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설들은 대개 인간 중심의 현실적인 갈등을 다루지만 기후 위기와 종말이라는 거대한 파국을 다룬 SF 작품들은 종종 무거운 감정을 남기곤 한다. 짐리원 작가의 펫페페페는 기후변화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그 안을 살아가는 존재들을 보여주는 참으로 독특하고 매력적인 소설집이었다. 황폐해진 세상의 어둠에만 매몰되지 않고 끝나가는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반짝이는 생명들의 온기를 포착해 낸 작가의 상상력은 첫 장부터 몰입감을 준다.평소 불광천을 따라 산책을 하다 보면 물길을 헤엄치며 평화롭게 떠다니는 오리 가족들의 모습을 자주 마주치곤 한다. 물결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그 작은 생명들을 바라보며 소소한 위안을 얻곤 했는데 표제작인 펫페페페를 읽는 내내 불광천의 오리들이 자연스럽게 겹쳐 떠올랐다. 플라스틱을 먹이로 삼아 몸을 바꾸고 마침내 서울의 여름 하늘로 날아오르는 오리들의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묘한 느낌이 든다. 환경 파괴라는 무거운 현실을 단순한 고발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생태계의 가능성으로 뒤바꿔낸 독특한 설정들이 흥미진진해서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단숨에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문윤성 SF 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던 올림픽공원 산책지침 역시 상을 받은 작품답게 대단한 몰입감과 깊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사라져버린 시원한 바람을 찾아 과거의 기억이 박제된 공원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 걷는 미래 사람들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슬픔과 신선한 재미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서울이라는 너무나 익숙하고 평범한 공간들이 기후 재난 이후 어떻게 낯설고 기묘한 장소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교한 묘사는 머릿속에 또렷한 풍경을 그려내며 상상하게 만든다.세계는 끝나기 직전에도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라는 문장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날씨가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계절과 불광천의 작은 생명들을 더욱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펫페페페 #짐리원 #아작출판사 #SF단편집 #서평 #책추천 #북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