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트 마운틴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열 한 살 소년인 ‘나’는 올해도 어른들을 따라 고트 마운틴으로 사슴사냥을 떠난다.
아직 제 앞가림도 하기 벅찬 나이지만 야생에선 어른이 빨리 되는 법.
작년까진 사슴몰이를 도우며 사냥을 쫓아다니기만 했지만
소년은 올해 처음으로 라이플을 들 수 있게 되었다.
첫 사슴사냥을 허락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소년에게 있어 총을 쏜다는 것, 즉 사냥이란
사유지를 침범한 밀렵꾼을 쏘는 것과 사슴을 쏘는 것의 경계가 없음을
어른들은 미처 몰랐다.
그들의 성급한 판단으로 소년의 첫 사냥은 인간사냥이 되어버린다…
남자가 죽음으로서 다년간 쌓아올린 그들간의 유대는
손가락 사이로 떨어지는 모래알 같이 흩어진다.
할아버지는 없는 일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라하고
톰아저씨는 이 죄의식 없는 소년을 당장 신고해서
미래의 범죄자가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바른 사나이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없는 일로 할 수도, 아들을 신고하지도 못한다.
한심한 아들을 보며 할아버지는
아비 손으로 자식을 벌하기를 명령한다.
소년의 인생 혹은 목숨을 두고 벌어지는
이러한 격론이 오가는 그곳에 소년은 존재하지 않았다.
투명인간이 된 소년은 가슴이 뻥 뚫린 채 절명해버린 남자를 보며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이 비열한 남자 탓이라 느낄 뿐이다.
캠프에서 사슴 갈고리를 차지한 남자와 보내는 그날 밤.
소년은 잠결에 할아버지의 습격을 받고 밤새 잠을 설친다.
그리고 이튿날 이어지는 사슴사냥.
소년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릿속이 복잡한 어른들은
소년의 존재를 있는 듯 없는 듯 무시한다.
아직 체구가 작은 소년은 악착같이 어른들의 뒤를 쫓지만
결국 뒤쳐져 버리고 홀로 맞닥뜨린 사슴의 존재를 깨닫는다.
선과 악, 아직 옳고 그름에 대한 죄의식의 성숙보다
본능적인 사냥의식에 눈을 떠버린 소년은 사슴을 향해 총을 쏜다.
아…이 녀석은 진짜로 틀려먹었구나…싶은 순간이었다.
p.169:17 놈의 절반은 흙 속에 처박히고 나머지는 발버둥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인간과 진배없는 목소리. 사슴은 비명을 지르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고통과 당혹감과 분노의 목소리가 하늘로 올라갔다. 날카로운 비명. 짐승의 울부짖음이 아니라 겁에 질린 인간의 비명처럼 들렸다.
인간의 비명을 지르며 죽음을 거부한 채
자신을 향해 땅을 차며 다가오는 사슴을 보며
남자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공포가 소년을 엄습해왔다.
소년은 사슴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원래대로라면 가슴이 뻥 뚫린 남자 이전에 느꼈어야 할 공포였지만
지금 깨닫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그럼에도 소년은 아직도 라이플을 포기하지 못한다.
어른들은 아마도 암묵적으로 소년의 운명을
신의 존재인 이 태고의 산, 고트 마운틴에게 맡기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에겐 그 뜻을 헤아릴 지혜가 없었다.
아무리 버리고 도망쳐도
세상의 끝까지 자신들의 뒤를 쫓아오는 악령처럼
소년은 다시 그들 앞에 나타나고야 만다.
결국 평점심을 가장한 어른들의 처세는 공포가 묻어 나오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
.
.
소년의 눈으로 본 이 이야기는
공감력이 떨어지는 소년이기때문에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에 못지않게 소년 자신의 행동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포, 분노라는 원초적인 감정은 있지만
환상 외의 사고라는 것이 없는 소년의 시각으로는
철학과 종교가 점철된 이 이야기를 끌고나가기엔
다소 역부족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