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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 부동산 ㅣ 기기묘묘
박혜연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10월
평점 :
우리는 살아가며 감당하기 힘든 불운과 절망에 부딪힐 때 차라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곤 한다. 반대로 옛 설화 속 요괴들은 그토록 고단한 인간의 삶을 간절히 동경하며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삶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인간과 어떻게든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요괴가 만난다는 독특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박혜연 작가의 장편소설 기기묘묘 부동산을 읽었다. 서울 한복판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기묘한 복덕방 귀구부동산을 배경으로 인간과 괴이의 운명을 중개하는 한국형 도시 판타지 서사가 시작부터 큰 호기심이 생겼다.
소설의 줄거리는 벼랑 끝에 몰린 청년 연준과 괴이들의 군주 단야의 기묘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평생 지독한 불운에 시달리며 사채 빚과 실패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연준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염라마저 두려워하는 괴이의 왕 단야를 마주한다. 단야는 연준의 몸에 짙게 서려 있는 불운이 자신에게는 달콤한 간식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구해준다. 갈 곳 없는 연준은 단야의 복덕방에 머물며 삶을 포기하려는 인간의 빈 몸에 이승 정착을 꿈꾸는 요괴들을 입주시키는 특별한 중개 일을 돕게 된다. 도심 개발로 갈 곳을 잃은 산신이나 두 발로 걷고 싶어 하는 인어 그리고 욕망에 물든 타락한 괴이들의 사건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여정이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책을 읽기 전 출간 기념 가상캐스팅 이벤트에 당첨되어 소설 속 인물들의 배역을 직접 상상해 보는 즐거운 기회가 있었다. 서늘한 카리스마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괴이의 왕 단야 역에는 특유의 고혹적인 눈빛을 지닌 배우 고윤정을 떠올렸다. 지독한 불운에 치여 처연하면서도 내면에 따뜻한 심성을 간직한 연준 역에는 억울하고 짠한 청춘의 얼굴을 가장 실감나게 표현하는 배우 최우식을 가상으로 캐스팅했다. 여기에 단야를 오랜 세월 곁에서 묵묵히 보좌하며 든든한 무게감을 더해주는 차귀 역에는 특유의 묵직함과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 박희순을 떠올렸다. 귀구부동산의 일상을 지키며 능청스럽고 친근한 매력을 보여주는 기영 역에는 생활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배우 유해진을 캐스팅했다. 머릿속에 네 배우의 얼굴과 표정을 겹쳐두고 소설을 읽어나가니 대화와 장면들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불운을 먹어 치우는 단야와 허둥대며 뒷수습을 하는 연준 그리고 곁을 지키는 차귀와 기영의 호흡이 영상처럼 그려져서 나중에 이 매력적인 이야기가 영화나 드라마로 꼭 만들어지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기묘묘 부동산은 기이한 요괴들의 소동극을 빌려와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되돌아보게 만든 소설이다. 인간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괴이들의 서툰 삶을 지켜보며 내가 당연하게 누려온 일상과 호흡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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