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남이 짜놓은 각본대로 끌려가듯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깊은 회의가 밀려오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최진석 교수의 신간 텃밭과 정원을 읽게 되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같은 저서들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통념을 깨부수고 주체적인 시선을 일깨워준 저자이기에 이번 책 역시 기대가 되었다. 책은 단순히 추상적인 철학 담론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내 삶의 당당한 설계자로 도약할 것인가를 질문해 왔다.2부에서 마주한 텃밭과 정원의 비유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동안 텃밭과 정원을 단순히 일상의 소소한 공간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던 나에게 저자의 통찰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텃밭을 가꾸는 일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당장의 먹거리를 거두는 생존과 기능적 적응의 영역이다. 반면에 정원을 조성한다는 것은 높은 시선에서 공간 전체의 질서를 구상하고 기하학적인 조화를 설계하는 입법자의 태도였다. 내가 그동안 눈앞의 문제를 수습하기에 급급한 텃밭의 기록자로 살았는지 아니면 내 삶의 전체 청사진을 그리는 정원의 설계자로 살아왔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저자는 사물의 노예에서 구조의 주인으로 건너가기 위해 반드시 추상의 사다리를 올라야 한다고 설명한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만 매몰되지 않고 왜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의 평가에서 벗어나 실존적 주체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설명에 깊이 공감했다. 공자의 인이나 노자의 도처럼 인류 문명을 이끌어온 위대한 사유의 도약 역시 결국 높은 곳에서 세상을 조망하는 추상의 높이에서 비롯되었다. 감상적인 위로나 얄팍한 조언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세계의 문법을 만들어 나가야 번아웃 없이 온전한 존엄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텃밭과 정원은 남이 써준 각본에 갇혀 끌려다니던 나에게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도록 조언했다. 이제는 낮은 지표면의 익숙한 안전지대에 머물지 않고 사유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나만의 길을 걸어나갈 용기를 얻었다. 매일 주어지는 고단한 일상을 텃밭의 차원에서 소비해 버리지 않고 내 삶의 고유한 정원을 가꾸는 마음으로 매 순간 시선의 높이를 끌어올릴 것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에 짓눌려 무기력함을 느끼거나 진정한 자기 삶의 설계자로 다시 일어서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텃밭과정원 #최진석 #퍼블리온 #서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