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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산책
조항록 지음 / 행복우물 / 2026년 8월
평점 :
늘 시간에 쫓기듯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나만의 속도를 회복하고 싶을 때가 있다. 조항록 저자의 시절산책은 별일 없이 걷는 중이라는 부제처럼 아무런 목적이나 조급함 없이 계절의 길목을 가만히 걸으며 한 사유들을 담아낸 평온한 산문집이었다. 침묵 속에서 발걸음을 옮기며 마주하는 자연의 숨결과 사람살이의 풍경들이 책장마다 담담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 책에서 첫 장을 넘기며 가장 먼저 흥미로웠던 지점은 바로 사계절을 배열한 독특한 순서에 있었다. 보통의 책들이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서 출발해 겨울로 끝을 맺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차갑고 투명한 바람이 부는 겨울에서 시작하여 봄과 여름을 지나 쓸쓸하고 깊은 가을로 여정을 마무리한다.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첫 발걸음을 떼고 계절의 온도를 차례로 건너온 뒤 아직 닿지 않은 저 길들을 바라보는 가을의 고요함으로 닿아가는 구성은 인생의 순환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책에 실린 수많은 산문들 중에서도 가을 파트에 인간은 죽어 흙냄새를 남긴다는 글은 읽는 순간 기억에 오래 남겼다. 화려한 지위나 재산을 자랑하며 세상을 호령하던 사람도 결국 숨이 다하고 나면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자연의 한 조각인 흙으로 돌아갈 뿐이라는 진실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끝없는 욕심과 비교 속에서 매일 스스로를 소모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이 실상은 얼마나 덧없는가를 돌아보게 만들었고 삶의 끝자락에서 남겨야 할 진짜 태도가 무엇인지를 묻게 만들었다.
치열한 생존 경쟁과 현실의 피로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지금 나에게 이 책이 들려주는 문장들은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로 다가왔다. 훗날 나의 노후 역시 작가님처럼 눈앞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여유 있게 사색하고 걷는 시간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단맘의 서평모집>을 통해 도서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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