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 - 우리가 기억해야 할 기지촌 여성들의 기록
영춘 외 지음 / 세종마루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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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가 놀랄 만큼 빠르게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그 화려한 발전의 이면에는 미국을 비롯한 타국의 원조와 함께 힘없는 개개인의 혹독한 희생과 눈물이 깊게 깔려 있었다. 특히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국가 발전과 안보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수많은 국민들이 정당한 권리를 빼앗기고 침묵을 강요당해야 했다. 예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보면서 미군기지 주변에서 살아간 기지촌 여성들의 아픈 역사를 처음 접하고 마음이 무거웠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통해 방송 화면으로 스쳐 지나갔던 기지촌 여성들의 비극적인 삶을 책을 통해 훨씬 더 자세하고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책은 총 7개 장으로 나뉘어 한국전쟁 직후부터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즈 주변에서 살아간 한 여성의 40년 세월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지독한 가난과 가정의 방임 속에서 태어난 주인공 명자는 가족의 생계를 돕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속임수에 빠져 기지촌 클럽 거리로 흘러들어간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팝송이 흐르는 별세계 같았던 그곳은 빚과 착취가 지배하는 감옥이었다. 3장과 4장에서는 국가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이자 민간 외교관이라 치켜세우며 여성들의 성매매를 관리하고 강제 성병 검진을 밀어붙였던 부끄러운 국가폭력의 실체가 드러난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우도 받지 못한 채 낯선 이국땅의 문화와 언어 속에서 상처를 견뎌내야 했던 여성들의 처절한 일상이 그려진다.

후반부인 6장과 7장에서는 세월이 흘러 백발의 노인이 된 명자가 햇살사회복지회와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 일곱집매를 만나면서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이 담겨 있다. 사회적 차별과 낙인이 두려워 평생 가짜 이름 뒤에 숨어 살아야 했던 이들이 마침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상처를 보듬는 모습은 깊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수치심으로 묻어두었던 자신의 진짜 이름인 명자를 당당하게 말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한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국가의 묵인과 조장 속에서 청춘을 빼앗기고 희생되었던 이들의 눈물에 대해 이제라도 국가 차원에서 진정한 사과와 정당한 보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마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명자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그늘 속에 묻혀 있던 어두운 진실을 알려준 뜻깊은 책이다. 타국의 원조와 개인의 비극적인 희생을 발판 삼아 이룩한 번영 뒤편에서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가슴 깊이 배웠다. 화려한 경제 성장의 겉모습에만 도취되지 않고 역사의 어두운 사각지대에서 고통받았던 이웃들의 상처를 올바르게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꼬꼬무 방송으로 접했던 기지촌 여성들의 아픈 현실을 한층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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