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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죄다
박현우 지음 / 바른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인공지능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고도화되면서 판결의 영역까지 기계가 대신하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인간 판사의 주관적인 편견이나 감정 기복을 배제하고 오직 객관적인 법리와 데이터만을 바탕으로 공정한 판결을 내려줄 것이라는 기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박현우 작가의 장편소설 나는 무죄다는 이러한 상상을 눈앞의 현실로 끌어올려 휴머노이드 재판장이 이끄는 법정의 풍경과 그로 인해 뒤흔들리는 인간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첫 장부터 던져지는 파격적인 화두와 거침없는 전개는 몰입하게 만들었다.
순히 인공지능 법정이라는 소재에만 머물지 않고 양자역학과 결정론이라는 물리학적 사유를 엮어냈다는 부분도 흥미롭다. 아버지를 살해한 천재 물리학자 동휘가 자신의 혐의를 온전히 인정하면서도 양자역학의 결정론적 해석과 신경과학을 근거로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없다고 외치는 장면은 무척이나 신선했다. 처음에는 정신이상으로 형량 조절 해보려는 건가 싶었다. 모든 행동이 물리 법칙과 신경 신호의 연쇄 반응으로 이미 정해져 있다면 개인에게 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는 정신 이상으로 보이지만 공학적으로는 반박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사건을 심리한 휴머노이드 판사 로버트가 그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여 초유의 무죄를 선고하고 전 세계 법정이 마비되는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은 사건을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소설 속 상황들이 먼 미래의 황당한 공상이 아니라 머지않아 인공지능 법정이 현실에 도입되었을 때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제아무리 흉악한 범죄라도 사회적 통념과 법 감정 그리고 윤리적 책임을 종합하여 결정을 내리지만 오로지 엄밀한 논리와 연산만으로 작동하는 기계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입력된 알고리즘의 완전무결함 속에서 오히려 인간다운 정의와 법의 테두리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부분이 현실적인 아쉬움이 느껴졌다. 기술이 인간의 판단을 완전히 대체하는 순간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혼란과 무법지대의 공포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무죄다는 빠르게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 속에서 법의 본질과 인간의 존엄이란 과연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SF 스릴러다. 양자물리학이라는 낯설고 어려운 개념을 흥미진진한 법정 공방으로 녹여내어 지루할 틈 없이 끝까지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었다. 인공지능 기술의 눈부신 진화 이면에서 우리가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윤리적 기준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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