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화이트맨
모신 하미드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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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신 하미드 작가의 소설 라스트 화이트맨은 어느 날 아침 자신이 가장 당연하게 누리던 정체성이 뒤흔들리는 기이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평범한 백인 남성이었던 주인공 앤더스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의 몸과 피부는 짙은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변이는 앤더스 한 사람에게만 일어난 개인적인 해프닝에 그치지 않고 도시 전체와 사회 전반으로 순식간에 번져나가며 거대한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피부색 하나가 뒤바뀌었을 뿐인데 한 인간이 일상에서 무심히 누리던 안전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평온했던 삶의 특권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자신을 가두는 세상의 차가운 경계선과 증오의 시선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은 읽는 내내 깊은 몰입감을 안겨주었다.


​외견상 인종의 변화라는 환상적인 설정을 취하고 있지만 실상은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백인우월주의와 피상적인 편견의 허구성을 사정없이 꼬집는 사회적 메시지를 품고 있다. 앤더스가 연인 우나에게 자신의 바뀐 모습을 고백하고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숨어 지내면서 마주하는 공포는 단순한 신체 변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그동안 자신이 백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연하게 누려왔던 기득권과 안전지대가 얼마나 허약하고 불평등한 토대 위에 서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절망이었다. 피부색처럼 지극히 피상적인 조건 하나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던 백인우월사회의 모습을 정교하게 직시하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했다.


​소설 속에서 피부색의 변화로 거대한 기득권 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혼란이 가중되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거 인류 역사에 대한 생각이 이어졌다. 평소 역사를 읽다 보면 가끔씩 13세기 몽골 제국이 유럽을 침공했을 당시 만약 서유럽 전체까지 완벽하게 박살내고 오랫동안 점령했더라면 과연 오늘날과 같은 백인우월주의나 근대 유럽 중심의 세계관이 생겨났을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을 가져보곤 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서구 사회가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은 결코 특정 인종이나 피부색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지리적 환경과 시대적 운이 맞물린 결과에 불과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만약 몽골의 강력한 기마군단이 유럽의 봉건 질서를 완전히 해체해버렸다면 오늘날 인류사에서 피부색을 기준으로 권력과 우열을 나누는 부질없는 인종적 상상력은 아예 싹조차 틔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소설의 서사와 맞물려 들어갔다.


​또한 이 소설은 문학적인 깊이와 사회적 메시지 외에도 텍스트 자체에서 풍겨 나오는 시각적이고 극적인 긴장감이 뛰어난 작품이다. 자신의 바뀐 피부색을 숨기기 위해 소총 한 자루에 의지한 채 문을 잠그고 집 안에 틀어박히는 앤더스의 외로운 공포와 광기에 휩싸인 무장 세력이 문 앞까지 들이닥치는 절박한 순간들은 긴장하게 만든다. 앤더스의 긴박한 여정은 훗날 영화나 드라마라는 영상 매체로 만들어진다면 박진감 넘치게 느껴질 것 같다. 차가운 스릴과 서스펜스 속에서 펼쳐지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상실의 감정선이 화면으로 구현된다면 관객들에게 명작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라스트 화이트맨은 나에게 단순히 기발한 상상력의 재미를 넘어 우리 안의 편견과 당연하게 여겼던 사회적 관념들을 생각하게 한 책이다. 인종이라는 좁고 답답한 울타리가 허물어지는 혼돈 속에서 마침내 마주하게 되는 진짜 인간의 얼굴과 진정한 사랑의 가치는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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