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이나 무대 위에서 마주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모습은 늘 낭만적이면서도 어딘가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머물러 있었다. 영화나 뮤지컬 속에서 비장한 결의를 다지며 낯선 중국 땅을 누비는 독립투사들의 모습에 감동을 느끼면서도 정작 그들이 딛고 섰던 현실의 무게와 구체적 역사는 실감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창희 기자의 붉은 벽돌에 독립을 새긴 사람들은 흑백 사진 속에 박제되어 있던 임시정부의 시간을 오늘날의 생생한 역사로 알려주는 낸 신뢰감 넘치는 기록이었다. 정치부 기자의 시선으로 상하이부터 충칭에 이르기까지 11개 도시를 직접 발로 뛰며 담아낸 현장의 기록들은 첫 장부터 깊이가 있었다.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막연하게 상하이 한곳 정도로만 기억되던 임시정부의 이동 경로와 고단한 여정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부분이다. 일본군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항저우를 거쳐 난징과 창사 그리고 험준한 산세를 넘어 충칭에 도달하기까지 독립운동가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행적이 11개 도시의 골목길마다 새겨져 있었다.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역사적 사료와 낡은 건물들의 사진 그리고 조선혁명간부학교 학생의 취조 기록 같은 생생한 문서 자료들은 그 시절의 모습을 전해주었다. 피난처의 좁은 방 한 칸에서도 독립과 생존이라는 양팔 저울을 붙잡고 민주주의의 기틀을 고민했던 그들의 고뇌는 단순한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치열한 삶의 투쟁 그 자체였다.최근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던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행적 이슈를 접하면서 마음 한구석에 씁쓸함과 분노가 생겼던 기억이 지나갔다.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시대 앞에서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신했던 반민족행위자들의 죄과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고 기억하는 일은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낯선 타국의 차가운 붉은 벽돌 틈바구니에서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 오직 조국의 독립만을 꿈꾸며 스러져간 수많은 임시정부 사람들의 삶을 발굴하고 널리 알리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국을 팔아 부귀를 누린 자들의 부끄러운 행적을 규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것을 바쳐 나라를 되찾으려 했던 이들의 숭고한 헌신을 대중의 기억 속에 더 크고 또렷하게 새겨넣어야 마땅하다.윤봉길 의사의 비장한 유언처럼 피와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라던 그 간절한 외침은 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뜨겁게 울렸다. 밥벌이의 고단함과 현실의 소소한 불안에 흔들릴 때마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어둠 속에서도 끝내 포기할 권리조차 스스로 내려놓았던 독립운동가들의 결기가 대단해 보였다. 그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내고자 했던 나라의 무게를 다시금 되새기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일상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인지 절감하게 되었다.#붉은벽돌에독립을새긴사람들 #독립운동가 #임시정부 #드루 #책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