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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병사 - 어느 독일 병사의 2차 대전 회고록
기 사예르 지음, 서정태 엮음 / 루비박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탱크에서 뛰어내리는 소련군
사진은 러시아군의 모습이다. 황량한 대지를 달려가는 군용트럭과 탱크, 야포들의 모습. 슈투카 전투기가 내리꽂힐듯이 수직 비행하면서 퍼붓는 폭탄들. 군화조차 없이 달려가다 파편을 맞고 쓰러지는 '이반'의 모습들..러시아 작가들이 쓴 독소전쟁의 풍경이다.
'잊혀진 병사'는 그러나 독일군의 시각이라는, 아주 낯선 눈길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아마 한국에선 처음 소개되는 시각인 것 같다. 다소 거친 문장 속에,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는 써낼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헤드라이트를 완전히 끄고 질주하는 군용트럭들, 탱크 뒤에 타고 전장을 달리다가 과열된 기관 때문에 뜨거워서 도무지 더 이상 타고 갈 수 없더라는 이야기에는 살아 숨쉬는 인간의 모습이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나치와 히틀러에 대한 반발도, 충성도 볼 수 없는 아주 건조한 중립지대에 서있는 작가의 글이라는 것이다. 아마 전쟁 당시에는 나치즘에 대한 동경이 있었지만, 이 글을 써낼 당시에는 그런게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일본의 그 숱한 작가들이 쓴 전쟁 문학이 전쟁 중의 천황과 군부에 대한 존경심을 완전히 빼버린 채, 전쟁의 참상만을 다뤄서, 자신 역시 피해자임을 드러냈듯이. 그래서 읽으면서는 비감하고 정갈하지만, 다 읽고 나서 생각하면 다소 역겨운.
이 책 역시 자신을 피해자라고 은연중에 묘사하고 있다. 베를린에서의 짧은 연애를 그리는 대목에서는 읽는 사람마저 안타깝게 묘사하는 힘이 있다. 제목이 '잊혀진 병사'라는 것에서도 자신에 대한 연민이 들어있다. 제목은 원제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글쎄, 잘 모르겠다. 독일도 프랑스도 아닌 알사스 출신의 병사라면, 독일 군 내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도 그런 모멸을 받는 대목들이 나온다. 해서, 이 책은 온전한 독일군 본연의 내면 풍경을 그린 것은 아니지 않을까. 독일군의 이야기는 히틀러소년단 같은 데서 일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나오지 않을까. 아아, 발트하임이나 귄터 그라스는 왜 자신들의 나치군 복무 체험을 털어놓지 않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