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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물방울 모양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9월
평점 :
조용하고 담담하게 흘러가는 일본 소설 특유의 서사를 읽다 보면 머릿속에 한 편의 잔잔한 영화가 자연스럽게 상영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데라치 하루나 작가의 기억은 물방울 모양은 표지부터 반짝반짝 빛나서 손이 가는 책이었다. 예전에 보았던 서정적인 일본 영화들의 공기와 빛바랜 풍경들이 문장 너머로 겹쳐 떠올라 몰입감을 안겨주었다.
중학교 시절 졸업 작품을 함께 만들었던 네 명의 동급생이 겪어낸 삶의 궤적을 3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점이다. 5년 단위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정교한 구성은 인물들이 통과해 온 세월을 느끼게 해 주었다. 빌딩 철거를 계기로 낡은 보석을 새롭게 리폼하던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된 네 사람의 재회는 과장되지 않은 현실의 무게를 담아낸다.
학창 시절 눈부신 추억을 함께 쌓았던 친구들이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뒤 다시 모여 지난날을 돌아보는 모습을 보며 과거 큰 감동을 주었던 영화 써니가 떠올랐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현실을 버텨내느라 잊고 지냈던 젊은 날의 순수함과 온기가 친구들과의 재회를 통해 다시 떠오르는 과정은 영화 써니에서 느꼈던 뭉클한 감동과 닮은 부분이 있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 역시 대단히 매력적이고 편안하게 다가왔다. 서로를 맹목적으로 구속하는 절친이나 뜨거운 연인의 관계가 아니라 적당한 온도의 거리감을 유지한 채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가장 건강하고 필요한 관계의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품게 만들었다. 빗방울이 모여 강이 되고 바다로 흘러가 다시 비가 되어 내리듯 형태를 바꾸어가면서도 본질을 잃지 않는 물방울과 보석의 비유는 서툴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버텨내는 우리의 모습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 작품이 아름다운 영상미를 품은 영화로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인물들의 표정과 골목의 공기 그리고 손때 묻은 보석의 반짝임까지 스크린 위에 그대로 펼쳐진다면 영화 써니처럼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감동을 안겨줄 것이라 확신한다.
기억은 물방울 모양은 각자의 자리에서 홀로 분투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지나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소중한 인연의 가치를 조용히 되새겨보고 싶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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