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 우리는 마음을 내려놓을 조용한 안식처를 찾아 헤매곤 한다. 그동안 시와 소설 그리고 과학 인문학을 넘나들며 왜 사는지 끊임없이 세상에 질문을 던지던 저자는 나이가 들고 몸이 무거워지면서 역설적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 가벼워진 마음의 결을 따라 그림과 글들은 메마른 내 일상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듯 했다.이 책을 읽는 내내 특별하고 근사한 감정은 마치 아늑한 미술관과 고요한 도서관에 동시에 들어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저자가 수채화와 아크릴 물감으로 정성껏 그려낸 따뜻한 그림들이 눈을 사로잡고 그 곁에 나직하게 자리한 깊은 사색의 문장들이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미술관의 정적 속에서 작품 하나를 오랫동안 서서 바라보는 시각적 즐거움과 도서관 한구석에서 텍스트를 읽으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지적 평온함이 책 한 권 안에서 융합되어 있었다. 그냥 그린 그림이나 밤길에서 만난 것들 혹은 아파트를 대하는 자세처럼 소박하고 흔한 일상의 풍경들이 저자의 독특한 미감과 언어를 보여주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 작품으로 나타나는 과정은 멋졌다.추천사에 적힌 글귀처럼 저자는 그림일기라는 자유로운 형식 뒤에 숨어 잘 그려야 한다는 거창한 규칙과 편견은 없었다. 잘 그린 그림보다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 행복해하는 마음이 훨씬 더 값지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는 저자의 어조는 완벽주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다.결국 느지감치 그림일기는 나에게 속도를 줄이고 내 일상의 사소한 풍경들을 명도 높은 빛깔로 아름답게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준다. 미술관의 우아한 분위기와 도서관의 깊은 지혜를 동시에 누리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