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말할 때 (선공개 특별판) ㅣ 자음과모음 시집 1
에밀리 정민 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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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가장 내밀한 상처와 마주하며 그 고통의 무게를 함께 견뎌내는 일이다. 에밀리 정민 윤 작가의 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말할 때는 힘든 역사적 비극과 이민자로서 겪어내야 했던 차별의 현실을 아름다운 언어로 보여준 시집이었다. 케이트 터프츠 디스커버리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오르고 유수의 문학 매체에서 주목받으며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학자이자 시인으로 활동해 온 저자의 이력은 시를 더 돋보이게 했다.

이 시집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지점은 한 페이지 안에 영어 버전과 한글 버전이 나란히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작가가 영어로 먼저 써 내려간 원문의 결을 음미하면서 동시에 우리말로 옮겨진 번역본을 교차해 읽는 경험은 대단히 신선하고 입체적이었다. 다른 언어의 뉘앙스 차이를 비교해 보고 시인이 두 언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붙잡으려 했던 본질적인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볼 수 있었다. 시인이 선택한 영어 단어 하나와 한국어 문장 한 줄이 거울처럼 작용하여 시적 여운과 몰입감이 더욱 느껴졌다.


시집에 실린 수많은 시들 중에서도 '사랑하는 모든 것을 만져볼 필요는 없다'라는 제목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온전히 내 손안에 쥐거나 직접 만져보며 소유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멀찍이 물러서서 그 존재의 고통과 숨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해 주는 침묵과 거리두기야말로 지극하고 순수한 형태의 사랑이자 연대일 수 있음을 느꼈다.


아시안 여성이자 이민자로서 세상의 무례한 호명과 폭력의 시선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고자 발버둥 쳤던 시인의 기록은 단순한 개인의 고백을 넘어선다. 짐승이라는 단어가 살아남기 위해 매일을 버텨내는 모든 소수자와 현대인들의 심장을 두드린다. 타인의 비극을 쉽게 판단해 버리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에 맞서는 시인의 태도는 용기를 건네준다.


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말할 때는 언어의 벽을 허물고 상처 입은 자들의 연대를 이끌어내는 용기 있는 시집이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함부로 손을 뻗는 대신 그 고통의 자리를 온전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법을 가르쳐 주며 우리 삶의 태도를 깊이 돌아보게 만든다. 낯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릴 것 같아 흔들리거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시집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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