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우리는 늘 더 빠른 속도와 즉각적인 효율에 집착하곤 한다. 조금이라도 인터넷이 느려지거나 일의 성과가 더디게 나타나면 조급함과 불안에 쫓기기 일쑤였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독 속도와 즉각적인 처리를 중시하는 빠름의 민족이기에 남들보다 세상의 변화와 일상의 속도감을 훨씬 더 빠르고 숨 가쁘게 체감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중에 에너지와 환경 그리고 문명사의 거장인 바츨라프 스밀 교수의 신간 질주하는 세계는 그 과정을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지구의 탄생부터 생물의 진화와 산업혁명 그리고 초고속 데이터 통신에 이르기까지 속도라는 보이지 않는 질서의 척도를 통해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변화하는지 다양한 시선으로 파헤쳐 주었다.책의 전반부에서 펼쳐지는 자연계와 전근대 사회의 속도에 관한 기록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수십억 년에 걸친 지질학적 시간 속에서 대륙이 이동하고 생명이 진화하며 멸종을 겪어온 흐름은 인간의 조급한 시야를 단숨에 압도했다. 3장에서 다룬 전근대 인류의 물리적 한계 역시 인상적이었다. 과거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깊이 몰입하여 즐겼던 유저로서 바람을 안고 바다를 건너던 돛항해에 관한 대목을 마주했을 때는 반갑고 흥미로웠다. 증기기관이 등장하기 전까지 인류는 가축의 힘과 바람 그리고 계절의 순환이라는 엄격한 자연의 속도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다. 망망대해를 목조 범선으로 가르며 바람의 방향에 일희일비하던 그 시절과 오늘날을 비교해 보며 시대의 발전 속도가 얼마나 눈부시게 도약했는지를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그 느림의 터전 위에서 인류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생존의 지혜를 축적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이어지는 4부와 5부에서 내연기관과 제트엔진 그리고 반도체가 촉발한 현대 문명의 폭발적인 가속을 추적하는 대목은 무척 흥미진진하면서도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도대체 왜 이렇게 빨라졌을까 고민하며 문명의 거대한 변곡점을 따라가는 동안 보잉747과 광케이블이 시공간의 거리를 소멸시키며 이끌어낸 번영의 이면을 보았다. 화려한 질주 뒤편에는 막대한 화석연료 소비와 생태계 파괴라는 대가가 숨겨져 있었다. 특히 소프트웨어의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디지털 특이점의 허상을 비판하며 에너지 전환과 탈탄소화 같은 물리적 현실은 결코 마법처럼 빠르게 앞당길 수 없다고 짚어낸다. 효율과 속도에 눈이 멀어 자연의 물리 법칙마저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던 현대 문명의 맹점을 비판했다.빠름에 익숙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세상에는 물리적으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고유한 시간과 성숙의 리듬이 존재한다는 진리를 가슴 깊이 새겼다. @woongjin_readers #웅진지식하우스 #바츨라프스밀 #질주하는세계 #과학교양 #인문교양 #인문학책 #교양과학서 #책추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