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초한지라는 역사 소설을 몇 번이고 읽었을 정도로 무척 좋아했다. 수많은 영웅들 중에서도 내 마음 속 가장 좋아하는인물은 서초패왕 항우였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개와 비장한 최후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슴 한구석을 아련하게 만드는 아주 묘한 매력이 있다. 유방의 처세술이 현실적인 타협을 가르쳐준다면 항우의 삶은 타협을 거부하는 고결한 자존심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항우의 인생 철학과 결단력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멋지게 재해석한 현자병법 항우라는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병법의 기술을 넘어 한 인간이 자신의 자존심과 신념을 어떻게 보여주며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정표와도 같았다.항우의 영화 같은 실제 이력들을 깊이 있게 정리해 볼 수 있어서 무척 유익했다. 본명이 항적이고 자가 우였던 그는 무너져가던 초나라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남다른 기백을 뿜어냈다. 숙부에게 글과 검술을 배울 때 글은 이름만 적을 줄 알면 충분하고 검술은 겨우 한 사람을 상대하는 하찮은 기술일 뿐이라며 만 명을 상대하는 진짜 학문인 병법을 배우겠다고 선언했던 만인지적의 선언은 사나이의 기개가 보였다. 실제로 그는 거록대전에서 돌아갈 배를 가라앉히고 솥을 깨부수며 오직 전진만을 다짐했던 파부침주의 결단으로 진나라의 사십만 대군을 완전히 궤멸시켰다. 또한 팽성대전에서는 겨우 삼만의 기병만으로 유방이 이끄는 56만의 대군을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술을 선보였다. 비록 마지막 전투인 해하에서 사면초가의 비극에 직면해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오강에서 스스로 목을 베며 짧고 강렬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실패마저도 다른 제왕의 승리보다 거대하고 멋있게 다가왔다.특히 내가 초한지를 읽을 때마다 가장 가슴 깊이 몰입하고 안타까워했던 대목은 우미인과의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였다. 천하를 호령하던 천하무적의 영웅이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슬퍼하며 불렀던 해가가의 구절은 눈시울이 붉어진다. 산을 뽑을 만한 힘과 세상을 덮을 기개를 가졌음에도 우희여 우희여 너를 어찌할 것인가라고 한탄했던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슬픔은 단순한 역사의 기록을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감동을 준다. 이 책에서도 항우의 그 애절한 로맨스와 슬픈 결말을 조명해 주어 읽는 내내 눈물이 날 만큼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우희와 항우의 비극적인 일화가 담긴 패왕별희를 떠올릴 때마다 그들의 고결하고 슬픈 사랑이 머릿속에 훨씬 더 선명하게 그려질 것 같다.이 책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건네는 가장 날카로운 조언은 망설임은 스스로를 베는 가장 위험한 무기라는 가르침이었다. 유방처럼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며 천하를 얻기보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오강을 건너지 않고 당당하게 죽음을 택했던 항우의 자존심은 오늘날 이리저리 타협하며 눈치를 보던 내 일상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섣부른 타협으로 내 안의 날카로운 칼날을 녹슬게 하지 않고 나만의 단단한 인생 원칙을 세워 당당하게 서야겠다는 결심을 해 준 책이다.