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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경 - 기억과 상실, '치매'와 문학
이인현 지음 / 히스테리안 / 2026년 9월
평점 :
우리가 누군가를 온전히 기억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다큐멘터리를 찍고 소설을 써온 이인현 작가의 호경이라는 책을 집어 들며 표지 아래쪽에 또박또박 적힌 주인공의 서툰 손글씨에 눈길이 갔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접하던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어 읽는 내내 무척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진과 편지 그리고 대화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고 장마다 시점과 서술 형태를 다채롭게 보여주는 독특한 형식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가족도 돌봄자도 의학 전문가도 아닌 타인이 어째서 기억을 잃어가는 한 사람에 대해 쓰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끌어안은 채 약한 고리로 맺어진 관계 속에서 길을 잃고 다시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의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기억의 상실과 취약해짐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았다.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어제의 사건을 깜빡하는 수준을 넘어 자기 자신을 통째로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두려움이다. 일상이 무너져 가족에게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다가온다. 20년 동안 타국에서 살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초기 치매 진단을 받은 호경이 낯선 모국어의 세계 속에서 홀로 겪어야 했을 막막함을 따라가며 기억이라는 것이 한 인간의 존엄과 얼마나 깊이 맞물려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예전에 우리 친할머니께서 치매를 앓으셨던 시절을 직접 곁에서 지켜보고 경험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책 속의 호경이라는 인물을 이해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다. 할머니의 총기 있던 눈빛이 조금씩 흐려지고 익숙했던 가족들의 이름과 지난 세월의 조각들이 하나둘 지워지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작가가 호경의 비어 있는 기억을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고 그 망각의 공백 속에서도 함께 노래를 듣고 대화를 나누며 묵묵히 곁을 지키는 모습에서 깊은 위로를 얻었다. 이름을 잊어버리더라도 함께 마주했던 존재의 온기만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문장이 할머니를 그리워하던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호경은 기억이 사라진 빈자리에 무엇이 남는지를 조용히 생각하게 만든다. 사진이나 편지 같은 기록으로도 온전히 붙잡을 수 없지만 서로에게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며 만들어낸 것은 기억도 마음도 아닌 영혼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이제는 완벽한 기억이나 뚜렷한 결론에 집착하기보다 약한 고리로 연결된 내 주변의 존재들에게 먼저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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