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행복하게 - 35개국을 여행하며 비로소 알게 된 것들
바뇨별(정반효)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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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트랙 위를 벗어나지 않고 남들과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것만이 정답이라 믿어왔던 세상에서 다른 궤적을 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부러움과 신선한 자극을 안겨준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깊은 방황의 터널을 지나던 소년이 배낭 하나를 짊어진 채 35개 나라를 다니며 인생의 새로운 이정표를 찾아가는 여정은 그 자체로 눈부신 용기였다. 바뇨별 정반효 작가의 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행복하게는 화려한 휴양지의 사진이나 단편적인 관광 정보를 늘어놓는 흔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길 위에서 마주한 불완전한 자기 자신을 온전히 긍정하는 법을 배우는 참으로 따뜻한 방랑기였다. 젊은 나이에 이토록 다채로운 세상의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며 삶의 지평을 넓혀온 작가의 발자취가 첫 장부터 깊은 부러움이 밀려왔다.

돌이켜보면 과거 우리 부모 세대는 늘 젊은 시절에 악착같이 스펙을 쌓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 차곡차곡 자산을 모으는 것만이 인생의 확실한 정석이라고 굳게 믿으며 자식들에게도 그 길만을 강요해 왔다. 정해진 하나의 궤도에서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곧바로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서글픈 불안감이 사회 전체를 옥죄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이제는 남이 정해준 모범 답안에 내 삶을 억지로 끼워 맞추기보다 세상과 부딪히며 나만의 고유한 길을 발견하고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세상의 잣대에 갇히지 않고 낯선 국경을 넘나들며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진짜 어른으로 자라난 작가의 태도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다채로운 삶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인다.

책에 수록된 수많은 나라들의 이야기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고 인상 깊게 와닿았던 대목은 미국 여행기였다. 성공과 성취를 향한 사람들의 치열한 욕망이 서려 있는 아이비리그의 풍경부터 타인을 향해 다정한 체온을 건네는 하와이의 알로하 정신에 이르기까지 사진과 문장 속에 담아낸 미국의 얼굴은 대단히 입체적이었다. 사실 나 역시 여행을 유독 사랑해서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 30번이 넘도록 다양한 해외 도시들을 자유롭게 누벼왔지만 정작 미국 본토의 땅은 아직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늘 언젠가는 가보리라 마음속에 버킷리스트로 품어두고 있었기에 광활한 대륙 위에서 작가가 마주했던 수많은 경험과 감정의 모습들은 각별한 설렘으로 다가왔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눈부셔야만 행복한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낯선 길 위에서 길을 잃거나 예기치 못한 시련에 부딪히며 조금은 슬퍼질지라도 그 빈자리를 따뜻한 사람들과의 인연과 소박한 깨달음으로 채워가며 다시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진짜 묘미일 것이다. 갠지스강의 흐름 속에서 삶과 죽음을 배우고 축구 경기장의 열기 속에서 오랜 꿈을 이루어냈듯 여행이란 결국 외부의 풍경을 구경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진짜 나를 깨우는 성스러운 의식임을 공감했다.

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행복하게는 매일 반복되는 밥벌이의 피로 속에서 잊고 지냈던 방랑의 설렘과 자유를 알려주는 책이다. 나와 아내가 오랜 시간 준비하고 꿈꿔온 조기 은퇴를 마침내 이루어내는 그날이 찾아오면 이 책 속에 담긴 저자의 생생한 기록들을 길잡이 삼아 아내의 손을 잡고 미국 본토의 거대한 대지 위로 긴 여정을 떠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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