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한글이 지닌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강병인 작가의 한글 숲의 동물들이라는 책은 단순한 글씨를 넘어 선 하나하나에 생명이 숨 쉬는 예술 작품처럼 다가왔다. 미생이나 대왕세종 그리고 참이슬 글씨로 널리 알려진 캘리그라피 거장의 손끝에서 탄생한 동물 글자들은 활자라는 틀을 깨뜨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준다. 사물을 깊이 관찰하고 상상하면 그 모습과 닮은 글씨를 쓸 수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종이 밖으로 뛰어나올 듯 살아있는 생동감을 품고 있었다.수많은 동물 글자들 중에서 내 시선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대목은 단연 개라는 글자였다. 현재 우리 집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반려견 빵글이가 살고 있기 때문에 개라는 글자가 표지와 본문에 등장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억세면서도 율동적인 붓 터치로 표현된 ㄱ과 ㅐ의 형태는 마치 화가 나서 짓거나 꼬리를 흔들며 신나게 달려오는 강아지의 활기찬 찰나를 그대로 포착한 듯했다. 글자를 보는 내내 곁에서 재롱을 부리는 우리 빵글이의 얼굴이 겹쳐 보여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머물렀다.또한 고양이라는 글자를 다룬 대목 역시 깊은 잔상을 남겼다. 글자의 모서리와 획 사이에 오롯이 새겨진 날카로우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매는 매일 퇴근길에 우리 아파트 단지 구석에서 조용히 마주치는 들고양이의 눈빛과 똑같았다. 경계심을 품은 채 가만히 서서 이쪽을 응시하는 동네 들고양이의 유연하고 정막한 분위기가 고양이 세 글자 속에 온전히 녹아들어 있었다. 활자 하나로 동물의 습성과 감정까지 표현해 내는 저자의 정교한 감각이 멋있었다.책 속에 담긴 자유롭고 강렬한 글씨들을 감상하는 동안 유년 시절의 추억들이 지나갔다. 나 역시 어릴 적에 길거리의 화려한 그래피티에 마음을 빼앗겨 혼자 블랙북이라는 수첩을 품에 안고 매일같이 새로운 태깅 글씨를 연습하던 기억이 있다. 영문 알파벳의 각도를 비틀고 획을 늘려가며 나만의 멋진 글씨를 조합하던 그 시절의 열정이 강병인 작가의 한글 멋글씨를 통해 다시금 떠올랐다. 알파벳이 아닌 소중한 우리 한글로도 이토록 거칠고 자유로운 예술적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오랜만에 블랙북을 펼쳐 들고 나만의 느낌을 담아 한글 태깅 글씨를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한글 숲의 동물들은 단순히 예쁜 글씨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넘어 언어가 가진 아득한 상상력과 잊혀가던 예술적 본능을 깨워준 책이다. 빵글이와의 다정한 일상을 떠올리게 해주고 아파트 들고양이의 시선을 느끼게 해주며 내 안의 창작 욕구를 지펴준 짧지만 기억남는 독서가 되었다. #한글숲의동물들 #강병인 #미래아이 #멋글씨 #캘리그라피 @mirae_i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