히 초인이 서울사람이니까 그런 것이 아닐까ㅡ_-aaa
[초인은 지금]에서 상상해본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이
뒤에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에 등장한다.
게다가 초인은 혼자가 아니며 여러지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능력의 초인들이 각각 자기 생활구역을 수호하고 있다.
위의 문제들을 소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초인들은 악당이 되고만다.
p.308:15 ‘네가 일을 잘 하면 사람들은 네가 일을 한 줄도 모른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다. 초인질에 관해 그분이 가르쳐준 유일한 것이었다.
네가 일이 커지기 전에 막을 테니까. 뭐가 일어난 줄 알기도 전에 해결할 테니까. 사람들은 세상이 본디 그리 돌아가는 것이라 할 것이다. 대충 신이 저를 사랑하는 줄로 알 것이다.
그보다 못하면 비난을 받을 거다. 왜 제 소중한 소지품이며 귀한 것들을 챙겨주지 않았느냐든가, 공연시간에 늦었는데 어떻게 배상해 줄 거냐든가, 애가 놀라서 우는데 어쩔 거냐든가. 네가 말도 못하게 일을 못하면 이름을 날릴 거다. 목숨이라도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무릎을 꿇고 절하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환호하며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을 볼 것이다.
그보다 못하면요. 그러자 아버지는 뚱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그보다 못하면 악당이지.
한 끗 차인데요. 한 끗 차이지. 삐끗이네요.
그래 모든 영웅은 악당이 되고야 만다. 되지 않은 놈은 일찍 간 놈뿐이여.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의 아버지 또한 초인이었다.
아버지는 슈퍼히어로가 하는 일에 대해 ‘초인질’이라 칭한다.
그리고 그 초인질을 하시다 무명에 돌아가셨다.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하든간에
세간에서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 없으면 영웅아닌 초인질에 불과한 것이다.
초인질이 멀쩡한 사회에 어떤 결말을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선과 선]을 보면
단기적으로 뽐낼 수 있는 영웅허세 너머로 직면한
영웅의 나아갈 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게 된다.
흔히들 슈퍼히어로라고 하면 콧방귀부터 뀌는 사람들이 있는데
극단적인 능력의 소유자를 예시로 들었을 뿐
현실에 적용가능한 문제라고 가정했을 때
이게 그렇게 우스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평소에도 슈퍼히어로에 그닥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음 직한 이야기들이 깔려있어
한단계 생각을 전진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우어우어…
영웅이란 무엇인가,
일단 나는 너무 어렵뚜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