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을 접할 때면 그저 먼 미래의 화려한 볼거리나 기발한 상상력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상명대학교 김치훈 교수의 SF와 사회를 읽으며 그동안 내가 가졌던 안일한 시선이 완전히 뒤흔들리는 지적 충격을 받았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그동안 인상 깊게 보았던 수많은 SF영화들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게임 개발과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에서 쌓은 이력답게 책은 스크린 속 환상에 머물지 않고 현실의 날카로운 단면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SF는 단순히 오지 않은 미래를 그리는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첫 장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책에서 제시하는 여덟 개의 렌즈를 따라가는 동안 과거 극장에서 보았던 여러 영화 속 장면들이 현실과 겹쳐지며 큰 충격을 주었다. 기후 재난으로 황폐해진 지구를 탈출하거나 인구절벽과 고령화 속에서 로봇을 가족으로 맞이하던 암울한 스크린 속 디스토피아는 이미 우리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특히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을 다룬 대목에서는 생성형 기술의 눈부신 발전 이면에 도사린 인간 소외와 윤리적 책임의 문제를 보게 되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범람하는 세상 속 영화적 경고들이 결코 상상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고유한 존엄과 실재를 위협하는 현실의 질문으로 다가와 깊은 전율과 함께 긴장감을 안겨주었다.거대 자본이 설계한 세계와 우주 시대의 윤리를 다룬 장에서도 스크린을 가득 채웠던 수많은 우주 영화와 디스토피아 영화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계층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국가마저 집어삼키는 초거대 기업의 지배력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통찰은 영화 속 재난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듯 설득력이 있었다. 유토피아는 결코 첨단 기술 그 자체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제하고 다루는 인간의 성숙한 성찰과 공동체적 연대가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는 진리를 배웠다. 영화 속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과학이라는 강력한 엔진의 방향타를 쥐고 있는 것은 결국 기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되돌아보았다.SF와 사회는 미래라는 이름의 스크린을 통해 지금 당장 우리가 풀어야 할 현재의 과제들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영화를 그저 팝콘을 먹으며 즐기던 오락거리로 소비하던 나에게 상상력이라는 렌즈로 시대를 조망하며 기술의 질주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미디어와 첨단 기술의 파도 앞에서도 수동적인 소비자로 머물지 않고 인간의 온기와 비판적인 사유를 잃지 않는 단단한 주체로 살아가야겠다.#SF와사회 #김치훈 #미래를읽는8개의렌즈 #SF영화 #도서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